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위크|칸(프랑스)=이영실 기자 뤼미에르 대극장에서 열린 월드 프리미어, 레드카펫을 가득 메운 관객과 팬들, 영화가 끝난 뒤 쏟아진 박수까지 모든 순간이 낯설고도 강렬한 경험으로 남았다. 영화 ‘군체’로 제79회 칸 국제영화제를 찾은 배우 지창욱과 김신록은 각자의 방식으로 생애 첫 칸의 시간을 값지게 채워가고 있었다.
‘군체’는 정체불명의 감염 사태로 봉쇄된 건물 안 고립된 생존자들이 예측할 수 없는 형태로 진화하는 감염자들에 맞서 벌이는 사투를 그린 영화다. 영화 ‘부산행’부터 ‘얼굴’, 넷플릭스 시리즈 ‘지옥’ 등을 통해 독창적인 이야기를 선보여 온 연상호 감독의 신작으로, 올해 칸 국제영화제 미드나잇 스크리닝에 공식 초청돼 지난 16일(현지시간) 첫 상영을 마쳤다.
지창욱과 김신록은 극 중 서로를 지키려는 남매 최현석과 최현희로 호흡을 맞췄다. 극한의 상황 속에서도 끝까지 서로를 놓지 않는 인물들이다. 두 배우는 몸을 맞댄 채 이어지는 장면들 속에서 자연스러운 호흡을 만들어냈고, 현지에서 함께 진행한 인터뷰에서도 서로를 향한 신뢰, 편안한 호흡을 확인할 수 있었다.
-칸 국제영화제에서 꼭 해보고 싶었던 것이 있었나. 어떻게 즐기고 있나.
김신록 “칸에 오기 전 ‘전 세계에서 영화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모이는 본고장에서 영화 사랑하는 사람들의 눈을 하나하나 맞추고 싶다’는 이야기를 했었는데 너무 긴장해서 기억이 안 난다. 어제 본 눈이 거의 없다.(웃음) 열심히 의연하게 해보려고 노력했지만 필름이 끊긴 게 아닌가 싶을 정도였다. 눈에 아무도 안 들어오고 정신이 아득했다. 정말 긴장되는 자리였는데 이런 곳에 와 있다는 게 정말 기뻤다. 칸 도시 자체가 완전히 들썩이지 않나. 되게 자본주의적이고 쇼비즈니스적이어서 눈이 돌아간다. 그런데 동시에 정말 놀더라도, 영화를 빌미로 모이고 싶은 사람들이 국경을 넘어서 오지 않나. 티켓 사려고 줄 서고 씨네필들은 포스터 있는 대로 챙겨서 사인받고. 그런 걸 보면서 진짜 영화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모이는 곳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예술이면서 동시에 자본의 한복판에 와 있다는 느낌도 있었다. 그런 선 안에서 예술과 상업, 산업의 균형을 잘 찾고 있는 감독이 초대되는 곳이구나 싶었고 그런 작품에 참여했다는 게 좋고 의미 있다고 생각했다.”
지창욱 “그저 감격스럽고 전 세계 영화인들 사이에서 내가 이렇게 박수를 받을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진짜 감사했다. 그 와중에 깨알같이 관광도 야무지게 했다. 나름 시간 내서 오토바이도 타고 옆 동네도 잠깐 다녀왔다. 하고 싶은 것들은 그래도 많이 한 것 같다. 너무 신기하지 않나. 이렇게 사람들이 많고 다 축제 분위기고 해변가에 부스들도 많고 누군가 알아봐 주기도 하고. 해보고 싶었던 건 다 해보고 있다.”
-뤼미에르 대극장에서 월드 프리미어를 마쳤다. 칸 국제영화제에서 ‘군체’를 처음 공개한 소감은.
지창욱 “어제 영화를 처음 봤는데 긴장 반, 알 수 없는 처음 느껴보는 감정 반이었다. 그런 상태에서 땀 흘리면서 영화를 봤던 기억이 난다. 내가 언제 또 칸에 올 수 있을까 싶어서 최대한 많은 사람들을 보려고 했다. 수많은 관객이 영화를 봐주고 박수를 쳐주는 게 감격스러웠다. 다시 한번 ‘군체’에 감사한 마음이다.”
김신록 “영화에 대한 존중이잖나. 한편으론 또 자유분방하게 기다렸다가 우리 영화를 보러 들어온다는 게 신기한 경험이었다. 2,000여 명 앞에서 영화를 보니까 사운드나 화면도 다른 것 같더라. 아는 영화라고 생각했는데 낯선 환경에서 보니까 새롭고 감동이었다. 황홀한 첫 경험이었다.”
-초청을 예상했나.
지창욱 “전혀 생각도 못했다. 칸을 생각해 본 적이 한 번도 없었다. ‘군체’도 마찬가지다. 작품을 할 때 ‘이건 칸 가야지’라고 생각할 수는 없지 않나. 그런데 이렇게 와버렸다. 그래서 너무 소중하다. 칸에 초청받아서 오는 건 정말 어려운 일인데 여기 와 있는 게 약간 비현실적이다. 그래서 지금 매일 밤 춤을 추고 있다.”
