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마이데일리 = 심지원 기자] 글로벌 핵심 수송로인 호르무즈 해협이 문을 닫았다. 과거 수차례 반복됐던 봉쇄 위기와 달리 이번엔 이란 전쟁의 전면화와 함께 해협이 물리적으로 완전 봉쇄되면서 산업계에 공포가 엄습하고 있다. 정부와 국내 정유사들은 비상 경영 체제에 돌입하며 비축유 점검에 나서고 급등세를 보였던 국제유가가 일단 숨고르기에 들어갔지만, 사태가 장기화할 경우 감당하기 어려운 수준의 유가 폭등이 현실화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5일 ICE 선물거래소에 따르면 5월 인도분 브렌트유 선물 종가는 전날과 동일한 배럴당 81.40달러를 기록했다. 수치상으로는 보합이지만 브렌트유는 장중 한때 84.48달러까지 급등하며 이틀 연속 80달러 중반선을 위협했다.
사태 발생 직전인 지난달 27일까지만 해도 배럴당 71.35달러(두바이유 현물 기준) 선에서 평온을 유지하던 국제유가는 호르무즈 해협의 물리적 봉쇄라는 초유의 사태와 함께 단 4거래일 만에 15.2% 폭등하며 81달러선을 단숨에 뚫어냈다. 뉴욕상품거래소의 4월 인도분 서부텍사스산원유(WTI) 역시 배럴당 74.66달러까지 오르며 80달러선 진입을 가시권에 뒀다.
전문가들은 이번 유가 급등의 성격이 과거와 다른 조짐을 보인다고 분석한다. 2019년 유조선 피격이나 2023년 홍해 위기 당시에는 통항 지연 수준에 그쳤지만, 이번에는 이란이 호르무즈 해협 완전 봉쇄를 공식 선언하고 민간 유조선을 직접 타격하는 등 물리적 통제가 수반되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2023~2024년 중동 위기 국면에서 브렌트유가 70달러 초반 박스권에 머물렀던 것과 달리, 이번에는 단 사흘 만에 80달러 고지를 탈환했다는 점도 시장의 공포 심리를 자극하고 있다.
호르무즈 해협은 전 세계 해상 석유 교역량의 약 27%가 통과하는 전략적 요충지다. 해협의 전체 폭은 55㎞에 이르지만, 실제 유조선이 통항할 수 있는 구간은 10㎞ 이내에 불과하며 이마저도 모두 이란 영해에 속해 있다.
해협 봉쇄 위기는 과거에도 있었다. 1980년부터 8년간 이어진 이란-이라크 전쟁 당시 이른바 ‘유조선 전쟁’으로 약 540척의 선박이 피격됐지만, 미 해군의 호위 작전으로 해협 기능 자체가 마비되지는 않았다. 2011년 이란 핵 개발을 둘러싼 제재 국면에서도 이란은 봉쇄를 위협했으나, 실제 전면 차단으로 이어지지는 않았다. 2019년 오만 인근 해상에서 유조선 6척이 공격을 받았을 때도 해상 보험료가 폭등하고 인근 국가들의 긴장이 고조됐지만, 해협은 폐쇄되지 않았다.

그러나 이번에는 상황이 다르다. 이란이 공식적으로 통행 불가를 선언하고 실질적 차단 조치에 나서면서, 지난 반세기 동안 단 한 번도 현실화되지 않았던 실전 봉쇄가 가동됐다는 점에서 시장 위기감이 극에 달하고 있다.
이에 따라 거래량도 폭발적으로 늘었다. 특히 선물 거래량이 역대 최고치를 경신하며 ‘패닉 바잉(공포 매수)’ 양상이 나타나고 있다. ICE 선물거래소의 지난 3일자 일일 보고서를 분석한 결과, 브렌트유 선물 거래량은 470만6954계약을 기록해 올해 일평균 거래량(173만7701계약) 대비 무려 271% 가까이 폭증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전날인 2일 기록했던 역대 최고치(428만계약)를 단 하루 만에 경신한 수치다.
