[지금, 칸] “내 인생의 안타고니스트”… 나홍진이 돌아본 ‘호프’의 10년

시사위크
나홍진 감독이 10년 만의 복귀작 ‘호프’로 칸 국제영화제를 찾았다. / 플러스엠 엔터테인먼트
나홍진 감독이 10년 만의 복귀작 ‘호프’로 칸 국제영화제를 찾았다. / 플러스엠 엔터테인먼트

시사위크|칸(프랑스)=이영실 기자  영화 ‘호프’는 나홍진 감독이 ‘곡성’ 이후 10년 만에 선보이는 작품이다. 범죄 스릴러와 오컬트 장르를 통해 자신만의 세계를 구축해 온 그는 이번 작품에서 우주와 외계 존재, 크리처와 액션까지 끌어들이며 또 한 번 새로운 결의 장르 영화에 도전했다. 폐쇄된 공간과 인간 군상, 미지의 존재가 충돌하는 이야기는 기존 나홍진 영화의 긴장감을 유지하면서도 이전보다 훨씬 거대한 스케일과 확장된 세계관을 드러낸다.

지난 17일(현지시간) 프랑스 칸 뤼미에르 대극장에서 제79회 칸 국제영화제 경쟁부문 ‘호프’의 공식 상영을 마치고, 다음 날 취재진과 만난 나홍진 감독은 여전히 후반작업이 진행 중이라고 털어놓으며 “이렇게 일 많은 영화가 세상에 있나 싶을 정도”라며 웃었다. 외계인 설정과 DMZ 공간의 의미, 크리처 디자인 과정부터 후속 이야기 가능성까지 ‘호프’를 둘러싼 다양한 이야기를 들어봤다.

-10년 만의 연출작이다. 공개 소감은.

“다 까먹었다. 여기 와서 뭘 했는지도 잘 모르겠고 이제 사람들 앞에 서는 것도, 사람들 앞에서 말하는 것도, 질문에 답변하는 것도 그렇고 여러 가지 면에서 되게 낯설고 그렇다. 팬데믹이 있었다. 시나리오를 쓰고 나서 ‘이건 어렵지 않을까’ 싶었다. 혼자 할 수 있는 것들을 하다가 그때부터 바로 준비했다. 쉬지 않고 일했는데 양이 너무 많아서(오래 걸렸다). 이렇게 일 많은 영화가 세상에 있나 싶을 정도였다.”

-뤼미에르 대극장에서 첫 공개됐는데 소감은. 현장 반응은 어떻게 느꼈나.

“자기 작품을 보고 만족스러운 부분보다는 불만족스러운 부분이 더 많이 보인다. 이런 부분은 더 해야겠구나 싶은, 미진한 부분들이 많이 보였던 것 같다. 지금도 서울에서는 계속 후반작업 중이다. 이런 부분이 보였는데 이런 부분도 집중해서 해달라고 밤새 회의하고 그랬다.”

-스릴러인 줄 알고 봤는데 액션 비중이 생각보다 많더라. 감독이 규정하는 ‘호프’의 정확한 장르는 무엇인가.

“스릴러인데 액션이라고 다들 부르니 그럼 액션이겠지. 장르라는 게 의미 자체가 구분을 하기 위해서, 편한 구분을 위한 용어잖나. 액션이라고 불러주면 이 영화는 액션이 되는 거다.”

-외계인이 왜 오게 됐는지에 대한 자세한 설명이 나오지 않는다. 의도한 부분인가.

“컷을 버린 게 한 컷이 있다. 명확한 답은 아닐지 몰라도 그 컷을 안 버렸다면 유추하기가 조금 더 쉬웠을 법하다. 잘라내서 버린 게 미친 짓 같다. 그런데 지금 다시 붙이면 되니까. 개봉 전이니까 뭐. 그 컷 외에 다른 설명은 불필요하다고 생각했다. 가서 창고를 열어서 먼지 속에서 찾아봐야 할 것 같은데 음악도 연관돼 있어서 음악감독님과도 상의해 봐야 할 것 같다.”

