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마이데일리 = 이호빈 기자] 남모를 고통으로 여겨지던 만성 가려움증을 원인부터 살피는 다학제 진료 체계가 가동됐다.
한림대강남성심병원은 18일 오전 서울 영등포구 한림대학교강남성심병원에서 난치성가려움증센터 미디어데이를 열고 가려움증을 단순 피부 증상이 아닌 정밀 진단이 필요한 복합질환으로 접근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이날 미디어데이는 난치성가려움증센터 개소 취지와 진료 체계를 소개하고, 만성 가려움증 환자에게 필요한 정밀 진단 과정을 공유하기 위해 마련됐다. 현장에서는 만성 가려움증이 피부질환뿐 아니라 전신질환, 신경계 질환, 정신건강 문제 등과도 연관될 수 있다는 설명이 이어졌다.
실제 최근 센터를 찾은 60대 여성 A씨는 30년 넘게 등 부위 만성가려움증에 시달렸다. 여러 병원을 찾았지만 뚜렷한 원인을 알지 못했고, 증상이 심해질 때마다 스테로이드 치료를 반복했다. 치료 직후에는 잠시 나아졌지만 한 달가량 지나면 가려움 다시 나타났다.
A씨는 센터에서 첩포검사를 받은 뒤 염색약 성분인 PPD(파라페닐렌디아민)에 대한 알레르기가 원인으로 확인됐다. 머리를 감는 과정에서 염색약 성분이 등 부위로 반복적으로 흘러내리며 접촉성 피부염과 만성 가려움증을 유발한 것이다. 이후 염색을 중단하고 원인 물질을 차단하는 생활관리와 맞춤 치료를 병행하면서 증상은 호전됐다.
김혜원 한림대강남성심병원 난치성가려움증센터장(피부과 교수)은 “만성가려움증 환자 중 항히스타민제와 스테로이드 치료를 반복하면서 수년에서 수십 년간 원인을 찾지 못한 경우도 적지 않다”며 “증상만 억제하기보다 생활습관과 약물, 전신질환 여부까지 함께 평가하는 정밀진단이 치료의 출발점”이라고 강조했다.

가려움증은 누구나 한 번쯤 경험하는 흔한 증상이다. 그러나 6주 이상 지속되거나 수면을 방해하고 일상생활에 영향을 줄 정도라면 단순한 피부 불편으로 넘기기 어렵다. 만성가려움증은 아토피피부염, 건선, 두드러기 같은 피부질환뿐 아니라 간질환, 신장질환, 갑상선질환, 신경계 질환, 혈액질환 등 전신질환에 의해 발생할 수 있다.
약물 연관성도 확인해야 한다. 고혈압약, 이뇨제, 진통소염제, 항생제, 항암제, 항경련제 등은 심한 전신가려움증을 유발할 수 있어 복용약물 확인이 중요하다. 반복적으로 긁는 과정에서 피부 장벽이 손상되면 염증 반응이 커지고, 가려움과 긁기가 되풀이되는 악순환으로 이어질 수 있다.
특히 △국소 스테로이드제와 항히스타민제 치료에도 4주 이상 증상이 지속되는 경우 △심한 가려움과 수면장애가 장기간 이어지는 경우 △피부 병변 없이 전신 가려움만 나타나는 경우 △중등도 이상 아토피피부염이나 결절성양진처럼 생물학적제제·표적치료가 고려되는 경우 적극적인 평가가 필요하다.
한림대강남성심병원은 지난달 29일 만성가려움증 환자의 정밀진단과 맞춤치료를 위해 국내 첫 다학제협진 기반 난치성가려움증센터를 개소했다.
센터는 피부과를 중심으로 내과, 산부인과, 신경과, 이비인후과, 정신건강의학과 등이 참여하는 다학제 협진 체계를 운영한다. 피부과 전문 평가를 바탕으로 가려움증의 양상, 발생 시기, 악화 요인, 동반 증상 등을 분석하고 필요에 따라 혈액검사, 알레르기 첩포검사, 피부 수분 진단, 피부조직검사, 영상검사, 신경학적 평가, 정신건강 평가 등을 시행한다.
주요 진료 대상은 기존 치료에 반응하지 않는 중증아토피피부염, 만성두드러기, 결절성 양진, 접촉피부염, 직업성 피부염, 화상 후 가려움증, 원인 미상의 만성가려움증 환자다. 반복적인 대증치료로 증상이 악화됐거나 장기간 스테로이드 치료를 이어온 환자에 대해서는 원인 규명 이후 치료 방향을 다시 설정한다.
김 센터장은 “실제 진료 현장에서는 피부질환뿐 아니라 신장질환, 간질환, 내분비질환, 신경계 질환, 정신건강 문제 등 다양한 원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한다”며 “환자 입장에서는 여러 진료과를 반복적으로 방문하면서도 정확한 원인을 찾지 못한 채 증상 완화 중심의 치료를 이어가는 경우가 많았다”고 말했다.

고령사회 진입도 만성 가려움증 진료 체계의 필요성을 키우는 배경으로 꼽힌다. 노년층에서는 피지 분비와 천연보습인자(NMF) 감소, 피부장벽 기능 저하로 가려움증이 쉽게 발생한다. 여기에 감각신경 변화와 면역노화, 다약제 복용, 갑상선질환·빈혈·만성신장질환 등 만성질환이 함께 영향을 미치는 경우가 많다.
김 센터장은 “가려움증은 단순한 피부 문제가 아니라 전신질환의 신호일 수 있으며, 특히 고령 환자에서는 피부노화와 만성질환이 복합적으로 작용해 진단과 치료가 더 까다로운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이어 “잠을 방해할 정도의 가려움증이나 기존 치료에 반응하지 않는 가려움증은 반드시 원인을 찾아야 한다”며 “센터를 통해 원인 규명 중심의 정밀 진단과 다학제협진 체계를 구축하고, 환자별 질환 특성에 맞춘 치료를 제공하겠다”고 설명했다.
한림대강남성심병원은 난치성가려움증센터를 환자 진료뿐 아니라 임상 기반 구축 거점으로도 운영할 계획이다. 난치성 가려움증 환자 임상데이터 표준화, 질환별 교육자료 개발, 지역 의료기관 대상 학술 교류 등을 통해 진단 정확도와 치료 접근성을 높인다는 방침이다.
이동진 한림대강남성심병원장은 “이번 센터 개소는 수십 년간 원인도 모른 채 만성 가려움증으로 고통받아온 환자에게 정확한 진단과 치료의 기회를 제공하기 위한 것”이라며 “환자가 더 이상 홀로 참지 않고 적극적으로 치료받을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가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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