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위크|명동=이영실 기자 넷플릭스 시리즈 ‘브리저튼’ 시즌4의 중심에 선 한국계 배우 하예린이 한국을 찾았다. 전 세계적인 화제를 모아온 이 시리즈에서 그는 베네딕트 브리저튼의 상대역 ‘소피’로 낙점되며 새로운 얼굴로 주목받고 있다. 공개 직후 글로벌 차트 1위에 오르며 존재감을 입증한 가운데, 하예린은 “아직도 실감이 나지 않는다”고 말했다.
원로배우 손숙의 손녀로도 알려진 하예린은 호주에서 성장해 할리우드와 글로벌 콘텐츠 시장을 오가며 활동해 왔다. 넷플릭스 시리즈 ‘서바이버스’, 드라마 ‘헤일로’ 등에 출연하며 주목을 받았다. 이번 ‘브리저튼’ 시즌4에서는 신데렐라 모티프를 변주한 서사의 중심인물 소피를 연기하며 다양한 인종이 공존하는 세계관 속에서 또 하나의 새로운 얼굴을 더했다.
하예린은 지난 4일 서울시 중구 명동 커뮤니티하우스 마실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브리저튼’ 합류 과정부터 캐릭터 접근 방식, 노출 장면을 둘러싼 고민, 그리고 동양계 배우로서 체감하는 업계의 변화까지 솔직하게 털어놨다.
-글로벌 톱 1위를 기록했다. 한국에서도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데 기분이 어떤가.
“많이 설렌다. 한국에 1년 반 정도만에 오게 됐는데 한국말이 어색할 수 있어서 미리 죄송하다. 많이 긴장되고 설렌다. 오늘 차트 1위까지 갔다는 소식을 들었다. 한국에서 외국 작품이 차트에 올라가기 쉽지 않다고 해서 놀랐고 감사한 마음이 크다. 사실 실감은 안난다. 손에 닿지 않는 일처럼 느껴진다.”
-합류 과정은.
“외국에서는 셀프 테이프를 많이 보낸다. 스스로 동영상으로 찍어 보내는 방식이다. 한국에 있을 때 마트에서 장을 보고 있는데 에이전트에게 전화가 왔다. ‘브리저튼’ 아냐고 묻더라. 당연히 안다고 했다. 오디션이 있는데 24시간 안에 셀프 테이프를 제출해야 한다고 하면서 장면 두 개를 보내줬다. 티 장면과 레이크 장면이었다. 하루 만에 외우고 직접 촬영해 보냈다. 아무 생각 없이 보냈다. 당연히 답이 안 올 줄 알았다. 그런데 며칠 뒤에 줌으로 미팅을 해야 한다는 이메일을 받았다. 감독과 줌으로 만났고 또 며칠 후 루크 톰슨과 함께 ‘케미스트리’ 오디션을 해야 한다는 연락을 받았다. 시차 때문에 한국 시간으로 밤 11시에 오디션을 봤다. 하루 종일 엄청 떨다가 밤 11시에 줌으로 연기했다. 그리고 며칠 뒤 엄마와 아침을 먹고 있는데 전화가 왔다. 소피, 즉 주인공이 됐다는 소식이었다. 엄마와 함께 눈물을 흘리고 소리를 질렀다. 주변 사람들이 ‘저 여자 괜찮나’라는 표정으로 쳐다봤던 기억이 난다.(웃음)”
-오디션을 보고 합격할 거라는 느낌이 왔나.
“케미스트리 리드를 했을 때 연기가 잘 흐르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도 ‘나보다 더 예쁜 여자가 있지 않을까, 재능도 실력도 좋은 배우가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나는 다른 여배우들을 보지 못했기 때문에 그냥 최선을 다해야겠다고 생각했을 뿐이다. 그런데 루크의 말로는 내게서 바로 소피의 모습이 보였다고 하더라.”
-베네딕트 브리저튼 역의 루크 톰슨과의 호흡은 어땠나. 어떻게 가까워졌나.
“루크와 억지로 해야겠다는 생각보다 다행히 촬영이 시간 순서와 비슷하게 진행됐다. 소피와 베네딕트가 서로를 알아가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보니, 루크 톰슨과도 케미스트리를 자연스럽게 알아가면서 연기할 수 있어서 좋았다. 3화 호수 장면을 비교적 일찍 촬영했는데 그 장면을 찍으면서 서로를 많이 알아갈 수 있는 시간이었다. 솔직한 시간이었기 때문에 서로의 속마음도 많이 알게 됐다. 그래서 더 친해질 수 있었다. 웃음 코드도 비슷하다. 너무 존경하는 배우이기도 하고 친구이기도 하다. 친구로서 사랑이 많은 사람이고 인간적으로도 좋은 사람이라 그런 것들이 자연스럽게 화면에 나오지 않았나 생각한다.”
