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D칼럼] 과거를 바꾸는 입법, 집단소송제 확장의 함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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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송파구 쿠팡 본사/뉴시스

[마이데일리 = 최주연 기자] 최근 국회에서 논의 중인 집단소송법 제정안이 본질을 벗어나 과거를 뒤바꾸려는 방향으로 변질되고 있다. 쿠팡과 통신사 개인정보 유출 사건 이후 급물살을 탄 제도 도입 논의가 특정 기업을 겨냥한 소급 적용 문제로 확대되면서 법적 안정성과 함께 산업 생태계를 위협하는 ‘입법 리스크’로 부상했다. ‘잊혀질 권리’를 말하는 사회에서, 동시에 과거를 끝까지 소환해 책임을 묻겠다는 주장이 힘을 얻는 모습이다. 서로 다른 방향의 가치가 충돌하는 이율배반적 장면이다.

가장 우려스러운 점은 설계의 과도함이다. 지난 27일 국회의원회관에서 열린 관련 세미나를 봐도 그렇다. 이날 세미나에서는 집단소송제 도입 필요성에는 공감대가 형성됐지만, 적용 범위를 전면 확대하고 소급 적용까지 허용할 경우 남소 가능성과 법적 안정성 훼손 우려가 동시에 커질 수 있다는 경고도 이어졌다.

문제의 핵심은 결국 소급 적용이다. 법 시행 이전의 행위까지 책임을 묻는 소급 적용은 헌법상 불소급 원칙과의 충돌 가능성을 낳는다. 집단소송제 자체를 부정하기는 어렵지만, 지금 논의는 쿠팡을 겨냥한 방식으로 구조가 짜이고 있다는 점에서 방향 자체가 흔들리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또 다른 쟁점은 집단소송 대상의 적용 범위다. 세미나에서 다뤄진 내용처럼 법 시행 이전 사건까지 집단소송 대상으로 포함한다면 이는 과거 행위에 새로운 책임을 덧씌우는 일이다. 개별적으로 흩어져 있던 소액 청구가 결합되면서 수천억원 규모의 배상으로 확대될 수 있다는 점에서, 이는 기업이 감당해야 할 리스크의 성격 자체를 바꾸는 요인이기도 하다. 특히 쿠팡의 경우 미국 자본이 참여한 기업이라는 점에서 이번 입법이 통상 문제로 확장될 가능성도 고려해 봐야 한다.

이 같은 설계는 규제를 전 산업으로 확산시킬 수 있다. 적용 범위를 모든 손해배상으로 넓히고 별도의 의사 없이 소송에 포함되는 ‘옵트아웃’ 방식까지 결합될 경우 하나의 사건이 산업 생태계 전체를 흔들 수도 있다.

가장 큰 영향을 받는 것은 중소·중견기업이다. 법무 대응 여력이 부족한 이들은 장기 소송 자체가 경영 리스크로 이어질 수밖에 없고 제조업의 경우 공급망을 따라 부담이 확산될 가능성도 크다.

여기에 징벌적 손해배상까지 결합될 경우 집단소송제는 피해 구제를 넘어 강력한 규제 장치로 기능하게 된다. 이는 기업의 투자와 경영 판단 전반을 위축시키고, 산업 경쟁력에도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결국 이 논의의 본질은 단순하다. 집단소송제는 필요하지만, 특정 사건에서 출발한 입법이 산업 전반에 적용될 때 그 파급력은 전혀 다른 차원의 문제가 된다.

피해자 구제라는 명분은 중요하다. 그러나 제도의 설계가 균형을 잃는 순간, 보호는 곧 새로운 리스크가 된다. 현재의 입법이 과거를 바꾸는 순간, 법은 보호 장치가 아니라 불확실성이 된다. 지금 필요한 것은 속도가 아니라, 설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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