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위크=박설민 기자 남위 66° 33′ 이남, 세상의 끝 ‘남극(Antarctica)’은 지구상에서 5번째로 큰 대륙이다. 총 면적은 1,400만km²로 호주 대륙보다 크고 유럽 전체보다 면적이 넓다. 또한 인간의 활동이 거의 없어 독특한 생태계와 자원들을 품고 있는 ‘자연의 보물창고’이기도 하다.
물론 남극을 인위적으로 개발하는 것은 국제적으로 엄격히 제한되는 행위다. ‘환경보호에 관한 남극조약 의정서’와 유엔(UN) 여러 국제기구들의 움직임 덕분이다. 하지만 최근 불안정한 국제 정세를 보면 남극이 ‘반드시’ 지켜질 것이란 보장은 어렵다.
실제로 미국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재선 후 ‘북극’의 상업적 개발도 가속화되고 있다. 이에 과학자들 사이에선 남극과 같은 극지 환경이 지구에 미치는 영향과 보존 가치에 대해 대중들에게 적극 알려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 세상의 끝에서도 ‘국가 분쟁’은 있었다
사실 여러 국가들이 남극을 ‘탐냈던 것’은 예전부터 있었던 일이다. 오히려 환경 보호의 중요성이 국가적으로 자리 잡은 현재보다 남극 쟁탈 경쟁은 치열했다. 한때 완전히 주인 없이 없는 땅처럼 보이는 남극을 차지하기 위해 20세기 초부터 몇몇 국가들의 ‘땅따먹기’ 경쟁이 발생하기 시작하면서다.
대표적으로는 ‘영국·아르헨티나·칠레’의 남극 영유권 분쟁을 꼽을 수 있다. 1950년대, 영국과 칠레, 아르헨티나는 대표적인 남극 대륙 연구를 진행하던 국가였다. 각 국가들은 남극 내 자국의 영향력 확대를 위해 경쟁적으로 연구 기지를 설치하고 활동 범위를 넓혀 나갔다.
그러던 와중 세계 역사에 남을 큰 사건이 발생한다. 바로 ‘디셉션 섬 사건(Deception Island incident)’이다. 1953년 2월 영국 해병대가 남극 디셉션 섬에 상륙, 아르헨티나 해군 두 명을 포로로 잡고 아르헨티나 해군기지와 칠레 기지를 파괴한 사건이다.
1943년 영국은 남극 대륙 일부에 대한 영유권 주장에 나섰다. 이를 ‘타 바린 작전(Operation Tabarin)’이라 부른다. 이 작전은 당시 남극 영유권을 주장하던 아르헨티나와 칠레의 주권 표시물(깃발, 구조물 등)을 파괴하는 것이다. 이때 작전을 수행하던 영국 해군은 남극 ‘디셉션 섬’에 군사기지를 건설했다.
이후 1952년, 아르헨티나 해군도 디셉션 섬에 군 주둔 및 재보급용 기지를 건설했다. 이후 1953년 1월 13일 아르헨티나의 수송선 ‘ARA Bahia Aguirre’호는 인력과 물자 하역을 위해 디셉션 섬 인근 만에 진입했다. 이를 확인한 영국 해군은 디셉션 섬이 영국 영토라 주장하며 아르헨티나 해군 측에 항의 서한을 전달했다.
그러나 이에 대해 아르헨티나 해군도 영국 해군 측에 역으로 항의, 양 측 긴장감이 고조되기 시작했다. 이에 1월 30일 영국 해군은 ‘아르헨티나와 칠레 해군의 디셉션 섬 상륙은 고의적 도발로 이를 용납할 수 없다’고 공식 서한을 포클랜드 제도 행정부에 보냈다. 이에 2월 15일 14시 5분, 총 35명의 영국 해군이 디셉션 섬의 아르헨티나와 칠레 해군기지를 기습 공격했다. 각 군은 소총과 기관총, 총검으로 중무장한 상태였다. 인간의 손이 닿지 않은 천혜의 자연에서 지구 역사상 처음으로 ‘군사 무력 충돌’이 벌어진 것이다.
