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라임경제] "죽어서 입는 수의에는 주머니가 없다는 것을 늘 염두에 두고 있습니다."
고(故) 이건희 삼성 선대회장이 2000년 한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했던 말이다. 이는 이 선대회장의 재산관과 사회 환원 철학을 잘 보여주는 발언이다.

2020년 이 선대회장이 별세한 이후 유족들은 고인의 뜻을 기려 상속 유산 26조원의 60%를 상속세와 기부 등으로 사회에 환원하기로 결정했다. 12조원에 달하는 상속세를 이달로 마무리하며 이재용 삼성전자(005930) 회장을 중심으로 한 '뉴삼성' 체제가 본격화할 전망이다.
◆감염병 대응 7000억원 기부…미술품도 기증
막대한 상속세를 마련하기 위해 상속 재산을 매각할 것이라는 예상을 깨고 유족들은 사회에 환원하는 길을 택했다.

유산은 △삼성전자와 삼성물산 등 지분 약 19조원 △개인 소장 미술품 3조원 △시세 1조원 이상의 국내외 부동산과 현금, 기타 자산 등으로 구성돼 있었다.
유족들은 한국 미술계의 발전을 위해 선대회장이 평생 모은 문화재와 미술품 2만3000여점을 국가기관 등에 기증했다. 이는 국내에서 전례가 없는 최대 규모다.
'이건희 컬렉션'은 미국 스미스소니언 박물관 및 시카고 미술관, 영국 대영박물관 등 세계 유명 박물관에서도 순차적으로 전시를 진행하고 있다.

또한 의료공헌에도 1조원을 기부했다. 코로나19로 전 세계가 고통받고 있던 상황을 고려해 감염병 극복에 7000억원을 기부했다. 소아암·희귀질환 지원에도 3000억원을 투입했다.
이는 "인류의 건강과 삶의 질을 높이는 사업은 기업의 사명"이라며 의료분야 공헌을 강조해온 이 선대회장의 유지를 실천하기 위한 것으로 평가된다. 이 선대회장은 생전 "어린이들이 제대로 치료받지 못해 세상을 떠나는 것이 가장 안타깝다"며 소외된 생명에 각별한 관심을 쏟은 바 있다.
◆"세금 납부는 국민 의무"
유족들은 "세금 납부는 국민의 당연한 의무로 마땅히 해야 할 일"이라며 대규모 조세 납부 의무를 이행했다.

삼성 오너 일가에 부과된 상속세는 국내외를 통틀어 역대 최고액인 총 12조원 규모다. 이는 글로벌 기준으로도 전례를 찾기 어려운 수준이다. 유족들은 2021년부터 5년간 6회에 걸쳐 연부연납 방식으로 세금을 납부해 왔다.
개인별로 보면 상속세 부담이 가장 많은 사람은 3조1000억원의 홍라희 리움미술관 명예관장이다. 이어 △이 회장 2조9000억원 △이부진 사장 2조6000억원 △이서현 사장 2조4000억원 순으로 알려졌다.
상속제 재원을 마련하기 위해 홍 명예관장과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 이서현 삼성물산 사장은 삼성전자·삼성SDS(018260)·삼성물산(028260) 등 삼성 주요 계열사 주식을 매각했다.
홍 명예관장은 마지막 상속세 재원 마련을 위한 삼성전자 주식 매각을 마무리했다. 이달 9일 삼성전자 보통주 1500만주를 시간 외 대량매매(블록딜) 방식으로 처분한 것으로 전해졌다. 매각가는 전날 종가인 21만500원에서 2.5%의 할인율이 적용된 주당 20만5237원으로 결정됐으며 전체 매각 규모는 약 3조800억원이다.
이번 처분으로 홍 명예관장의 삼성전자 지분율은 기존 1.49%에서 1.24%로 하락했다.
반면 이 회장은 지분 매각 없이 배당금과 금융권 차입을 통해 세금을 충당했다. 기업분석기관 리더스인덱스에 따르면 이 회장은 지난해 3993억원의 배당금을 수령했다.
이를 통해 삼성그룹 지배구조가 이 회장 중심으로 재편됐다. 이 회장의 삼성전자 지분은 상속 전 0.7%에서 1.67%로 늘었다. 삼성물산 지분은 17.48%에서 22.01%로, 삼성생명 지분은 0.06%에서 10.44%로 각각 확대됐다.
재계에서는 이 회장이 지분 매각 없이 상속 절차를 마무리하면서 '삼성물산→삼성생명→삼성전자'로 이어지는 지배력이 더욱 공고해졌다는 평가가 나온다.
이 회장은 2년 6개월의 실형이 선고된 2016년 국정농단 의혹 사건까지 포함해 10년 가까이 계속된 사법 리스크를 지난해 7월 해소했다. 여기 더해 상속세 부담까지 사라지면서 이 회장이 경영에 전념할 수 있는 조건이 갖춰졌다는 게 재계 시각이다.
일각에서는 계열 분리 가능성도 제기된다. 재계에서 이부진 사장과 이서현 사장이 독자적인 사업 기반을 구축하는 방향으로 움직일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최근 이부진 사장은 200억원 규모 자사주 매입 계획을 밝힌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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