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위크=이영실 기자 가짜일지라도 명품이 되고 싶었던 여자. ‘레이디 두아’는 욕망을 향해 질주하는 한 인물을 통해 진짜와 가짜의 경계를 뒤흔든다. 이름을 바꾸고, 과거를 지우고, 새로운 삶을 설계하는 여자 사라킴. 배우 신혜선은 무엇이 진짜인지, 응원해야 할지 비난해야 할지 쉽게 단정할 수 없는 그 인물에 생명력을 불어넣었다.
‘레이디 두아’는 가짜일지라도 명품이 되고 싶었던 여자 사라킴(신혜선 분)과 그녀의 욕망을 추적하는 남자 무경(이준혁 분)의 이야기를 그린 넷플릭스 시리즈다. 넷플릭스 시리즈 ‘인간수업’ ‘마이네임’ 등 김진민 감독과 신예 추송연 작가가 의기투합한 작품으로, 지난 13일 공개 후 호평 속에 순항을 이어가고 있다.
‘레이디 두아’는 상위 0.1%만을 겨냥한 브랜드 ‘부두아’를 둘러싼 미스터리를 축으로, 여러 신분과 이름을 오가는 한 여자의 서사를 따라간다. 사건의 퍼즐이 맞춰질수록 한 인물의 정체는 더욱 모호해지고, 시청자는 무엇이 진짜인지 끝내 단정하지 못한 채 그 끝을 마주하게 된다.
신혜선은 그 중심에 선 사라킴을 연기했다. 하나의 이름 아래 겹겹이 쌓인 삶과 얼굴을 오가며 모순과 공허, 욕망이 뒤섞인 인물을 그려냈고, 그 모순마저 캐릭터의 동력으로 전환했다. 최근 신혜선을 만나 사라킴을 완성하기까지의 과정을 들어봤다. (*해당 기사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돼 있습니다.)
-공개 후 반응이 좋다. 결과물은 어떻게 봤나.
“나도 꽤 재미있게 봤다. 내가 찍지 않았던 부분들도 있었고, 음악이나 화면 전환 같은 부분은 촬영하면서는 알 수 없는 요소들이라 처음 봤을 때는 긴장하면서 봤는데 너무 재미있더라. 후반 작업팀이 정말 고생을 많이 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너무 감사했다. 다들 자기 분야에서 열심히 해줬다.”
-작품을 선택하게 된 계기는 무엇이었나.
“대본을 4부까지 보고 들어갔다. 끝까지는 알지 못했다. 4부까지만 보고 느낀 것은 다양한 신분을 가진 인물들이 등장하고, 그것이 또 한 사람으로 모여지는 설정이 흥미롭다는 점이었다. 그래서 그 이후에 진짜 사라킴이 누구인지, 결말이 어떻게 되는지 궁금해서 선택했다. ‘부두아’에 투영된 의미라든지 그런 부분까지 분석하는 단계는 아니었다. 사건들이 어떻게 얽혀 있는지, 진짜 죽은 사람은 누구인지 그 정도의 궁금증이었다.”
-그토록 궁금했던 결말을 마주했을 때는 어땠나.
“썩 마음에 들었다. 많은 분들이 진짜 이름이 무엇이냐고 질문했지만, 계속 보다 보니 진짜 이름이 중요한 건 아니라는 생각에 이르렀다. 배우로서 이 역할을 연기한 입장에서 특히 마음에 남은 대사가 있다. 부두아는 잘 돌아가고 있다고 했을 때, ‘제가 없어도요?’라는 대사다. 내가 연기한 인물이라 애정이 있어서인지 그 대사가 조금 씁쓸하게 다가왔고 마음을 치는 순간이었다.”
-진짜 이름에 대한 여러 해석이 있더라. 답을 갖고 촬영했나.
“이 안에는 없다. 이 대본 안에는 없다. 사실 촬영하면서 진짜 이름이 무엇일까 고민을 제작진은 많이 했겠지만, 나는 그게 중요한 지점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크게 생각하지 않았다.”
-굉장히 다양한 면을 보여줘야 하는 인물이었다. 캐릭터 설계는 어떻게 했나.