나홍진 감독이 ‘호프’와 함께한 10년을 돌아봤다. / 플러스엠 엔터테인먼트
나홍진 감독이 ‘호프’와 함께한 10년을 돌아봤다. / 플러스엠 엔터테인먼트

-DMZ 설정 등이 다양한 함의를 불러일으킨다. 공간 설정 이유와 호포항이라는 이름에 담긴 의미는 무엇인가.

“DMZ의 정확한 명칭이나 의미를 잘 모른다. 그냥 과거에 민간인이 들어갈 수 없는 마을, 일반인 출입이 금지된 마을이었다는 정도로 생각했다. 어렴풋이. 이유는 우주의 관점에서 바라봤을 때 가장 작고 가장 초라하고 가장 낮은 곳에 포지셔닝된 공간에서 비롯된 이야기가 온 우주적으로 확장될 수 있겠구나, 이렇게도 되는구나 싶은 이야기를 만들고 싶어서 그 공간을 설정한 것이기 때문이다. 고립되고 낙후된 느낌들 때문에 그렇게 설정하기도 했다.

‘호프’라는 제목은 이 양반들이 각자의 입장에서 분명히 바라던 바가 없다가 생겼든, 처음부터 있었든 등장하는 모든 캐릭터가 바라는 게 있다. 그건 우리 사회 속 대부분의 사람들이 갖고 있는 것일 텐데 그걸 이루기가 되게 어려울 뿐 아니라 어떤 결론을 내고 이뤄진다면 더 이상 희망이라는 의미가 사라진다. 더 이상 희망이 될 수 없다. 다다르지 못했을 때 희망인 것인데 그런 사람들을 담아내보고 싶었다. 

영화 제목으로는 ‘희망’보다 ‘호프’가 낫지 않나 하는 생각을 처음부터 했다. ‘희망’인데 말 타고 다니면 그럴 것 같아서 처음부터 ‘호프’라고 생각했다. (마을 이름은) 영문 번역하기에도 편하게 ‘호포’라고 이름을 세워보자고 했다. 의미적으로는 호랑이가 출현한 포구, 호랑이가 포효한다는 의미도 될 수 있고 그런 여러 가지 의미에서 호포항이라고 공간의 이름을 칭하면 어떨까라는 생각 끝에 그런 중의적인 이유로 그렇게 정했다.”

-후속편의 구체적인 계획은 없지만 다음 이야기에 대한 구상은 있다고 했다. 전체 이야기 안에서 ‘호프’는 어느 정도 지점에 놓인 작품인가.

“전체를 압축한 거다. 무슨 의미냐면 그 긴 서사를 한 편의 영화로 만들려고 하다 보니까 짐작하게 하거나 자유롭게 상상하게 하거나 혹은 그런 듯했구나 싶은 흔적을 놓아서, 나머지도 마찬가지로 짐작하게 하는 그런 설정들을 통해 서사를 대부분 압축시키려고 했다. 원래는 다음 이어지는 스토리가 있지만 이 스토리가 시나리오로 따로 만들어진다고 하더라도 지금 이 영화에 이미 내용이 담겨 있거나 짐작이 명확히 되는 지점이라 중언이라고 여겨져야만 한다는 생각을 갖고 지금 시나리오를 마무리한 거다. 그래서 보는 분들이 그렇지 않다고 여기면 어쩔 수 없지만 내 입장에서는 뒤의 이야기를 다 짐작하게 하고 굳이 이야기하지 않아도 알 수 있는 이야기로 정리했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데 다들 속편 이야기를 하니까.(웃음)”

-크리처 디자인은 어떻게 완성됐나.

“처음에는 할리우드 디자이너 업체에 의뢰했는데 아닌 것 같아서 인터넷을 뒤져 영국의 한 섬에 사는 디자이너분을 찾아냈다. 그분께 부탁을 드려서 좋은 아이디어와 콘셉트를 얻었는데 더 이상 확장되기가 어렵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미국 디자인 회사에 다시 의뢰했다. 스티브 정이라는 한국계 분이 운영하는 업체인데 그 회사에 의뢰해서 그분과 같이 마무리를 지었다.”

-크리처의 첫 등장은 어떻게 구상했나.

