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홍규의 AI 컨텍스터 선언②] AI는 텍스트를 찍고 인간은 맥락을 만든다

프라임경제
[프라임경제] 글쓰기가 너무 쉬워진 시대다. 인공지능(AI)을 이용하면 단 몇 초 만에 그럴듯한 문장이 쏟아진다. 사실 지식을 나열하고 생성하는 효율성 면에서 인간은 결코 AI의 상대가 되지 못한다. 하지만 AI가 출력하는 지식에 오류는 없을지 모르나, 인간의 깊은 고민 없이 조립된 문장들은 무미건조한 활자의 나열일 뿐이다. 기술이 답변을 완성해낼수록 그 속에 담겨야 할 우리의 고유한 관점과 생각은 오히려 갈 곳을 잃고 사라진다.

이 현상은 프랑스 철학자 장 보드리야르(Jean Baudrillard)가 예견한 세계와 닮아 있다. 그는 1981년 저서 '시뮬라시옹(Simulacres et Simulation)'을 통해 원본보다 더 진짜 같은 복제물이 현실을 압도하는 초실재(Hyperreality)의 위험을 경고했다. 가짜가 진짜를 규정하고 대체해 버리는 상태를 의미한다. 

이제 AI는 이러한 초실재를 단순히 설명하는 도구가 아니라, 그것을 대량으로 찍어내는 장치가 됐다. 삶의 구체적인 맥락이 빠진 AI의 문장들이, 역설적으로 우리의 판단 기준과 일상을 거꾸로 규정하기 시작한 것이다.

문제는 복제된 문장이 다시 새로운 복제물을 낳는 악순환이다. 데이터 사이언스 분야에서는 이를 '모델 붕괴(Model Collapse)'라 부른다. AI는 확률이 높은 평균값을 정답으로 선택하기에 독특한 통찰과 예외는 불필요한 찌꺼기로 치부돼 사라진다. 결국 AI가 만든 글을 다시 AI가 학습하는 과정이 반복될수록 세상의 지식은 개성을 잃고 평균의 늪에 함몰된다.

지식의 획일화는 결국 누가 우리 생각을 지배하느냐는 권력의 문제로 이어진다. 블룸버그의 기술 전문 칼럼니스트 파미 올슨(Parmy Olson)은 2024년 저서 '슈프리머시(Supremacy)'를 통해 거대 IT 기업들이 AI 주도권을 독점하며 기술 패권을 장악하는 현실을 분석했다. 올슨의 논지로 우리 시대를 보자. 우리가 '왜'라는 질문을 던지지 않고 AI의 편리한 정답에만 안주한다면, 우리는 결국 기업이 설계한 논리적 각본 안에 갇히게 된다.

맥락의 상실은 인간 사유의 고착화라는 비극도 낳는다. 스스로 고민하는 경로를 생략한 채 AI의 결론에 순응하는 순간, 지적 효율성은 타인의 논리를 빠르게 수용하는 순종적 능력으로 변질된다. 우리가 기술 권력의 틀 안에서 사유를 멈출 때 지능의 다양성은 메마르고 주체성은 설 자리를 잃는다.

그렇기에 AI가 글을 대신 쓸수록 인간은 컨텍스터(Contexter)로서의 정체성을 강화해야 한다. AI가 데이터상의 좌표를 찍는다면, 인간은 그 좌표들을 연결해 의미의 지도를 그려야 한다. AI는 확률 높은 답을 내놓을 뿐 의지도 책임도 없다. 

반면 인간은 이 글이 공동체에 어떤 파장을 일으킬지, 숨겨진 진실은 없는지를 집요하게 살핀다. AI가 정적인 점을 찍을 때 인간은 그 점들을 선으로 이어 역동적인 흐름을 만드는 주체가 되는 것이다.

요컨대 AI 시대의 실력은 문장을 다듬는 기술이 아니라, 그 문장에 어떤 의미의 질서를 부여하느냐에 달려 있다. AI가 지식을 무한 복제하며 세상을 평준화할 때 인간은 그 매끄러운 평면 위에 자신만의 사유의 굴곡을 새겨 넣어야 한다. AI의 조력을 받되 그 논리적 한계를 가로질러 나가는 시선이야말로 우리의 존재 이유를 증명하는 열쇠이기 때문이다.

이제 우리는 매끄러운 결과물 너머를 응시해야 한다. AI가 통계에 기대 납작한 결론을 내밀 때 그 표면을 깨뜨리는 인간의 날카로운 질문만이 새로운 맥락의 파동을 일으킨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답을 더 빨리 얻는 것이 아니라, 그 답이 우리 삶에 왜 필요한지를 끝까지 되묻는 것이다. AI가 정해준 정답을 거부하고 삶의 현장에서 나만의 질문을 길어 올리는 행위. 그것이 AI의 바다에서 컨텍스터인 우리가 스스로의 존재감을 증명하는 가장 우아한 방식이다.

최홍규 EBS 연구위원·AI교육팀장 / 미디어학 박사
Copyright ⓒ 프라임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alert

댓글 쓰기 제목 [최홍규의 AI 컨텍스터 선언②] AI는 텍스트를 찍고 인간은 맥락을 만든다

댓글-

첫 번째 댓글을 작성해 보세요.

로딩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