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마이데일리 = 곽명동 기자]스탈린의 대숙청이 광기로 치닫던 1937년, 신임 검사 코르니예프(알렉산드르 쿠즈네초프)는 피로 쓰인 익명의 편지 한 통을 받는다. 발신인은 자신의 결백을 주장하며 수사를 간청하는 어느 정치범이다. 지역 당 간부들의 집요한 회유와 방해 속에서도 코르니예프는 감옥 깊숙한 곳에서 자행된 참혹한 고문의 흔적을 목격한다. 젊은 이상주의로 무장한 이 검사는 법적 절차를 짓밟는 비밀경찰(NKVD)의 만행을 폭로하고 국가의 정의를 바로잡겠다는 신념 하나로 권력의 심장부 모스크바로 향한다. 이 과정에서 영화는 단순한 정치적 폭로극을 넘어 개인이 이해할 수 없는 거대한 시스템에 포획되는 구조 자체를 드러낸다.

세르히 로즈니차 감독의 '두 검사'는 '미로의 감옥'에 갇힌 인물을 통해 전체주의 권력의 속성을 카프카적(Kafkaesque) 문법으로 날카롭게 파헤친다. 카프카의 문학이 이유도 모른 채 거대한 관료 시스템의 톱니바퀴로 끌려 들어가는 인간의 무력함을 그리듯, 코르니예프의 행보 역시 기묘한 기시감을 자아낸다. <소송>의 요제프 K가 영문도 모른 채 기소되어 재판의 미로를 헤매다 파멸하듯, 코르니예프 역시 정의를 실현하려 발버둥 칠수록 시스템이 쳐놓은 올가미에 더 깊숙이 옭아매인다. 그의 이름이 'K'로 시작한다는 사실은 단순한 우연이 아니다.
이러한 카프카적 공포는 추상적 개념에 머무르지 않고, 영화적 형식을 통해 구체적인 물리적 압박으로 치환된다. 영화는 육중한 철문이 열리는 것으로 시작해 다시 그 문이 닫히는 수미상관의 구조를 취한다. 감독은 1905년에 지어져 비인도적인 설계로 인해 21세기 초 폐쇄될 만큼 극심한 폐소공포를 유발하는 라트비아의 실제 감옥에서 촬영을 진행했다. 로즈니차는 화면비를 정사각형에 가까운 1.37:1(아카데미 비율)로 설정해 인물을 프레임 안에 물리적으로 가두었다. 고정된 카메라는 미로 속에서 출구를 찾는 검사를 마치 박제하듯 포착하고, 코르니예프는 권력이라는 거대한 그물망에 사로잡힌 채 서서히 질식해간다.
그 포획의 실체가 지극히 인간적인 얼굴로 드러나는 순간, 공포는 절정에 달한다. 모스크바 검찰청에서 마주친 한 인물은 "우리 같은 법대 출신이잖아"라며 친근하게 말을 건넨다. 코르니예프는 그를 기억하지 못하지만, 상대는 아랑곳없이 그의 과거를 꿰뚫고 있다는 듯 친밀감을 과시한다. '감시자는 나를 완벽히 알지만 정작 나는 그를 모른다'는 이 비대칭적 설정은 시스템이 개인의 사소한 일상까지 장악하고 있다는 사실을 섬뜩하게 시각화한다. 그가 실제 동창인지, 혹은 감시를 위해 투입된 비밀경찰인지는 끝내 모호하게 남는다. 추상적이었던 권력이 살아 숨 쉬는 인간의 모습으로 다가올 때, 카프카적 부조리는 관객을 미로 속으로 더욱 깊숙이 끌어들인다.
이러한 문제의식은 과거에 머물지 않는다. 로즈니차는 이 모든 장치를 통해 89년 전의 스탈린 시대를 소환하며 "역사는 반복된다"는 서늘한 명제를 환기한다. 그는 최근 인터뷰에서 "관객은 권위주의 지도자가 이끄는 현재 미국의 방향을 떠올릴 것"이라고 말했다. 권위주의가 다시 고개를 드는 오늘날, 트럼프의 '마가 제국'이든 그 어떤 이름의 권력이든 무력한 개인은 자신의 운명이 어디로 향하는지도 모른 채 거대한 시스템의 질서 속으로 서서히 질식해간다. 비인간적인 관료주의와 권위주의가 개인의 존엄을 잠식하는 곳이라면 어디든 그 미로의 문은 열려 있다.
그리고 다시, 철문은 굳게 닫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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