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라임경제] 오늘 점심 메뉴를 고를 때 당신은 단순히 맛집 리스트를 검색했는가, 아니면 함께 식사할 상대의 어제 기분과 선호하는 맛, 공간이 주는 분위기, 나아가 특정 브랜드가 전달하는 신뢰도까지 입체적으로 고려했는가.
필자는 여기서 인간의 사유를 두 가지 층위로 구분해 보고자 한다. 전자가 주어진 정보를 수동적으로 나열하고 소비하는 '텍스터(Texter)'식 접근이라면, 후자는 산재한 상황의 이면을 복합적으로 읽어내려는 '컨텍스터(Contexter)'적 사유에 가깝다.
텍스터는 무엇이 사실인가(What)를 묻고 고정된 데이터를 수집하는 데 집중하지만, 컨텍스터는 이 정보가 지금 우리에게 왜 중요한가(Why), 이 선택이 어떤 파장을 만들어낼 것인가(How)를 집요하게 파고든다.
이러한 사유의 차이는 우리가 기술을 대하는 태도에서도 고스란히 드러난다. 낯선 길을 운전할 때 내비게이션은 실시간 교통량과 예상 도착 시간 등 방대한 데이터를 쏟아낸다. 기계는 확률적으로 가장 최적화된 경로를 계산해 '좌회전'과 '우회전'이라는 구체적인 지시어(Text)를 끊임없이 생성한다.
그러나 예상치 못한 사고로 도로가 마비되는 순간, 기계는 동일한 지도 위에서 경로 재탐색만을 반복하며 이미 가진 데이터의 조합을 바꾸는 데 머무를 뿐이다. 반면 운전자가 과감히 핸들을 꺾어 이름 모를 마을 안길로 접어드는 결단은 정적인 데이터가 아니라 시간대와 지역 특성, 과거 경험을 한꺼번에 통찰하는 맥락적 사고(Contextual Thinking)에서 나온다. 텍스트 너머의 맥락을 읽는 인간만의 현장 감각이 기계의 지시를 넘어선 실천적 결단으로 이어지는 셈이다.
이 작은 장면은 지금 우리가 겪는 거대한 변화를 압축한다. 우리는 최첨단 인공지능(AI) 기술을 손에 쥐고도 정작 어디로 가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확신을 잃어가는 운전자를 닮아있다. 데이터는 폭발적으로 늘어나지만, 그것이 내 삶과 조직에 어떤 의미를 갖는지 가늠하는 능력은 오히려 퇴화하고 있다.
필자가 교육과 미디어 현장에서 목격하는 현실은 바로 이 '의미의 위계'가 허물어진 상태다. 경영과학자 러셀 아코프(Russell Ackoff)는 1989년 발표한 논문 '데이터에서 지혜로(From Data to Wisdom)'를 통해 인간의 사유가 데이터에서 정보·지식·이해를 거쳐 지혜로 나아간다고 설명했다. 위로 갈수록 관계와 패턴, 맥락과 판단이 중요해진다.
이 관점에서 보면, 아무리 방대한 데이터를 쌓아 올린다 해도 데이터 간의 관계를 통찰하고 맥락적 의미를 부여하지 못한다면 그것은 그저 귀를 어지럽히는 '소음'에 불과하다.
문제는 이 혼탁한 소음의 파고 위에 생성형 AI라는 강력한 조력자가 등장하며 우리 사유의 풍경을 더욱 복합적으로 만들고 있다는 점이다. 과거에는 정보의 획득 자체가 목적이었다면, 이제는 AI가 순식간에 쏟아내는 유려한 답변들 사이에서 무엇이 본질인지 가려내는 능력이 더욱 중요해졌다. 기계가 학습한 방대한 데이터는 때로 맥락이 거세된 채 '그럴듯한 정답'으로 둔갑해 우리가 스스로 사유하는 수고로움을 생략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이러한 지식의 풍요는 양면성을 띤다. 과거에는 소수의 전유물이었던 전문적 식견과 유려한 문장 직조 기술이 이제 알고리즘을 통해 모두에게 공유되고 있다. 누구나 전문가 수준의 정보에 즉각 접근할 수 있게 된 점은 분명 기술이 선사한 커다란 축복이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지식이 보편화될수록 개별 문장이나 파편화된 정보가 지니던 기존의 가치는 급격히 하락한다. 지적 평준화가 일어난 시대에 더 이상 '무엇을 아는가'는 차별화된 경쟁력이 되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제 진짜 희소한 자산은 기계가 복제할 수 있는 매끄러운 답변 그 자체가 아니다. 그 답변들을 어떤 맥락 위에 배열하고 어떤 가치 판단을 더해 새로운 의미를 창출해낼 것인가를 설계하는 안목, 즉 인간의 '맥락 설계 능력'이야말로 AI 시대의 진정한 차별점이 된다. 우리가 데이터를 직접 해체하고 의미를 구성하는 과정을 포기할수록 사유의 깊이는 축소될 수밖에 없다. AI가 텍스트를 무한 복제하는 시대에 우리를 구원하는 것은 정교한 문장이 아니라 그 문장들이 어떤 질서로 읽힐지를 설계하는 안목인 것이다.
이러한 사유의 위계 속에서 생성형 AI를 대하는 태도는 확연히 갈린다. 텍스터는 기계가 내놓은 답을 '최종 목적지'로 여기며 얼마나 빠르고 정확하게 정답에 도달하느냐에 머문다.
반면 컨텍스터는 AI의 답변을 '사유의 출발점'으로 삼는다. 기계가 제시한 결과가 어떤 데이터를 근거로 도출됐는지, 그 이면에 어떤 가치가 숨어있는지 끊임없이 심문하는 것이다.
기술에 휘둘리지 않고 주권을 지킨다는 것은 AI의 답을 곧이곧대로 믿는 대신, 그 답변이 우리 삶의 맥락 속에서 어떤 파장을 일으킬지 집요하게 따져 묻는 일이다. 맥락을 주도적으로 점유하는 자만이 AI라는 기계의 논리에 매몰되지 않고, 자신의 판단에 끝까지 책임을 지는 주권자로 남을 수 있다.
이제 AI 기술이 쏟아내는 결과값은 사유의 종착지가 아니라 새로운 해석과 기획의 출발지다. 기계가 직조한 텍스트는 인간이 부여한 맥락 안에서만 비로소 생명력을 얻는다.
이번 칼럼 시리즈를 통해 필자는 독자들과 함께 지식의 수집가라는 낡은 외투를 벗고, 파편화된 데이터 사이에서 자신만의 의미 지도를 그려나가는 '컨텍스터'의 감각을 연마해 보고자 한다. 사유의 고원에서 맥락의 지도를 그리는 이 실천이야말로 거대한 기술의 파고 속에서 인간다운 품격을 유지하는 유일한 길이며, AI가 대신할 수 없는 '질문의 주권'을 회복하는 첫걸음이기 때문이다.
최홍규 EBS 연구위원·AI교육팀장 / 미디어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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