-루크 톰슨이 함께 오지 못한 이유는 무엇인가. 두 사람이 실제 커플이 되길 응원하는 팬들의 반응에 대한 생각도 궁금한데.
“루크는 뉴욕에서 다른 홍보 일정을 소화하고 있다. 각자 홍보 활동의 시간을 보내고 있다. 나는 한국에서 할 수 있어서 행복하고 의미 있게 생각한다. 베네딕트와 소피를 보면서 그 관계가 현실에서도 이어지길 바라는 희망 같은 마음으로 보는 분들도 있는 것 같다. 나 역시 루크를 친구로서 정말 고맙게 생각하고 있고 그런 마음이 자연스럽게 보이지 않나 생각한다. 사람들이 그렇게 생각해 주신다면 감사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극 중 시대적 배경을 생각하면 소피가 한국계 동양인이라는 설정은 판타지에 가깝다. 이러한 설정에 설득력을 부여하기 위해 고민한 지점이 있다면.
“‘브리저튼’에는 다양한 배우들이 있다. 인종적으로도 그렇다. 물론 작품의 배경은 19세기로 설정돼 있지만, 그 시대를 어떻게 현대적으로 만들어내느냐에 작품의 힘이 있다고 생각한다. 결국에는 19세기라는 설정과 환경이 배경으로 존재하지만 이야기의 코어는 사랑 이야기다. 그래서 소피가 19세기에 어떻게 속해 있느냐보다는 인간의 감정과 그 진실을 어떻게 표현하느냐가 더 중심이라고 생각했다. 그 부분에 더 집중했던 것 같다. 영국의 시대적 배경을 두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 시대적 배경을 오늘날의 감각으로 반영해 내는 점을 잘한다고 생각한다. 누구나 봤을 때 자신이 상상하는 사랑 이야기의 환상을 투영해서 볼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렇기 때문에 아름답고 전 세계 관객의 마음에 닿는, 사랑받는 이야기를 만들 수 있는 것 아닐까 생각한다. 다양한 인종과 성적 취향 등 여러 요소를 포괄하는 이야기기 때문에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다양한 인종의 배우들이 등장하는데도 작품 속에서 매우 자연스럽게 어우러지는 모습이 인상적이다. 그 자연스러움은 어디에서 나온다고 생각하나.
“‘브리저튼’이 굉장히 잘하는 것 중 하나는 피부색이나 외적인 요인으로 상대를 판단하지 않는 사회의 모습을 그려낸다는 점이라고 생각한다. 우리가 상상해 볼 수 있는 이상적인 사회의 모습이라고 느낀다. 편견도 없고 인종차별도 없는 사회 말이다. 제작자인 숀다 라임스가 현장에서도 그런 희망과 밝은 분위기를 잘 만들어냈다고 생각한다. 지금 우리가 거리에서 볼 수 있는 다양한 사람들의 모습을 자연스럽게 담아냈다. 나는 사실 그런 모습이 부자연스럽다고 느낀 적이 없다. 아마 내가 호주에서 태어나 자라고 미국에서 시간을 보내며 다양한 인종과 어울려 살아온 경험이 있기 때문에 더 자연스럽게 느껴졌을 수도 있다. 그런 반응을 들을 때 나 역시 기쁘고, 그런 모습이 우리가 바라는 행복하고 자연스러운 사회의 모습이라고 생각한다. ‘브리저튼’이라는 작품의 코어는 결국 우리가 서로 사랑해야 한다는 것, 그리고 그 사랑을 가로막을 어떤 이유도 있어서는 안 된다는 메시지라고 생각한다.”
-시즌4는 ‘신데렐라 이야기’와 비교되기도 한다. 배우는 이 서사를 어떻게 해석하고 접근했나.
“신데렐라 이야기라고 하지만 실제로는 1회를 제외하면 다른 이야기라고 생각한다. 많은 사람들이 신데렐라와 어떻게 비교했는지 묻지만 나는 전혀 다르게 접근했다. 오히려 소피가 어린 시절부터 가지고 온 트라우마나 감정적인 부분에 더 신경을 많이 썼다. 영국 발음이나 무용, 역사적인 배경도 많이 조사했지만 결국 인물과 나 사이의 공통점을 찾으려고 했다. 소피의 성격적인 부분이나 여러 비슷한 지점을 발견하면서 감정적인 부분을 더 구체적으로 고민했다.
