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위크=김두완 기자 한미 상호관세가 불확실성의 한복판에 섰다. 지난 20일(현지시간) 미 연방대법원이 트럼프 행정부의 상호관세를 위법이라고 판단하면서 15% 관세의 법적 전제가 무너졌다. 그러나 트럼프 대통령은 같은 날 10% 글로벌 관세를 발표했고, 다음 날에는 이를 15%로 올리겠다고 선언했다. 미 연방대법원의 판결과 행정부의 대응이 맞물리며 통상 환경은 다시 불확실성 국면으로 들어섰다.
◇ 미국 무역법 제122조… 150일 한시 관세의 시험대
지난 20일(현지시간) 미 연방대법원은 국제비상경제권한법(IEEPA)을 근거로 부과된 상호관세가 법률이 위임한 권한 범위를 벗어났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IEEPA 조항 어디에도 관세 부과 권한이 명시돼 있지 않다는 점을 지적했다. 비상 상황에서 경제 거래를 제한할 수 있는 권한은 인정되지만, 수입품에 새로운 관세를 부과하는 것은 별개의 문제라는 취지다.
판결의 핵심은 관세율이 아니라 ‘권한’이다. 관세는 조세적 성격을 갖는 수단이고, 헌법 체계상 과세 권한은 의회에 속한다. 대통령이 비상권한을 근거로 관세를 설계하려면 명확한 법적 위임이 필요하다는 것이 미 연방대법원의 판단이다. IEEPA를 그렇게 확장 해석할 경우 행정부가 관세의 범위와 기간을 사실상 재량으로 정할 수 있게 되고 이는 의회의 권한을 잠식할 수 있다는 우려도 깔려 있다.
다만 이번 판결은 관세정책 자체를 봉쇄한 것은 아니다. IEEPA라는 특정 법적 통로를 차단했을 뿐 의회가 다른 법률에서 명시적으로 관세 권한을 위임한 경우까지 부정하지는 않았다. 이 지점에서 트럼프 행정부의 대응이 이어졌다. 트럼프 대통령은 판결 직후 무역법 제122조를 근거로 전 세계 수입품에 대해 10%의 한시적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발표하고, 공식 문서로 공표했다.
미국의 무역법 제122조는 나라의 ‘국제수지’(수출입과 해외 자금 흐름의 균형)에 큰 문제가 생겼다고 대통령이 판단할 경우, 일정 기간 수입품에 추가 관세를 매길 수 있도록 한 조항이다. 이때 관세는 최대 15%까지 올릴 수 있고, 적용 기간은 150일(약 5개월) 이내로 제한된다.
이어 21일(현지시간) 트럼프 대통령은 자신의 소셜미디어를 통해 10% 글로벌 관세를 법이 허용하는 최대치인 15%로 즉시 인상하겠다고 밝혔다. 이는 제122조 상한선까지 끌어올리겠다는 선언이다. 다만 현재 공식 문서로 확인되는 조치는 10%이며, 15% 적용을 위한 별도의 행정 문서 공표 여부는 추가 확인이 필요한 상태다.
상호관세는 위법 판결로 효력을 잃었지만 무역법 제122조 관세는 유지되고 있다. 법적 근거는 이동했으나 관세 기조는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문제는 제122조 조치가 150일 한시라는 점이다. 이후 연장 여부는 의회와의 협의, 추가 입법, 또는 다른 통상법 조항 적용 여부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이번 판결은 또 다른 질문을 남겼다. 이미 납부된 상호관세의 환급 여부다. 판결문은 환급 절차와 범위를 구체적으로 명시하지 않았다. 자동 환급으로 이어질지, 개별 소송과 청구 절차를 거쳐야 할지에 따라 기업 부담과 행정 혼선은 달라질 수 있다. 이에 한국 정부는 21일(현지시간) 관계부처 회의를 열고 판결과 후속 조치를 점검했다. IEEPA를 근거로 한 상호관세는 무효가 됐지만, 미국 무역법 제122조 관세가 새로운 변수로 등장한 만큼 상황을 면밀히 분석하겠다는 입장이다.
정치권에서도 대응 필요성이 제기됐다. 더불어민주당 한정애 정책위의장은 상호관세의 법적 근거 상실을 지적하며 협상 구조를 재점검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언주 의원은 "환급소송 여부와 재협상 가능성을 검토해야 한다"면서 "트럼프 정부가 품목관세 등 다른 수단을 모색할 경우 경제 불확실성이 확대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한편 국민의힘은 정부 대응의 적절성을 문제 삼았다. 최보윤 수석대변인은 22일 논평을 통해 “미 대법원 판결로 관세의 법적 기반이 흔들렸는데도 정부가 대규모 대미 투자를 서둘렀다”며 “통상 위기에 대비한 컨틴전시 플랜이 보이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이어 “야당과의 협의를 통해 실질적인 플랜 B를 마련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이번 사안의 본질은 관세의 존폐가 아니다. 관세를 가능하게 하는 법적 근거의 이동이다. IEEPA라는 비상권한 근거는 막혔지만, 무역법 제122조라는 또 다른 근거가 등장했다. 법적 기반은 변경됐지만 관세 기조는 유지되고 있다. 다만 제122조 조치는 150일 한시라는 점에서 장기 구조로 고착될지, 추가 입법이나 다른 통상법 조항으로 전환될지는 미지수다. 향후 150일은 단순한 유예기간이 아니라, 한미 통상 질서의 방향을 가늠할 시험대가 될 가능성이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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