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맥락 재구성] 메르세데스-벤츠 '한국 배터리' 선택…중국 의존 재편

프라임경제
[프라임경제] 메르세데스-벤츠 최고 경영진이 한국을 방문했다. 이번 한국 방문을 단순한 협력 확대 행보로만 보면 핵심을 놓치게 된다. 

표면적으로는 삼성SDI와의 하이니켈(high-nickel) 배터리 다년 계약 체결, LG에너지솔루션과의 파트너십 재확인이다. 하지만 흐름을 따라가면, 전동화 전략의 중심축을 어디에 둘 것인지에 대한 재정렬에 가깝다.

특히 이번 계약이 갖는 상징성은 분명하다. 삼성SDI가 메르세데스-벤츠에 전기차 배터리를 공급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기존까지 메르세데스-벤츠는 중국 CATL 등과의 협력을 통해 배터리 조달을 이어왔다. 비용 경쟁력과 공급 속도를 고려한 선택이었다.

그런 흐름에서 한국 배터리 업체를 전면에 끌어올린 결정은 공급 다변화라기보다, 전략 축이 이동했다는 쪽에 가깝다.

이번 계약에서 주목해야 할 지점은 배터리의 성격이다. 삼성SDI가 공급하는 제품은 차세대 전기차 플랫폼에 적용되는 하이니켈 NCM 배터리다. 에너지 밀도와 출력 성능을 극대화할 수 있는 대신, 열 안정성과 수율 관리가 까다로운 영역이다.


단순 조달이 아니라 기술 신뢰를 전제로 한 선택이다. 메르세데스-벤츠가 이 배터리를 중소형 전기 SUV와 쿠페 등 차세대 라인업에 적용하겠다는 계획까지 밝힌 점을 고려하면, 고성능 전기차 포트폴리오의 핵심 축을 한국 배터리에 맡긴 셈이다.

여기에 LG에너지솔루션과의 관계까지 더하면 구조는 더 명확해진다. LG에너지솔루션은 이미 지난해 10월 LFP 배터리 공급사로 선정됐으며, 다양한 세그먼트에 맞는 배터리 포트폴리오를 담당하고 있다. 더불어 디스플레이 분야에서도 장기적인 협력을 이어오고 있다.

결국 메르세데스-벤츠의 배터리 전략은 하나의 축이 아니라 두 개로 나뉜다. 고성능은 하이니켈, 보급형은 LFP. 그리고 이 두 축 모두를 한국 업체로 채웠다.

◆'중국 의존'에서 '선택적 결속'으로

이 변화는 글로벌 배터리 공급망 재편 흐름과 맞닿아 있다. 그동안 완성차 업체들은 중국 배터리를 중심으로 공급망을 구축해왔다. 규모의 경제와 가격 경쟁력에서 압도적인 우위를 갖고 있었기 때문이다. 특히 전기차 시장이 급성장하던 시기에는 '확보 가능한 물량'이 가장 중요한 변수였다.

하지만 시장 환경이 달라졌다. 전동화 전환 속도가 둔화되고, 수익성 압박이 커지면서 완성차 업체들은 단순히 많은 배터리를 확보하는 것보다 어떤 배터리를 어떻게 쓰느냐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여기에 지정학적 변수도 겹친다. 유럽과 미국 시장을 중심으로 중국 공급망에 대한 의존도를 줄이려는 움직임이 강화되고 있다. IRA(인플레이션 감축법) 등 정책 환경 역시 공급망 재편을 압박하는 요소다.

이런 상황에서 메르세데스-벤츠의 선택은 명확해진다. 공급망을 넓히는 대신, 기술 신뢰성과 규제 대응이 가능한 파트너와의 결속을 강화하는 방식이다. 한국 배터리 업체들이 이 지점에서 다시 부각된다.

◆'배터리 포트폴리오'로 풀어낸 전동화 전략

메르세데스-벤츠의 이번 선택을 단순히 "한국으로 바꿨다"로 해석하면 부족하다. 더 중요한 건 구조다. 삼성SDI와 LG에너지솔루션을 동시에 묶은 것은, 배터리 전략 자체를 이원화했다는 의미다. 삼성SDI는 하이니켈 기반 고성능 전기차, LG에너지솔루션는 LFP 포함 세그먼트 대응형 전기차. 이 구조는 현재 전기차 시장의 가장 큰 딜레마를 그대로 반영한다.

한쪽에서는 테슬라, BYD 등 가격 경쟁형 모델이 시장을 확대하고 있고, 다른 한쪽에서는 프리미엄 브랜드들이 성능 중심 전기차로 차별화를 시도하고 있다.

문제는 이 두 시장을 동시에 대응해야 한다는 점이다. 단일 배터리 전략으로는 이 간극을 감당하기 어렵다. 결국 완성차 업체들은 배터리 포트폴리오를 나눠 가져가는 방식으로 대응하고 있다. 메르세데스-벤츠 역시 이번 계약을 통해 그 구조를 명확히 했다.


삼성SDI 입장에서도 이번 계약은 단순 수주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그동안 글로벌 전기차 배터리 시장은 CATL, LG에너지솔루션, 파나소닉 등이 주도해왔다. 삼성SDI는 상대적으로 보수적인 수주 전략과 프리미엄 중심 포지셔닝으로 차별화를 시도해왔다.

메르세데스-벤츠와의 첫 공급 계약은 이 전략이 일정 부분 유효했음을 보여준다. 특히 하이니켈 NCM 배터리를 중심으로 한 고성능 영역에서 기술 경쟁력을 인정받았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여기에 차세대 배터리 선행 개발까지 협력 범위를 넓힌 점을 고려하면, 단순 공급사가 아닌 기술 파트너로의 포지션 전환 가능성도 열려 있다.

◆배터리 공급망 재정렬 '기반 다지기'

다만 이 흐름이 곧 전동화 경쟁력으로 직결된다고 보긴 어렵다. 전기차 경쟁의 중심은 이미 배터리를 넘어 △소프트웨어 △플랫폼 △사용자 경험으로 확장되고 있다. 테슬라와 중국 업체들이 강점을 보이는 지점도 이 영역이다.

메르세데스-벤츠가 배터리 공급망을 재정렬한 것은 기반을 다진 단계에 가깝다. 실제 경쟁력은 이 기반 위에 어떤 아키텍처와 서비스를 얹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결국 이번 움직임의 핵심은 확장이 아니라 정렬이다. 메르세데스-벤츠는 배터리 공급망을 무작정 넓히는 대신, 기술과 역할에 따라 파트너를 재배치했다. 그 과정에서 한국 배터리 업체들이 전략 축으로 다시 올라왔다.

전동화 경쟁이 깊어질수록 선택지는 줄어든다. 그리고 지금 메르세데스-벤츠의 선택은 분명하다. 검증된 파트너와 분명한 역할로 다시 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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