“그런 세팅을 해놓은 대가를 치러야 하잖나. 어떻게 등장시키는 게 가장 이상적일까 생각했고 계속 바꿨다. 그러다가 로케이션 헌팅을 가고 미술감독과 공간을 어떻게 재규정하고 새로운 세팅을 할지 이야기하면서 이렇게 나오는 게 가장 이상적이겠다고 생각했다. 처음에는 여기였다가 어떤 식이다가를 반복하다가 프리 프로덕션 중반쯤에 그 방법을 확정했던 것 같다.”

10년 만에 새로운 영화로 다시 칸을 찾은 나홍진 감독. 사진은 월드 프리미어 후 뜨거운 박수를 받고 있는 나홍진 감독과 ‘호프’ 팀. / 칸(프랑스)=이영실 기자
10년 만에 새로운 영화로 다시 칸을 찾은 나홍진 감독. 사진은 월드 프리미어 후 뜨거운 박수를 받고 있는 나홍진 감독과 ‘호프’ 팀. / 칸(프랑스)=이영실 기자

-간담회에서 ‘호프’를 두고 착한 영화라고 표현했다. 이유는 무엇인가.

“이 영화가 이야기하고자 하는 바 중 하나가 어느 사건에도 안타고니스트는 없다는 것일 수 있다. 안타고니스트가 없다 보니까 스트레스가 확 줄어들었다. 어떻게 더 특별하게 만들며, 그 안에서 어떻게 더 강력하게 만들 수 있을지에 대한 스트레스와 고민이 없었다. 누구에게나 사연은 있고 누구에게나 다 의미가 있고 그런 행동을 하는 서로 다른 입장의 사람들이라는 설정의 영화이기 때문에 이 영화가 착한 영화라고 느꼈던 것 같다. 당시에는 정말 센 것을 많이 생각하게 되고 정말 안타고니스트가 그립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 지금은 사실 그런 생각할 겨를도 없다. 이 영화가 내 인생의 안타고니스트다. 내 평생 이런 놈을 만날 줄은 몰랐다. 10년째 고생을 하고 있다.(웃음)”

-배우들의 호연이 돋보였는데 처음으로 함께한 조인성이 새로운 얼굴을 보여줬다. 이를 어떻게 바라봤나.

“조인성은 류승완 감독의 ‘밀수’를 보면서 못 보던 모습을 본 것 같았다. 류승완 감독에게 이 배우가 굉장히 달라 보인다고 했더니 너무 좋은 말을 많이 해주더라. 지내면서 보니까 조인성의 좋은 리뷰를 하는 분들이 굉장히 많더라. 계속 다들 그렇게 칭찬하고 그래서 진짜 같이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나같이 긍정적인 말이 들렸다. 실제로 만나봤더니 내가 알고 있는 그런 모습보다도 소탈하고 털털하고 굉장히 또 전혀 다른 이미지가 있는 분이더라. 그래서 너무 잘됐다고 생각했다. 조인성의 그런 모습을 의도했다기보다는 원래 그런 모습이 있었던 것 같다.”

-손익분기점이 2,000만 관객 수준이라는 이야기와 함께 애초에 ‘호프’를 3부작으로 기획했다는 말도 나왔는데 사실은 무엇인가.

“그 돈이면 스튜디오를 사지.(웃음) 손익에 대해서 알고 있는 건 산수를 하고 산출해 본 적은 없다. 그 정도는 절대 아니다. 언론에서 말한 금액들을 나도 몇 번 접해봤는데 그 숫자에 다다르지 않는다. 3부작이라는 공식적인 이야기도 드린 적 없다. 우리끼리 장난으로 이야기한 적은 있다. ‘3부작이 될 수도 있고 2부작이 될 수도 있고 이대로 끝날 수도 있고’ 이런 식으로 이야기하긴 했다. 실제로 파트1, 2로 알고 있는 분들도 있는데 그건 콘티가 너무 두꺼워서 콘티를 두 개로 만들었다. 그걸 그렇게 이해한 분들이 있는 건가 싶다. 그런데 그것도 솔직히 너무 오래전 일이라서 확실하지 않지만 아마 맞을 거다.”

-‘곡성’ 이후 10년 만의 작품이었다. 차기작도 이렇게 오래 기다려야 할까.

“차기작. 나도 빨리하고 싶다.(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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