흥미롭게 느낀 지점은 신데렐라 이야기에서는 금지된 사랑임에도 왕자가 손을 내밀었을 때 주저 없이 그 손을 잡는다는 점이다. 하지만 ‘브리저튼’의 소피는 자신이 메이드로 일하는 상황에서 구원의 손이 내밀어졌음에도 바로 잡지 않는다. 거기에 차이가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 이야기는 상대가 진짜 어떤 사람인지 알아가는 이야기라고 생각한다. 계층이나 외모, 사회적 지위 같은 것을 모두 벗어나 있는 그대로의 상대를 바라보는 이야기라고 느꼈다. 그리고 그 사랑을 쟁취하려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누군가를 진정으로 원한다면 사회가 그것을 반대하거나 가로막는 것이 있더라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사랑을 얻기 위해 싸울 수 있는지에 대한 이야기라고 생각한다.”
-소피와 어떤 공통점을 찾았나.
“나에 대해 많은 것을 밝히게 되는 것 같아 조금 주저하게 된다.(웃음) 소피처럼 나 역시 재치 있는 편이라고 생각한다. 또 그녀처럼 내면의 도덕적 기준이 높은 편이라고 느낀다. 한편으로는 나 역시 자신감이 조금 부족한 면이 있다. 오늘날 사회의 기준 속에서 내가 누군가에게 충분히 매력적인 존재인지 고민해 본 적도 있다. 누구나 어린 시절 겪은 일이나 트라우마, 아픔이 성인이 된 이후까지 영향을 미치기도 하지 않나. 나 역시 그런 개인적인 경험과 감정들이 있었기 때문에 그런 지점에서 소피와의 공통점을 찾았던 것 같다.”
-수위 높은 노출 장면에 대한 부담감은 없었나.
“부담과 고민이 엄청 많았다. 할리우드나 산업의 문제이기도 하지만 사회적으로도 미디어 속 여성의 몸에 대한 차별이 많다고 느낀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화면에 비치는, 특히 여성의 몸에 대해 마음대로 비난하고 판단하고 비판해도 된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그런 점 때문에 두려움도 있었고 부담도 있었다. 특히 한국은 서구권에 비해 미의 기준이 더 엄격한 측면이 있다고 생각한다. 나 역시 한국에서 자라면서 나의 몸을 바라보는 시선이 어느 한 방향으로 굳어져 있었던 것 같다. 다행히 촬영 과정에서 ‘인티머시 코디네이터’(Intimacy Coordinator, 노출 장면이나 성적 접촉 장면을 안전하게 연출하도록 조율하는 전문 스태프)와 함께 작업할 수 있었다. 업계에서 정말 필수적인 역할이라고 생각한다. 배우가 수위가 있는 장면을 촬영할 때 반드시 필요한 존재다. 그분이 훌륭하게 역할을 해줬고 수위가 있는 장면을 하나의 안무처럼 세밀하게 설계해 줬다. 배우뿐 아니라 현장에 있는 모든 스태프들도 최선을 다해줬다. 이런 지점들이 그런 장면을 촬영할 때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현장에 있는 모든 사람이 안전한 공간이라고 느낄 때 배우도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상의 퍼포먼스를 낼 수 있다고 생각한다.”
-소피가 산책을 하며 일명 ‘약수터 박수’를 치는 장면이 한국 시청자 사이에서 화제가 됐다. 특별한 의도가 있었나.
“의도적으로 그렇게 표현하려고 한 것은 아니었다. 소피가 아무래도 휴식을 잘 즐기지 못하는 인물이기 때문에 그 어색함을 어떻게 표현할까 고민했는데 박수가 자연스럽게 나오게 된 것 같다. 아무래도 내가 그런 한국적인 정서를 보고 신기하게 느꼈던 경험이 있어서 자연스럽게 나온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원작 소피 베켓에서 한국식 성 소피 ‘백(Baek)’으로 바꾸게 된 과정이 있었다고 들었다. 어떻게 결정됐나.