다행히 사망자는 발생하지 않았으나, 영국 해군은 아르헨티나 해군 둘을 포로로 잡았다. 또한 아르헨티나 기지와 칠레 기지를 불태웠다. 이후 아르헨티나와 칠레는 영국에 강력한 외교적 항의를 진행했다. 그 과정에서 칠레 측은 군함 파견 검토라는 초강수를 두기도 했다. 하지만 3국은 최종적으로 전면전은 피하고 긴장은 외교적으로 봉합됐다.
◇ 남극을 지키는 방패 ‘남극조약’
1950년대 디셉션 섬 사건을 비롯한 크고 작은 갈등에 남극은 몸살을 앓았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남극이 가진 자연적 가치, 기후변화 문제 등 과학계의 주요 연구들이 쏟아졌다. 이에 국제적으로도 남극은 그 누구의 소유도 아니며 보존해야 할 장소라는 의견이 공론화되기 시작했다.
이에 1958년 남극 역사를 바꿀 국제 조약이 만들어진다. 바로 ‘남극조약(Antarctic Treaty)’이다. 1957년부터 1958년까지 진행된 글로벌 초대형 과학프로젝트 ‘국제 지구관측년(International Geophysical Year, IGY)’ 진행 하에 만들어졌다. 1961년 6월 23일부터 발효된 남극조약은 냉전 시작 이후 처음으로 맺어진 군비규제협정이기도 하다.
남극조약은 남극을 군사적 경쟁이나 영유권 분쟁 공간이 아닌 평화적 과학 연구의 공동 영역으로만 사용한다는 규정이다. 이에 따라 남극 내에서는 모든 군사 활동이 금지된다. 핵실험, 방사성 폐기물 투기도 금지된다. 또한 기존 영유권 주장은 동결되며 새로운 주장도 인정되지 않는다. 대신 남극에 기지를 설치한 각국은 활동에서 상호 협력과 정보 공유를 허용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현재 남극조약은 미국과 노르웨이, 뉴질랜드, 벨기에, 러시아, 남아프리카 공화국, 영국, 아르헨티나, 호주, 일본, 칠레 등 47개 국이 가입한 상태다. 우리나라는 1986년 11워 28일 33번째로 조약에 가입했다. 이후 1989년 세계에서 제23 번째로 ‘남극조약협의당사국(Antarctic Treaty Consultative)’를 획득했다.
남극조약협의당사국 지위 획득에 따라 우리나라의 남극 내 활동은 남극조약체제 운영에 따라 진행된다. 대표적으로 ‘남극 활동 허가 신청’이 있다. 외교부에 따르면 남극 내 연구 및 활동이 이뤄지기 위해선 관련 내용을 정부에 신청해야 한다. 만약 외교부 장관의 허가 없이 남극 활동을 하게 되면 3년 이하 징역 또는 3,000만원 이하 벌금에 처해진다.
특히, 우리나라는 서남극 킹조지섬 지역에서 ‘남극특별보호구역(ASPA) No. 171 나레브스키 포인트’의 보호·관리 역할을 맡고 있다. 일명 ‘펭귄마을’이라 불리는 이곳은 남극세종과학기지에서 남동쪽으로 2km 떨어진 지역이다. 펭귄을 포함한 14종의 조류와 88종의 식물이 살고 있다. 현재 알려진 바로는 젠투펭귄은 5,000여쌍, 턱끈펭귄은 2,500쌍이 분포한다.
펭귄마을은 기후에너지환경부가 2008년 6월 제31차 당사국회의서 해당 지역 관리계획서를 제출, 최종적으로 보호구역 지정이 이뤄졌다. 이곳을 방문하기 위해선 사전에 ‘극지연구소(KOPRI)’와 외교부를 통해 허가 신청을 해야 한다. 이는 ‘남극활동법 제5조’에 의한 것이다.