중동발 공급망 절단 우려는 대체재인 미국산 원유와 실물 경제의 연료인 경유로 빠르게 전이되고 있다. 같은 기간 뉴욕상업거래소의 WTI 거래량은 101만7475계약으로 연간 평균 대비 214% 늘었다. 원유뿐 아니라 경유와 천연가스(TTF) 거래량도 평소보다 2.5배 이상 치솟으며, 호르무즈 봉쇄가 단순한 위협을 넘어 실질적인 공급망 절단으로 이어질 것이라는 분위기가 감지되고 있다.
김태황 명지대 국제통상학과 교수는 “이번 사태는 미국이 이란을 공격하며 체제 붕괴를 목표로 하고 있다는 점에서 과거 사례와 질적으로 다르다”며 “이란은 사활이 걸린 문제이기 때문에 군사력 차이가 크더라도 물러서지 않고 장기화 전략을 택할 가능성이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만일 이란이 공격을 받은 상황에서 보복을 감수해 장기전을 선택한다면, 해협 봉쇄 등 물류에 대한 위협은 과거보다 더 심화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유가 상승폭에 대해서는 최악의 시나리오를 염두에 둬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 교수는 “호르무즈 봉쇄가 보름에서 한 달 이상 장기화될 경우 국제 원유 공급이 제한되면서 유가가 100달러를 넘어 추가 상승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며 “최악의 시나리오를 고려해 국내 기업과 정부가 대응 전략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호르무즈 해협 봉쇄 사태가 장기화될 경우 국내 산업에 미치는 영향은 광범위할 것으로 예상된다. 특히 중동산 원유 수입 비중이 높은 정유·석유화학 산업은 원가 상승과 공급 불안이라는 직격탄을 맞을 가능성이 높다. 우리나라는 지난해 기준 전체 원유 수입의 69.1%를 중동에 의존하고 있으며, 이 가운데 95% 이상이 호르무즈 해협을 경유한다. 사실상 국내 에너지 수급이 호르무즈 해협의 안정성에 좌우되는 구조다.
전력·에너지 집약적 산업인 데이터센터, 철강, 제철업 등도 비용 부담이 커진다. 김 교수는 “원재료 가격 상승은 소비재 가격 상승과 연결되며, 이는 소비 위축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전했다. 현대경제연구원은 해협이 수개월 막힐 경우 유가가 100달러까지 올라 올해 성장률은 0.3%포인트(p) 떨어지고, 물가 상승률은 1.1%p 오를 것으로 전망했다. 유가가 150달러까지 치솟을 경우 성장률 0.8%p 하락과 물가 2.9%p 상승이라는 복합적 충격이 이어질 것으로 예측했다.
다만 정부는 현재 비축유 규모를 감안할 때 단기적인 수급 불안 가능성은 높지 않다는 입장이다. 문신학 산업통상부 차관은 지난 3일 ‘중동 상황점검 긴급 관계부처회의’ 브리핑에서 “정부 비축량 7648만 배럴과 민간 업계 비축량 7383만 배럴을 합치면 즉시 사용 가능한 물량이 약 1억5700만 배럴 수준”이라며 “향후 3개월 내 추가 확보 가능한 물량 3500만 배럴까지 포함하면 총 208일분 정도의 대응 여력이 있다”고 말했다.
실제 한국석유공사에 따르면 지난해 9월 말 국제에너지기구(IEA) 기준 우리나라의 석유비축 지속일수는 네덜란드·덴마크·핀란드·헝가리·일본에 이어 6위를 기록했다.
석유비축 지속일수는 전체 비축 물량을 전년도 일평균 석유 순수입량으로 나눈 지표로, 공급 차질이 발생했을 때 국내에서 버틸 수 있는 기간을 의미한다. IEA는 회원국에 원유 순수입량 기준 최소 90일분의 비축유 확보를 권고하고 있는데, 한국은 이를 크게 웃도는 수준의 비축량을 보유한 셈이다.
김정관 산업부 장관도 이날 캐나다 초계 잠수함 프로젝트(CPSP) 수주 지원을 위해 출국하며 “원유 208일분 비축 등을 통해 수개월 동안 큰 문제는 없을 것으로 본다”며 “상황이 장기적으로 갈 수도 있는 만큼 원유 수급에 만전을 기하겠다”고 말했다.
정유업계 역시 정부와 함께 대응 방안을 모색한다는 방침이다. 업계 관계자는 “확보된 비축유를 토대로 대응하고 있으며, 유가 변동 상황을 보면서 정부와 함께 추가 대책을 마련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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