“의도한 것이 조금은 녹아 나왔다고 생각해서 만족스럽다. 사라킴이라는 인물이 되기까지의 일련의 과정을 지켜보면서 느낀 점은 이 인물이 어쨌든 위조된 가짜 신분으로 살아가는 친구인데 궁극적으로 하고 싶었던 것은 자기를 만들고 싶었던 것 같았다. 고품격의 자기를 만들고 싶은데 그 과정을 거치면서 거짓이 따르게 된다. 자기 열망을 좇아가는 과정에서 허함이 느껴졌다. 꿈에 가까워지면 가까워질수록 점점 진짜가 텅 비어 있는 느낌이 들었다. 그래서 겉으로 보기에 열정적이고 에너지가 넘치는 느낌이라기보다는, 오히려 텅 비어 있는 느낌을 내고 싶었다. 그런 부분을 위주로 생각했다. 인물이 하는 행동이나 사건들, 지나온 궤적은 열정적이고 부지런하지만 그럼에도 어딘가 허하고 텅 비어 있는 느낌을 주고 싶었다.”
-그에게 ‘부두아’는 대체 어떤 존재였을까.
“자신을 투영한 게 아닌가 싶다. 극 중에 그런 대사가 나온다. 강지훤(김지원 분)과 술집에서 만났을 때 ‘여기서 일하는 사람들은 자기가 싫어하는 사람 이름을 쓴다던데 그 사람은 불쌍하다’는 말이다. 사라킴은 술집에서 일할 때 ‘두아’라는 이름을 썼다. 자기가 싫어하는 이름을 쓴다는 설정이지 않나. 두아는 명품 브랜드의 이름을 뒤바꾼 것인데, 거기에서 자기 혐오와 피해의식 같은 감정이 녹아 있다고 느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을 너무 사랑해서 성공시키고 싶어 하는 복합적인 감정이 들어가 있는 것 같았다. ‘부두아’도 그런 의미였던 것 같다. 자신의 정체성을 ‘부두아’라는 브랜드로 확립시키고 싶었던 거다. 하지만 정작 자기 자신은 속이 텅 비어 있으니까, 겉을 화려하게 만들고 싶었던 거다. 그런 부분이 녹아 있다 보니, 시청자들도 사라킴을 보면서 왠지 모르게 짠함을 느끼는 게 아닐까 싶다. 명품이라는 외형을 떠나, 자기 자신을 위해 발버둥 치며 정체성을 찾고 싶어 하는 모습에서 연민에 가까운 감정을 느끼는 게 아닐까 생각했다.”
-이전의 삶도 궁금하다는 반응이 많다.
“작가님이 하고 싶은 이야기가 분명히 있었고, 그에 필요한 부분만 쓴 것 같다고 느꼈다. 사라킴이라는 인물의 일대기를 모두 담은 서사극은 아니기 때문에, 가짜와 진짜라는 주제를 이야기하는 데 있어 중간 지점에서 시작하는 게 맞지 않았나 생각했다. 또 사라킴이 누구인지 모르는 상태에서 이 인물에게 동정이나 연민을 느끼게 하지 않으려는 목적도 있었던 것 같다. 물론 어쩔 수 없이 이 인물에 동화되거나 감화되고, 불쌍하다고 느끼는 사람도 분명히 있겠지만, 그것을 의도적으로 끌어내려 하지는 말자는 방향이었던 것 같다. 사라킴의 전사, 그러니까 목가희 이전의 이야기들은 상상할 수 있는 여백으로 남겨두는 것도 하나의 재미가 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이 인물에 대한 개인적인 해석, 감상도 궁금하다.
“행동을 정당화할 수는 없다고 생각했다. 어쨌든 사기는 사기이고 불법을 저지른 것이니까 정당화될 수는 없다. 이 인물에 깊이 공감한다고 보기도 어렵다. 다만 나 역시 유년기와 학창 시절, 사춘기를 지나오면서 다양한 감정을 느끼며 살아왔다. 나 역시 모순덩어리처럼 살아왔다. 좋으면서 싫은 감정, 싫으면서도 좋은 감정을 많이 느끼며 살아왔다. 사라킴은 그런 감정들을 극단적으로 과장해 보여주는 캐릭터라고 느꼈다. 감정이 확장되고 극단적으로 뒤틀리면 그렇게 될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이 정도로 확장된 감정은 아니더라도, 비슷한 결의 감정을 한 번쯤은 느끼며 살아왔기 때문에 응원까지는 아니더라도 왜 그런 생각을 하는지는 알겠다는 정도의 이해는 있었다. 어느 정도는 알 것 같았다.”
-다양한 얼굴을 가진 캐릭터를 표현하면서 연기하는 재미도 있었을 것 같다. 어땠나.