◇ 2048년 재검토 가능해지는 ‘남극조약’, 남극 광물 개발 가능성은
남극조약이라는 방패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일각에서는 남극 영유권을 둘러싼 국제 분쟁이 다시 발생할 수 있다는 우려는 여전하다. 특히 ‘기후변화’가 가속화될 경우 그 흐름은 더욱 빨라질 것으로 예상된다. 빙하가 없는 남극 지역에 잠든 막대한 자원 소유권을 두고 미래 선점 경쟁이 유발될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캐나다 맥길대학교 지구행성학과, 미국 캘리포니아대학교 지구행성학과, 영국 임페리얼 칼리지 지구과학과 공동 연구팀은 지난달 20일 국제학술지 ‘네이처(Nature)’에 향후 빙하가 녹은 남극의 땅에선 새로운 영유권 분쟁이 발생할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했다.
공동 연구팀은 기후변화로 인한 해수면 변화 모델, 온실가스 배출 시나리오를 기반, 남극 빙하 융해 상황을 예측했다. 그 결과, 빙하가 녹아 향후 3세기 동안 남극 대륙에서 최대 12만km² 면적의 땅이 드러날 것으로 예상됐다. 이는 현재 남극 내 빙하가 없는 지면 규모의 550% 수준이다.
연구팀은 남극 지역과 유사한 환경의 남아메리카 안데스 산맥 주변 부 광물 매장량 데이터를 기반, 남극 내 광물 자원 분포를 추정했다. 그 결과, 우리나라 세종기지가 위치한 서남극 지역은 지질학적 환경을 고려할 때, 새로운 광물 매장지가 발견될 가능성이 높았다. 만약 2300년 기준 기후변화로 빙하가 녹아 노출된 서남극 지역의 구리 매장량은 약 1,170만톤에서 2,480만톤으로 추정됐다.
연구팀은 “지질학적 환경과 기존 광물 매장지 분포를 고려할 때 빙하 없는 땅이 드러나면서 이 지역에서 새로운 광물 매장지가 발견될 가능성이 높다”며 “향후 수 세기 동안 남극 광물 자원의 경제적 가치가 높아짐에 따라 남극 자원 개발에 대한 사회적 압력과 균형이 이뤄져야 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현재 남극 광물 자원 개발은 남극조약 내 ‘환경보호에 관한 남극조약 의정서(Protocol on Environmental Protection to the Antarctic Treaty)’에 따라 금지되고 있다. 의정서에는 ‘과학적 연구를 제외하고는 광물자원과 관련된 어떠한 활동도 금지된다’고 명시돼 있다.
일각에서는 향후 남극조약이 만료될 경우, 남극 대륙 내 광물 개발이 이뤄질 수 있다고 주장한다. 실제로 남극조약은 2048년 이후 검토가 예정돼 있다. 연구팀 역시 “남극은 광물 자원 채굴이 이뤄지지 않은 유일한 대륙”이라며 “남극조약협의당사국들은 환경의정소 재검토를 요구할 수 있는 2048년 광물 자원 개발 관련 문제를 다시 활발히 논의할 가능성이 높다”고 지적했다.
극지 전문가들은 이 같은 우려에 대해선 가능성이 낮을 것으로 보고 있다. 신형철 극지연구소 소장은 ‘시사위크’와의 통화에서 “남극조약 발효가 만 50년 되는 2048년 조약이 만료된다는 이야기가 있는데 이는 명백한 오류”라며 “조약 검토는 이뤄질 수 있지만 이는 남극 환경보호의정서를 폐기하는 것이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다만 신형철 소장 “현실적으로 실현 가능성은 매우 낮지만 남극 자원 개발 가능성과 관련한 미래 변수가 존재할 수는 있다”며 “때문에 우리나라도 극지연구소를 중심으로 남극의 국가적 영향력 증대와 과학 영토의 확장 개념으로 연구 활동을 하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런 남극 연구 활동이 남극조약의 국제 회의가 진행될 때 한국이 남극 환경에 대한 보존과 과학 연구 성과 확보, 평화를 위해 힘쓰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며 “극지연구소는 남극조약의 정신을 이어가겠다는 다짐을 늘 하고 있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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