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굴뚝이 꺼지면, 태안도 멈추는가"…화력발전 폐쇄 앞둔 지역의 경고

프라임경제
[프라임경제] 6·3 지방선거를 앞두고 정치권은 앞다퉈 지역 균형발전과 지방소멸 대응 공약을 내놓고 있다. 하지만 충남 태안군의 현실은 선거 구호보다 훨씬 냉혹하다. 지역은 이미 산업 전환의 충격 속에서 조용한 붕괴를 겪고 있기 때문이다.


태안은 현재 대한민국 에너지 전환 정책의 최전선에 서 있다. 정부의 탄소중립 정책과 석탄화력발전 단계적 폐쇄 방침에 따라 지역경제의 핵심 축이던 태안화력발전소 가동 중단이 본격화되고 있다. 앞으로 10여 년 동안 주요 발전기가 순차적으로 멈출 예정이어서 지역사회 전반에 미치는 파장이 커지고 있다. 문제는 그 이후다.

태안화력 1호기는 지난해 말 가동을 종료했고, 2호기는 올해 말 폐쇄를 앞두고 있다. 이어 2037년까지 3~8호기도 순차적으로 멈출 예정이다. 태안군 전체 지역내총생산(GRDP)의 35%를 차지하던 산업 기반이 흔들리면서 지역사회 전반에는 위기감이 빠르게 번지고 있다.

태안군과 관련 연구용역에 따르면 발전소 폐쇄에 따른 경제적 손실 규모는 지방세 감소와 지역 소비 위축 등을 포함해 약 4조원 수준으로 추산된다. 인구 감소 역시 불가피할 것이란 전망이다. 발전소 폐쇄 영향만으로도 4000명 이상 인구 유출 가능성이 제기된다.

특히, 지역 노동시장 구조상 충격은 더욱 직접적이다. 태안지역 고용보험 가입자 중 가장 높은 비중을 차지하는 업종은 발전소 관련 전기업이다. 원청 직원들은 타 지역 재배치 가능성이 있지만 협력업체와 하청 노동자들은 대체 일자리를 찾기 어려운 상황이다.

실제 발전소 폐쇄 논의가 본격화된 이후 현장에서는 인력 감축과 이주 움직임이 이어지고 있다. 일부 노동자들은 자녀 교육과 생활 인프라 부족 등을 이유로 서산·내포신도시 등 인근 도시로 거처를 옮기고 있으며, 식당·숙박업 등 지역 자영업자들도 매출 감소를 체감하고 있다.

태안 원북면 일대는 발전소 계획예방정비(OH) 기간마다 전국에서 수천명의 일용직 노동자가 몰려드는 지역이었다. 그러나 발전기 폐쇄가 이어질 경우 이 같은 단기 소비 수요마저 사라질 가능성이 높다. 현지 외식업계에서는 폐업 상담 문의가 잇따르고 있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문제는 발전소 폐쇄 이후를 대체할 산업 기반이 뚜렷하지 않다는 점이다. 정부와 충남도, 태안군은 재생에너지 중심 전환 전략을 추진하고 있다. 태안 해역에는 대규모 해상풍력단지 조성이 추진 중이며 태양광 발전 확대도 병행되고 있다.

하지만 지역사회에서는 "재생에너지가 곧바로 기존 화력발전 수준의 일자리와 경제효과를 대체하기 어렵다"는 우려가 적지 않다. 해상풍력 사업 상당수가 외국계 민간자본 중심으로 추진되면서 지역 환원 효과와 고용승계 문제 역시 불확실하다는 지적이다.

이와 함께 최근 정치권 안팎에서는 한국전력 발전자회사인 남동·중부·서부·남부·동서발전 등 이른바 '5개 발전사 통합' 논의 가능성도 거론되고 있다. 발전공기업 구조 개편이 현실화될 경우 지역 본부 조직 축소와 인력 재배치가 가속화될 수 있다는 우려도 지역사회에서 제기된다.

태안은 단순한 한 지역의 문제가 아니라는 분석도 나온다. 전국 석탄화력발전소 60기 가운데 36기가 2038년까지 폐쇄될 예정이며, 충남 보령·서천, 경남 하동·고성 등 상당수 발전소 소재 지역이 이미 행정안전부 지정 인구감소지역에 포함돼 있다.

전문가들은 산업 전환 자체보다 중요한 것은 '전환 이후 지역이 살아남을 구조'를 만드는 것이라고 강조한다. 단순한 발전원 교체를 넘어 교육·의료·교통·문화·청년 일자리 등 정주 여건 전반을 개선하지 않으면 산업 전환은 곧 지역 공동화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1989년 서산군에서 분리될 당시 8만4000여명이던 태안군 인구는 올해 처음으로 6만명 아래로 내려갔다. 발전소 굴뚝이 꺼져가는 지금, 태안은 대한민국 지방이 직면한 미래를 가장 선명하게 보여주는 현장으로 떠오르고 있다.

태안의 위기는 "지방이 경쟁력을 잃어서" 생긴 일이 아니다. 수도권 중심 성장 속에서 국가가 특정 지역에 발전소와 희생을 집중시킨 결과다. 전기는 수도권이 쓰고, 폐쇄의 충격은 지역이 감당하는 구조다.

굴뚝은 꺼질 수 있다. 하지만 지역의 미래까지 꺼져선 안 된다. 지금 필요한 것은 선거용 구호가 아니라, 발전소 이후에도 청년이 떠나지 않고 살아갈 수 있는 현실적인 국가 전략이다. 태안은 지금 대한민국 지방의 미래를 먼저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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