-현지에 지창욱 팬이 많더라. 레드카펫 전후에 팬들과 소통하는 모습도 인상적이었는데.
지창욱 “사진 찍어드리고 사인해 드리는 게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이라 열심히 해드렸다. 차에서 내려서 레드카펫 걷기까지 얼마 정도의 시간이 있는지 모르는 상태에서 내렸는데 팬들이 있으면 팬서비스를 해줘도 된다고 하더라. 생각보다 엄청 자유로웠다. 시간도 넉넉했고 자유로운 분위기 안에서 편해졌다.”
김신록 “우리 팀 안에 ‘밈’이 있다. ‘두 유 노 지창욱?’(웃음)”
-연상호 감독 작품의 힘은 무엇이라고 생각하고 이번 ‘군체’는 어떻게 다가왔나.
김신록 “어떻게 보면 거대하고 철학적인 질문을 오락적이고 쉬운 서사 안으로 넣어서 간결하게 밀어붙이는 힘인 것 같다. 엔터테인먼트적이면서도 끝나고 나면 어떤 질문에 가닿게 만든다. 계몽적이지 않은 선에서 화두를 탁 던지는 작품을 잘 만드는 것 같다. 이 작품도 동시대적이라고 생각했다. 뇌를 공유해서 의식이 통합된다는 이야기를 직접적으로 하잖나. AI의 진화나 빅데이터, 집단지성 같은 우리가 인터넷 뉴스 헤드라인에서 봤던 것들이 픽션적인 SF 상상력과 만나면서 공부를 깊게 하지 않아도 직관적으로 질문을 마주할 수 있는 작품이라고 생각했다. 동시대적이고 현대적이다.”
지창욱 “좀비라는 재미있는 소재로 사람을 이렇게까지 다 표현할 수 있구나 싶었다. 그래서 익숙하다는 생각도 했다. ‘군체’가 좀비 이야기이기도 하지만 그 안에 있는 사람들이 너무나 익숙한 태도와 모습을 보여준다. 밖에서 문제를 해결하려는 무리부터 그 안에서 살아남으려는 무리까지 모두 우리가 분명히 봤을 법한 인물들이다. 그래서 좀비가 진화하는 과정을 재미있게 보고 있으면서도 사람들 이야기가 또한 재미있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
-연상호 감독과 함께 작업한 소감은.
지창욱 “연상호 감독님의 제안을 처음 받았을 때 굉장히 기뻤다. ‘나도, 드디어’라는 생각이었다. 소재나 아이디어, 기획, 작품 안에서의 표현들을 굉장히 매력적으로 즐겨봤는데 제안까지 오니 기뻤고 현석이라는 인물에도 너무 공감이 됐다. 누나가 있다는 설정 자체도 든든한 힘이었다.
다만 처음 연상호 감독님과 작업할 때는 오히려 쉽지 않았다. 생각보다 감독님이 굉장히 명확했다. 현장에서도 그렇고 그 명확함이 처음에는 낯설었다. 내가 표현할 여지가 없다는 게 당황스럽기도 하고 무섭기도 했다. ‘여지가 너무 없는데?’라는 생각도 들었다. 그런데 감독님의 색깔을 이해하는 순간 오히려 더 편해졌고 이걸 잘 표현해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연상호 감독님이 또 작업을 하자고 제안해 주면 굉장히 재미있는 작업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김신록 “(연상호 감독과) ’지옥’ 시리즈와 ‘군체’를 같이 했는데 애니메이션을 만들고 만화책도 만들어서 그런지 컷에 대한 감각이 되게 좋고 비주얼적인 구상이 명확하다. 배우에게는 굉장히 명쾌한 감독이다. 배우가 해내야 할 몫이 분명하고 오래 합을 맞춰본 스태프들과 함께 작업하다 보니 체계적이고 효율적이다. 프리 단계가 잘 돼 있어서 낭비되는 시간 없이 잘 찍을 수 있다. 배우는 그렇게 잘 준비된 스태프들과 합을 맞춰 준비를 잘해서 한 번에 잘 해내야 한다. 내가 연극 베이스라 그런지 ‘한 번에 해보겠다’는 마음이 있었다.”
-상영 후 연상호 감독과 어떤 이야기를 나눴나.
김신록 “(상영이) 끝나고 나서 카메라가 들어가잖나. 연상호 감독님을 비추는데 약간 일본 아기 같은 거다. 지브리 애니메이션에 나오는 아기같았다.(웃음) 배우들이 입을 모아서 ‘어쩌면 저렇게 순수한 표정으로 좋아할 수 있을까’ 이야기했다. 사실 진짜 큰 일이잖나. 큰돈이 오가고 많은 사람들의 시간과 돈이 오가는 일이니까 긴장과 기대가 있지만 영화를 저렇게 순수하게 좋아하는 게 연상호 감독의 힘이구나 싶었다. 아이같이 좋아하시더라.”