“합격 통보를 받고 며칠 후에 줌 미팅을 했다. 그 자리에서 인물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려고 했던 미팅이었는데, 단순하게 ‘비읍으로 시작하는 성이 뭐가 있냐’는 이야기가 나왔다. 그런데 박을 영어로 하면 ‘P’로 시작하니까 비읍으로 시작하는 성을 생각하다 보니 ‘백’이 떠올랐다. 그렇게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졌다. 큰 대화가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속이 시원했다. 한국 배우이기도 하니까 내 정체성에 맞는 성으로 바꾸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했고, 그 점이 고마웠던 기억이 있다.”
-할리우드에서 활동하면서도 ‘하예린’이라는 한국 이름을 계속 사용하는 이유는.
“어렸을 때부터 영어 이름으로도 계속 ‘예린’을 사용해 왔다. 그래서 따로 다른 영어 이름이 없었고 항상 ‘예린 하’라는 이름을 써 왔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게 오히려 좋은 것 같다. 엄마가 다른 영어 이름을 만들어주지 않은 것에 감사하다. 한국인의 정체성을 자신감 있게 보여줄 수 있게 해주는 것 같아서 계속 예린 하라는 이름을 사용할 거다.”
-배우 손숙의 손녀로도 알려져 있다. 할머니의 반응이나 조언이 있었나.
“할머니는 특별한 조언을 하시지는 않았다. 대신 작품은 다 보셨다. 사진을 보내줬는데 후배들과 같이 보신 것 같더라. 할머니가 눈이 안 좋으셔서 TV를 가까이에서 보셨다. 문자를 보내주셨는데 ‘자랑스럽다, 사랑해’라고 하셔서 마음이 따뜻하면서도 짠했다. 노출 장면도 봤다고 하시면서 조금 민망하다고 하시더라. 그냥 넘기실 줄 알았는데 다 보셨다고 해서 조금 놀랐다.(웃음)”
-배우라는 꿈을 갖게 되는 과정에서 할머니의 영향도 컸다고.
“어렸을 때 한국에 1년에 한 번 정도 오려고 노력했는데 할머니가 항상 연극을 하고 계셨다. 그래서 연극하는 모습을 자주 봤다. 가장 인상 깊었던 기억은 1인극 공연이었다. 제목은 길지 않았지만 베개를 들고 아기처럼 안은 채 울던 장면이 있었는데 그 모습이 아직도 또렷하게 기억에 남는다. 그때 관객들도 함께 울고 있었다. 그 장면을 보면서 정말 예술의 힘이구나 느꼈다. 결국 우리는 다 비슷한 감정을 느끼는 사람이고, 연극을 통해 인간에게 위로와 공감을 줄 수 있다는 직업이 정말 멋지다고 생각했다. 그때부터 큰 영감을 받았다. 할머니가 직접 무대 위에 서는 모습을 보면서 이것이 실제로 이뤄질 수 있는 직업이라는 걸 느꼈고 항상 할머니에게서 많은 영감을 받아왔다. 곧 다시 떠나지만 할머니가 꼭 보러 오라고 하셔서 연극을 보러 갈 생각이다. 오늘 아침에도 다른 촬영장에서 할머니를 만났다. 예전에는 ‘손숙의 소녀 하예린이었는데 요즘에는 하예린의 할머니 손숙’이라고 말씀하시더라. 그 말을 들으니 짠하기도 하고 뿌듯하기도 했다. 할머니는 늘 이제 미련이 없다고, 내일 돌아가도 괜찮다고 농담처럼 말씀하신다.”
-동양계 배우로서 현장에서 어려움을 느낀 순간은 없었나.
“배우들은 정말 다 착하다. 시즌3까지 몇 년 동안 함께 해온 팀이기 때문에 내가 새로운 인물로 들어가면 호흡이 흐트러지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 있었다. 그런데 오히려 새로운 에너지를 원하더라. 그래서 나를 굉장히 반갑게 대해줬고 새롭게 합류한 인물들도 따뜻하게 맞아줬다. 이번 작품은 내가 7년 동안 배우 활동을 하면서 경험한 현장 가운데 가장 다양성을 존중하고 기리는 분위기였다. 정말 행복했다.”
-동양계 배우들에 대한 업계의 시선이 달라지고 있다고 느끼는 지점이 있나. 처음 시작했을 때와 지금을 비교하면 어떤 변화가 있나.
