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위크=권신구 기자 지금이야 웃으면서 이야기할 수 있지만 12·3 비상계엄 순간은 인생에서 잊을 수 없는 순간 중 하나다. 일찍 잠자리에 들려다 확인한 유튜브에선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선포한다는 믿기 어려운 장면이 생중계됐고, 부랴부랴 용산 대통령실로 향했다. ‘태풍의 눈’은 생각보다 고요했으나 어떻게 전개될지 알 수 없는 상황에 긴장감은 가득했다. 국회에서 계엄이 해제되고 상황이 마무리될 즈음 닫혔던 건물을 나올 때의 기분은 어떠한 새벽보다 진했다.
실체적 경험은 여러 생각을 불러일으켰다. 사실 그동안 깊이 생각해 본 적 없던 개헌 문제도 그중 하나다. 당시에는 아무리 정치에 관심이 없던 사람이라도 나라의 미래와 정치의 역할을 고민하곤 했다. 사석에서 누군가를 만날 때면 개헌 이야기는 대화의 한 축을 담당했다. 구체적 그림을 그릴 만큼의 식견이 있던 것은 아니지만, 문제는 선명했다. 안전장치가 없는 민주주의는 위협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7일 국회 본회의 표결에 부쳐졌던 개헌안은 여기서 출발했다. 4·19 혁명 이후 민주주의 역사를 반영하기 위해 5·18 민주화 운동과 부마민주항쟁의 정신을 헌법 전문에 수록하기로 한 것은 물론 계엄에 대한 국회 통제권을 강화하기로 했다. 대통령이 계엄을 선포한 때에는 지체없이 국회의 승인을 받아야 하며, 국회에서 승인되지 않을 경우 즉시 계엄의 효력이 상실되도록 했다. 헌법으로 ‘민주주의의 제도적 방벽’을 세우겠다는 의지였다.
사회적 합의가 가능한 지점부터 고쳐가자는 ‘단계적 개헌’의 모양새를 취했다. 하지만 39년 만에 본회의에 상정된 헌법 개정안은 ‘투표 불성립’으로 끝이 났다. 개헌안 표결에 당론으로 반대한 국민의힘이 회의장에 불참하면서 의결 정족수를 채우지 못했기 때문이다. 개헌의 필요성에는 공감한다면서도 명분이 부족한 조건을 붙이는 국민의힘의 행태를 납득하기 어렵다.
시대가 지나고 세상이 바뀌는 동안 헌법도 달라져야 한다는 주장은 정치권 안팎에서 수도 없이 새어 나왔다. 문제는 늘 비슷한 결과로 끝이 난다는 점이다. 자당에게 조금이라도 더 ‘이익’이 될 것인지 계산기를 두드리는 정치권이 가장 큰 문제다. 그 속에는 변화에 대한 열망도 협상에 대한 의지도 찾아보기 어렵다. 그러는 사이 개헌 논의는 ‘정치적 도구’로 소모되는 모습이다.
우원식 국회의장은 오는 8일 국회 본회의를 다시 소집하고 개헌안을 재상정하겠다고 밝혔다. 우 의장은 “이대로 헌법에 안전장치를 만들지 못한 채로 다시 또 12.3 같은 일이 생긴다면 22대 국회 우리 모두는 역사의 죄인”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개헌에 정략을 끌어들이게 되면 나라의 미래를 열어갈 수 없다. 개헌을 정쟁의 대상으로 삼으면 국민의 안녕을 만들어갈 수 없다”고 말했다.
민주주의는 저절로 유지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은 12·3 비상계엄을 거치며 국민이 모두 느낀 바다. 개헌은 어느 진영이 유리해질 것인가의 문제가 아니라, 민주주의를 어떻게 지켜가고 발전시켜 나갈 것인가에 대한 성찰과 고민이 담겨야 하는 문제다. 이러한 본질을 외면한 채 정치가 이익만을 고집할 때 그 스스로 존재의 가치를 부정하는 꼴이 될 것이다.
Copyright ⓒ 시사위크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comment--
첫 번째 댓글을 작성해 보세요.
댓글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