“그런 캐릭터를 연기하는 걸 재미있어하는 편이긴 하다. 그런데 이번 인물은 재미있기보다는 힘든 감정이 더 컸다. 겉으로 보기에는 감정의 진폭이 크고, 확확 달라지는 다른 사람처럼 보일 수 있겠지만 나는 촬영하면서 그런 느낌을 받지는 못했다. 오히려 계속 텅 비어 있는 느낌이 있었다. 감정 기복이 크다는 인상을 개인적으로는 받지 못했다. 이전에 연기했던 인물들에 비해서도 감정의 소용돌이를 크게 느끼지는 못했다. 다른 사람들은 여러 인물처럼 봐주지만, 나는 하나의 연장선에 있는 한 인물이라고 생각하고 연기했다. 실제로도 한 인물이기도 하고. 각 페르소나가 상황과 주변 인물에 따라 달라 보일 수는 있어도 기본적인 결은 계속 비슷하다고 느꼈다.”
-가장 어려웠던 지점은 무엇이었나.
“모순된 인물이라는 점이 가장 힘들고 어려웠다. 어떤 사람에게는 진심처럼 보여야 하고, 또 어떤 사람에게는 거짓처럼 보여야 하는 지점이 이 캐릭터의 매력이라고 생각하면서도 그 부분을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고민이 컸다. 지금까지는 내가 맡은 역할의 감정선이 비교적 명확하게 읽혔다. 연기를 하기 전에 어떻게 할지, 어떤 감정일지 정확하게 계획이 돼 있었고, 명확하지 않으면 카메라 앞에서 움직이기 어려웠다. 그런데 이번 작품에서는 감정을 완벽하게 정해놓고 가지 않았다. 물론 내 안에서의 계획은 세워뒀지만, 이전 경험과 비교했을 때 감정을 딱 규정해 놓고 연기하지는 않았다. 대본을 보면서도 이 인물이 모호하고 이중적이라는 점은 알겠지만, 그것을 연기적으로 어떻게 표현할지는 또 다른 문제였다. 굉장히 어려운 지점이었고, 실제로도 어려웠다. 여러 도움을 받아 가며 해결해 보려 했다.”
-‘비밀의 숲’ 이후 재회한 이준혁과의 호흡은 어땠나.
“상대 역할에게 이렇게 많이 의지했던 적은 처음이었다. 이전에는 내 것을 잘 해결하자는 마음이 컸다. 그런데 이번에는 혼자 계획할 수 없는 신들이 많아서 대사를 주고받는 과정이 너무 중요했다. 혼자서는 연습도 해보지 않았다. 효율적이지 않다고 느꼈다. 선배와 함께했기 때문에 이 신들을 찍을 수 있었다. 그 정도로 의지가 많이 됐다. 결과물을 보면서도 선배가 무경 역할을 맡지 않았다면 성립될 수 없었겠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 대본을 보면 분위기나 흐름이 어느 정도 그려지는데 취조실 신은 그려지지 않았다. 우리의 에너지가 어떻게 흘러갈지 전혀 보이지 않았는데, 함께 맞춰가면서 맞아갔다.
정말 고마웠다. ‘비밀의 숲’에서는 준혁 선배와 이렇게 대사를 많이 주고받은 적이 없었다. 그래서 연기 호흡을 많이 나눠봤다고 말하기 어려웠다. 그런데 이번에는 함께 만들어가는 신이었기 때문에 도움을 많이 받았다. ‘비밀의 숲’ 때도 고민 상담을 하러 무작정 찾아가면 선배가 부담스러워하지 않고 재미있게 받아줬다. 친한 오빠와 대화하듯 자연스럽게 이야기를 나눴다. 그때도 선배 같은 느낌이었는데, 지금 보니 정말 잘 지내왔고 잘 걸어온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 작품이 배우에게 준 변화나 영향이 있나.
“찍을 때 감정 상태나 연기적으로 풀어가는 과정이 이전 작품들과는 조금 달랐다. 나름의 도전이었고 기존의 루틴을 깨는 작업이었다. 보통 연기할 때 카메라 앞에서 어떤 표정을 지을지, 언제 움직일지, 소리를 지를지 등을 비교적 구체적으로 계획해 놓고 가는 편이다. 잠을 못 자더라도 완벽하게 연습해 가는 스타일이었다. 그런데 ‘레이디 두아’는 그렇지 않았다. 오히려 그렇게 정제해버리면 안 되겠다고 생각했다. 사라킴은 정제된 말투를 쓰는 인물이지만, 그 자체를 내가 정제해버리면 맞지 않겠다고 느꼈다. 그래서 이번에는 이전과 다른 방식으로 접근했다. 나 역시 어떻게 흘러갈지 모르는 상태로 현장에 갔다. 그래서 큰 경험으로 남았다. 새로운 경험을 하게 해준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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