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라임경제] 자동차 제조업체 소속 근로자 A씨는 도장 작업을 십수년 간 반복해왔다. 특별히 위험한 일을 했다는 생각은 없었다. 하지만 어느 날 백혈병 진단을 받았고, 뒤늦게 알게 된 사실은 작업에 사용하던 유성페인트와 시너가 원인이었을 가능성이다.
◆ 벤젠, 낯선 이름이지만 익숙한 물질
벤젠은 달콤하면서도 향긋한 냄새가 나는 무색의 휘발성 유기용제로, 우리가 주유소에서 주유할 때마다 맡는 휘발유 냄새는 벤젠 때문인 것이다. 뿐만 아니라 페인트나 매니큐어, 테니스 공, 타이어, 본드 등에도 포함돼 있다. 도료, 접착제, 세척제, 인쇄 잉크 등 다양한 산업현장에서 사용되어 왔다. 이러한 작업에서는 직·간접적으로 벤젠에 노출될 가능성이 높다. 문제는 이 물질이 국제적으로 인정된 1급 발암물질이라는 점이다.
◆ "냄새는 독하지만 괜찮다"는 착각
지금은 작업환경이 많이 개선되었지만, 과거 산업현장에서는 벤젠이 포함된 용제를 별다른 보호 장비 없이 사용하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
실제 몇몇 작업환경 자료를 보면 일부 공정에서는 상당히 높은 농도의 벤젠에 노출된 사례도 확인된다. 하지만 당시에는 위험성에 대한 인식이 부족했고 "냄새가 독하다"는 정도로만 받아들여졌을 뿐이다. 작업 중 급성 중독으로 쓰러지지만 않으면 괜찮다고 여겼다. 그 결과, 수십 년이 지난 지금에서야 그 영향이 혈액암 발병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있다.
그러나 벤젠의 위험성을 인지하고 벤젠에 대한 작업환경 노출기준이 지속적으로 강화되어 왔다. 과거에는 허용기준이 10ppm 수준이었지만, 2003년 7월경부터 10배 강화된 수준인 1ppm, 2016년 8월경부터는 0.5ppm으로 단계적으로 낮아졌다. 이는 단순한 규제 변화가 아니라, 저농도 라도 장기간 노출될 경우 암 발생 위험이 증가할 수 있다는 과학적 근거가 반영된 결과다.
즉, 과거 기준에서는 "문제없다"고 여겨졌던 작업환경이라 하더라도, 현재의 기준으로 보면 충분히 위험한 노출 수준이었을 가능성이 있다. 이러한 변화는 산재 판단에서도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누적 노출과 장기적인 건강 영향을 함께 고려해야 한다는 방향으로 판단이 이루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 벤젠 노출과 직업성 암, 어떻게 판단할까
벤젠은 주로 △백혈병 △다발성골수종 △비호지킨림프종 △골수형성이상증후군 △재생불량성 빈혈 등 조혈기계 질환(암)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산재 판단에서는 벤젠을 사용했는지 작업 내용, 노출 정도, 잠복기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게 된다.
특히 벤젠 '노출 정도'에 따른 직업병 인정기준을 산재법 시행령 제34조제3항 [별표 3] 제5호와 제10호에서 규정하고 있다.
✓백혈병, 골수형성이상증후군, 무형성 빈혈 : 0.5피피엠 이상 농도에 노출된 후 6개월 이상 경과 ✓다발성골수종・비호지킨림프종 : 0.5피피엠 이상 농도에 노출된 후 10년 이상 경과(다만, 노출기간이 10년 미만이라도 특정 시점에 집중적으로 상당한 농도에 노출되어 발생한 경우도 직업병 인정) |
◆ '과거의 작업환경' 검토해보기
직업성 암의 가장 큰 특징은 현재가 아니라 과거에서 원인을 찾아야 한다는 점이다.
지금은 안전해 보이는 작업이라도, 과거에는 충분한 보호 없이 유해물질에 노출되었을 가능성이 있다. 림프조혈기계 암(질환)이 근무를 시작한 초기의 노출이 발병에 영향을 미쳤을 수도 있고, 장기간 저농도의 지속적 노출이 원인이었을 수 있다.
백혈병, 림프종, 다발성골수종, 골수형성이상증후군 등의 림프조혈기계 암(질환) 진단을 받았을 때, 많은 근로자들이 이를 개인적인 원인이나 불운 정도로 치부할 수 있다.
하지만 과거 산업현장에서 세척, 도장, 인쇄, 화학약품 취급 등의 업무를 수행해왔다면, 그 원인이 직업적 요인일 가능성도 충분히 존재한다. 보이지 않는 화학물질은 기억 속에서도 쉽게 잊혀진다. 하지만 그 영향은 결코 사라지지 않는다. 혹시 과거의 작업환경이 떠오른다면, 그 기억을 한 번쯤 되짚어 볼 필요가 있다.

허종화 노무법인 소망 부대표노무사
現 대한진폐재해자보호협회 자문노무사
前 강북노동자복지관 노동법률상담위원
前 서울외국인주민지원센터 전문상담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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