-남매로 호흡을 맞췄다. 어땠나.
지창욱 “안 좋을 수가 있을까. 내가 개인적으로 너무 좋아하는 선배이자 동료다. 누나이기도 하고 그렇기 때문에 안 좋을 수가 없었다고 생각한다. 실상은 내가 업고 다녔지만 오히려 내가 업혀있는 느낌이 많이 들었다. 계속 붙어 있다 보니까 거기서부터 오는 파이팅도 있었다. 촬영할 때도 세트에 지게 하나를 놓고 거기 모여서 계속 같이 붙어 있었는데 거기서부터 오는 어떤 의지하게 되는 마음들이 있었다.”
김신록 “현석과 현희의 서사에 대해 감독님과 얼마나 넣고 뺄지 논의했다. 트라우마 같은 설정을 넣을까 이야기했는데 (지)창욱이가 ‘그런 거 하나도 없어도 내 가족이고 내 누나라는 것만으로도 뒷부분 연기를 하기 충분할 것 같다’고 되게 쿨하게 이야기했다. 굉장히 좋은 선택이었다고 생각한다. 구구절절 설명하지 않아도 정서적 연결감이 중요했는데 물리적으로 몸이 붙어 있으니까 그게 작동했다. 실제로 우리 둘도 연기하면서 정서적 연결감이 컸던 것 같다. 연기할 때는 창욱이의 연기 노하우가 바로 느껴진다. 한 호흡에 탁 집중해서 들어간다. 아직 내공이 부족한 나는 ‘갑자기?’ 하는데 창욱은 ‘레디’ 하면 호흡 한 번 하고 바로 상태로 들어간다. 어떤 지점으로 단번에 들어가는 힘이 있어서 진짜 편하게 찍었다.”
-현석과 현희 남매를 학습한 좀비의 등장도 인상적이었다. 마주했을 때 어땠나.
김신록 “재미있기도 하면서 킥킥할 수 있는 순간이었다. 영화 안에서 좀비들이 계속 진화한다고 표현하잖나. 그런데 진화의 방향성에 대해 상상력의 한계가 있다. 우리가 봤을 때 업혀 있는 모습이 불편해 보이고 덜 진화한 것처럼 보이는데 다른 관점에서 보면 위에서 고개를 돌릴 수 있고 팔이 네 개가 되는 거다. 다른 관점의 진화로 보면 더 발전한 형태일 수도 있는 거다. 그 장면만으로도 질문을 던진다고 생각했다. 무엇을 진화라고 볼 것이냐는 거다. 정상성에 대한 일방향적이고 편협한 상상력에 직관적으로 질문을 던진다. 웃기기도 하고 ‘저걸 따라 한다고? 저게 진화라고?’ 싶은 느낌이다. 쉽게 던지는 촌철살인 같았다.”
-전지현의 스크린 복귀작이라는 점에서도 주목받고 있다. 현장에서의 호흡은 어땠나.
김신록 “같이 한 시간이 길어질수록 혀를 내두르게 된다. ‘이래서 전지현인가? 스타다, 스타’ 이랬다. 날개를 펼쳐주는 느낌이다. 영화 산업이나 대중예술 산업, 대중예술 자체에 대한 이해와 애정, 헌신이 굉장히 깊은 사람이다. ‘엽기적인 그녀’나 천송이만 생각하면 발랄한 이미지로 생각할 수 있는데 연상호 감독님이 이야기한 것처럼 그런 연기부터 ‘암살’ ‘베를린’ 같은 정공법 연기, 장르물까지 다 해왔다. 또 그걸 홍보하고 선보이는 자리에서의 아이디어, 즐기는 태도까지 다 갖추고 있다. 여유와 헌신, 애정이 느껴졌다. 진짜 대배우다. ‘신록아 친구하자, 동갑이야’라고 다가와 줬는데 정말 대단한 배우가 나를 겸손하게 대해주는 거구나 싶어서 고맙고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창욱 “사람 자체가 너무 멋있다. 내가 어렸을 때부터 봐왔던 우상이자 선배이자 누나다. 굉장히 쿨하고 멋있다. 현장에서도 그렇고 사석에서도 그렇다. 함께하는 것 자체가 또 하나의 소중한 경험이고 기억이라서 좋다. 영광이기도 하다. ‘군체’를 하면서 ‘인간 구미호’를 한다는 사실을 듣게 됐는데 이렇게 연달아서 작업하는 건 처음이다. ‘인간X구미호’ 안에서도 너무 멋진 모습을 보여주고 있어서 빨리 자랑하고 싶다.”
-이제 국내 관객과의 만남이 남았다. 전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김신록 “재미있게 봤으면 좋겠다. 연상호 감독님 작품을 아는 분들은 알겠지만 정말 엔터테이닝하다. 또 진화하는 좀비라는 것도 정말 새로울 거다. 새로운 좀비의 세계를 함께 즐겨주셨으면 좋겠다.”
Copyright ⓒ 시사위크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comment--
첫 번째 댓글을 작성해 보세요.
댓글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