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위크=김두완 기자 아이들은 시간과 어른의 시간은 같지 않다. 어른에게 한 달은 잠시 미뤄지는 시간이지만, 아이에게 한 달은 성장의 방향이 달라질 수 있는 시간이다. 특히 생후 첫해는 애착 형성과 정서 발달의 기초가 만들어지는 시기로 꼽힌다. 입양 현장에서는 오래전부터 이 시기를 ‘골든타임’이라 불러왔다. 아이가 가장 안정적으로 새로운 가족을 받아들이고 가정 안에 뿌리내릴 수 있는 결정적 시기라는 의미다. 그러나 공적입양 체계 전환 이후 길어진 절차와 반복되는 심사 속에 그 시간마저 허비되고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본 기사에 등장하는 사례는 실제 사례를 바탕으로 했으며, 아동의 사생활 보호와 가족 구성원의 정서적 안정을 위해 인적사항 일부를 익명 처리했습니다.)
◇ “국가가 연장아 만든다”는 현장의 절규
입양을 기다리는 부모들은 자신들의 답답함보다 아이를 더 걱정한다고 말한다. “우리는 기다릴 수 있지만 아이는 기다리면 안 된다”는 것이다. 실제 예비입양부모들 사이에서는 입양 절차가 늦어질수록 가장 먼저 떠오르는 걱정이 “그 사이 아이가 얼마나 컸을까”라는 말이라고 한다. 자신들이 힘든 것보다 아이가 시설에서 시간을 보내고 있다는 사실이 더 힘들다는 이야기다.
문제는 그 걱정이 단순한 감정적 호소에 그치지 않는다는 점이다. 입양이 늦어질수록 아이들은 시설이나 보호체계 안에 더 오래 머무르게 된다. 그 사이 아이들은 하루하루 자라고, 발달하고, 정서적 관계를 형성한다. 특정 보호자에게 익숙해질 즈음 또 다른 환경으로 이동하고 새로운 사람에게 적응해야 하는 일이 반복된다. 안정적인 애착을 형성해야 할 시기에 관계가 끊기고 다시 시작되는 일이 반복될 수 있다는 의미다.
한 예비입양부모는 아이와 연결이 이뤄진 뒤에도 곧바로 함께 생활할 수 없었던 시간이 가장 힘들었다고 말했다. 정해진 일정에 따라 아이를 만나러 갈 수는 있었지만, 만남이 끝날 때마다 다시 아이를 시설에 두고 돌아서야 했다는 것이다. 그는 부모가 될 준비를 마쳤음에도 실제 양육을 시작하지 못하는 시간이 큰 고통이었다고 털어놨다.
또 다른 예비입양부모 역시 비슷한 경험을 전했다. 이미 부모로서 마음을 정한 상태인데도 아이를 데려올 수 없었고, 매번 돌아설 때마다 “왜 내 아이를 두고 와야 하는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는 것이다. 이처럼 예비부모들이 느끼는 가장 큰 고통은 ‘기다림’ 그 자체가 아니다. 이미 마음으로는 가족이 된 아이를 눈앞에 두고도 함께할 수 없다는 현실, 그리고 그 시간만큼 아이의 성장 시기가 흘러가고 있다는 사실이 더 큰 상처로 남는다는 것이다.
입양 대기 과정의 문제점을 지적한 한 예비입양부모는 “아이 하루는 어른 하루와 다르다”며 입양 절차 지연이 단순 행정 문제가 아니라고 강조했다. 어른에게 한 달, 두 달은 기다릴 수 있는 시간이지만 아이에게는 다시 돌아오지 않는 성장 시기라는 것이다.
현장의 우려는 실제 월령 문제로 이어진다. 생후 10개월 무렵 입양될 수 있었던 아이가 절차 지연으로 15개월, 18개월, 24개월이 되고 시간이 흐를수록 점점 더 입양 문턱은 높아지는 구조가 반복되고 있다는 것이다. 결국 아이의 나이가 오를수록 입양 가능성도 함께 낮아지는 악순환이 만들어진다는 지적이다.
◇ 국내 공적입양, 해법은 없나
김미애 국민의힘 의원은 이를 두고 “국가가 연장아를 만들고 있다”고 비판했다. 아이를 더 일찍 가정으로 보낼 수 있었음에도 행정 지연으로 국가 스스로 아이들의 월령을 높이고 있다는 것이다. 그는 “이건 국가가 만든 재난과 다름없다”고 지적했다. 그는 “지금의 공적입양체계가 아이를 위한 제도인지 되묻고 싶다”고 했다. 아이를 보호하겠다는 명분으로 절차를 강화했지만, 정작 가장 중요한 시기에 가정으로 보내지 못하고 있다면 제도의 본래 취지와 어긋난다는 것이다.
이에 김 의원은 우선 현재의 절차 구조부터 전면 재검토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입양 신청과 범죄경력 조회, 교육, 가정조사 등 상당수 절차가 병행 가능함에도 단계별로 나뉘어 불필요한 대기 시간을 만들고 있다는 이유에서다. 실질적으로 동시에 진행할 수 있는 절차를 굳이 순차적으로 배치해 시간을 허비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자격심의 방식 역시 손봐야 할 대목으로 꼽았다. 김 의원은 지금처럼 부모의 가치관과 양육 기준까지 세세하게 들여다보며 시간을 끌 것이 아니라, 결격 사유 여부를 중심으로 간소화해야 한다고 보고 있다. 자격을 판단하는 절차가 ‘더 나은 부모’를 가려내는 과정으로 변질되면서 오히려 병목을 만들고 있다는 것이다.
결연 이후 절차 역시 보다 신속하게 정비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결연 통보와 수용 확인, 첫 만남까지 이어지는 과정을 최대한 단축해 아이와 부모가 빠르게 만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설명이다. 현재처럼 행정 절차가 반복되며 아이와 부모 모두의 시간을 빼앗아선 안 된다는 것이다.
법원 단계에 대한 지원 체계 보완 필요성도 언급했다. 임시양육 결정과 입양 허가 과정에서 예비부모들이 서류와 절차를 제대로 안내받지 못해 혼선을 겪는 일이 반복되고 있는 만큼, 국가가 보다 체계적인 안내 시스템을 갖춰야 한다는 주장이다.
무엇보다 김 의원은 국가 역할의 방향 자체가 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지금처럼 ‘어떻게 걸러낼 것인가’에 초점을 둘 것이 아니라 입양 이후 부모들이 안정적으로 아이를 키울 수 있도록 상담·교육·양육 지원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정책이 전환돼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국가는 눈을 크게 뜨고 흠을 찾을 것이 아니라 아이가 가정에서 잘 자랄 수 있도록 무엇을 도와줄지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지금 필요한 것은 더 많은 심사가 아니라 더 빠른 연결, 더 촘촘한 검증이 아니라 더 두터운 지원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아이를 지키기 위해 만든 제도가 아이의 시간을 빼앗고 있다면, 이제는 그 제도를 다시 돌아봐야 할 때다. 아이에게 주어진 시간은 어른들의 행정보다 훨씬 빠르게 흘러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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