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라임경제] 지금 세계는 눈에 보이는 전쟁과 보이지 않는 전쟁이 동시에 진행 중이다.
국제사회는 군비 확장에 막대한 자금을 투입하고 있지만, 정작 감염병 대응과 보건 위기를 막기 위한 재원은 줄어들고 있다.
세계보건기구(WHO)의 인도적·보건 재원은 지난 10년 사이 가장 큰 폭으로 감소했다. 반면 전 세계 군사비는 연간 2조5000억달러(약 3675조원)를 넘어섰다. 위기를 유발하는 데는 더 많은 자원이 투입되면서도, 이를 해결하기 위한 노력에는 상대적으로 인색한 '역설적 구조'가 고착화되고 있는 셈이다.
이같은 흐름은 전쟁이나 분쟁 지역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의료 시스템 내부에서도 비슷한 균열이 나타나고 있다. 특히 한국의 의료 현장은 '또 다른 전선'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의정 갈등이 길어지며 의료 공백이 이어지는 가운데, 현장을 떠받치는 전공의들의 근무 환경은 여전히 제자리걸음이다. 지난해 도입된 근무시간 단축 시범사업으로 주 72시간(최대 80시간), 연속 24시간 제한이 마련됐지만, 현장은 이를 크게 벗어나 있다.
대한전공의협의회가 최근 발표한 '2026 전공의 실태조사'는 이 괴리를 분명히 보여준다. 전공의 3분의 1이 여전히 법정 시간을 초과해 근무하고 있다. 실제 근무시간이 전산 기록보다 길다는 응답도 적지 않았다. 제도와 현실 사이의 간극이 여전히 크다는 의미다.
연속 근무 역시 문제다. 하루 24시간을 넘기는 근무가 반복되는 상황에서 환자 안전과 의료의 질을 담보하기는 쉽지 않다. 과로가 일상화된 환경은 결국 의료사고 위험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그러나 단순히 '근무시간'만의 문제가 아니다. 의료분쟁에 대한 불안은 전공의들의 진료 방식까지 바꾸고 있다. 상당수가 분쟁 가능성을 우려해 방어 진료를 하고 있다고 답했다. 이는 필수의료 기피와 진료 위축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에서 더 큰 문제다.
더욱이 의료사고 발생 시 병원의 법적 보호를 충분히 기대하기 어렵다는 인식, 체계적인 교육 부족 등은 전공의 개인에게 과도한 책임을 떠넘기는 구조를 고착화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정신적 부담도 한계에 다다르고 있다. 상당수가 우울감이나 극심한 스트레스를 경험하고 있다. 일부는 자살 충동까지 겪고 있다는 조사 결과는 더 이상 외면할 수 없는 경고다. 폭언과 위계적 문화 역시 여전히 잔존해 있다는 점은 수련환경의 구조적 문제를 드러낸다.
결국 지금의 의료 현장은 '버티는 시스템'에 가깝다. 인력의 희생과 인내에 의존해 유지되는 구조는 장기적으로 지속 가능하지 않다.
전공의 근무시간 제한을 둘러싼 논쟁도 같은 맥락에서 봐야 한다. 단순히 시간을 줄이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환자 안전과 의료 인력 보호를 동시에 달성할 수 있는 구조를 어떻게 설계할 것인가의 문제다.
의료 현장에서 환자를 지키는 일은 전쟁에 비견되기도 한다. 이 전선이 무너지지 않기 위해서는, 전공의 개인의 희생이 아니라 시스템의 변화가 먼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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