“분명히 변화가 있다고 느낀다. 특히 태도의 변화가 있는 것 같다. 유색인종 배우들에게 어떻게 대하고 어떤 방식으로 대화를 나누는지에서 이전과 다른 태도가 느껴진다. 예전보다 훨씬 더 공평하고 평등한 분위기가 생겼다고 생각한다. 변화가 조금씩 나타나고 있는 것 같다. 오디션 기회가 더 많아진 것도 그런 변화의 시작을 보여주는 지점이라고 생각한다. 주연이 아니더라도 조연 역할이라도 동양인 배우들에게 기회가 주어지고 있다는 것 자체에서 확실한 변화를 느낀다.”
-최근 프로모션 과정에서 인종차별 논란이 불거지기도 했다. 이에 대한 생각은.
“흥미로운 지점은 내가 그 현장에 있을 때 개인적으로 인종차별적이거나 나에게 차별적으로 느껴지는 경험은 전혀 없었다는 점이다. 다만 돌아보면 세부적인 디테일이 간과된 부분이 있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은 든다. 그렇다고 그것이 의도적이거나 악의적으로 이뤄졌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개인적으로 차별을 느낀 적은 없지만 사람들이 왜 그런 반응을 보였는지 이해되는 지점은 있다. 이런 순간들은 우리가 서로 간과된 디테일을 이해하고 관용을 보일 수 있는 기회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동시에 다양한 매체와 업계가 그런 디테일을 놓치지 않아야 한다는 점을 배우는 계기가 될 수도 있다고 본다. 나 역시 지금까지 일하면서 그런 부분에 대해 고민하게 된 순간들이 있었다. 이런 상황들을 통해 함께 배우고 나아가는 기회가 됐으면 좋겠다. 지나친 비난이나 혐오로 이어지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이다.”
-이번 시리즈를 통해 배우거나 얻은 점은 무엇이었나.
“리더십을 많이 배울 수 있었다. 현장에서 주변 사람들을 챙기고 주인공으로서 보여줘야 하는 리더십에 대해 배울 수 있었다. 내가 생각하기에 이 업계에서는 인간관계가 굉장히 중요하다. 좋은 환경을 만들어가는 것이 중요하고, 나 역시 그런 환경을 만들어가는 것을 좋아할 뿐 아니라 그렇게 해야 가장 좋은 성과를 낼 수 있다고 생각한다. 또 하나 배운 것이 있다면 불편함을 기꺼이 겪어내는 것이 어떤 의미를 갖는지였다. 수위가 높은 장면을 촬영해야 할 때도 두려움이 있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도전하고 해냈을 때 비로소 두려움을 넘어설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그런 경험을 통해 성장할 수 있었다.”
-과거 인터뷰에서 동양을 대표하는 글로벌 배우가 되고 싶다고 밝힌 바 있다. 현재 자신의 위치를 어떻게 체감하고 있나.
“아직 시작점에 있는 것 같다. 때로는 가면 증후군을 겪고 있는 것 같기도 하다. 내가 이 자리에 온 것이 순전히 운 때문이 아닐까 생각하기도 하고, 만약 운 때문이라면 그 운이 언제 다할지 두렵기도 하다. 하지만 이런 상황에 와 있고 이런 자리에 설 수 있었다는 사실만으로도 큰 책임감을 느낀다. 결코 가볍게 여기지 않는다. 오늘날 할리우드 업계에서 동양인, 동양을 대변하는 일은 아직 갈 길이 멀다고 생각한다. 그런 상황에서 변화가 필요한 곳에서 앞서 역할을 할 수 있다는 사실이 기쁘다. 나 이후에 업계에 들어올 많은 사람들을 위해 그런 변화를 만들어낼 수 있다면 기꺼이 감당할 수 있는 책임이라고 생각한다.”
-‘브리저튼’ 다음 시즌에도 출연하게 되나. 앞으로 계획과 한국 활동 계획도 궁금하다.
“브리저튼 가족에 속했으니 다음 시즌에도 볼 수 있을 것 같다. 다음에 어떤 인물을 선택할지, 나에게 호기심을 주는 인물인지, 배우로서 나를 더 성장하게 만들 수 있는지에 더 집중하는 것 같다. 그런 점이 부담보다 더 중요하다. 누군가에게 만족을 주거나 추가로 무언가를 증명해야 한다는 부담보다는 나 스스로에게 증명해야겠다는 마음이 더 크다. 한국 활동도 기회가 있다면 나로서는 감사한 일이다. 다만 호주에서 자란 영향 때문에 한국어를 말할 때 약간 발음이 섞여 있어서 어색하게 들릴 수도 있을 것 같다. 그래도 기회가 있다면 한국에서도 활동해 보고 싶다. 특히 한국 영화가 국제 영화제에 가는 경우라면 더 관심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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