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준규의 ESG 모델링 24] 데이터 가시성과 신뢰의 경제학下 토니스 초콜론리가 공급망 데이터를 ‘플랫폼’으로 파는 이유

마이데일리

[ESG 경영컨설턴트 심준규] ESG(환경·사회·지배구조) 경영에서 가장 어려운 영역은 우리 눈에 보이지 않는 공급망 하단의 리스크 관리다.

2차, 3차 협력사에서 일어나는 아동 노동이나 환경 파괴는 본사의 통제 범위를 벗어나기 일쑤다. 그런데 문제가 터지면 브랜드 전체가 치명적인 평판 리스크에 노출된다.

다수 기업은 위기 관리를 위해 협력사에 체크리스트를 보내 정기 감사를 실시하는 방식으로 대응한다. 서류상으로는 문제가 없어 보이지만, 실제 현장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알 수 없다.

네덜란드 초콜릿 기업 토니스 초콜론리(Tony's Chocolonely)는 완전히 다른 길을 선택했다.공급망 데이터를 투명하게 만드는 것을 넘어, 그 데이터 시스템 자체를 경쟁사에게 판매하는 플랫폼 비즈니스 모델을 설계했다.

이렇게 탄생한 토니스 오픈 체인(Tony's Open Chain) 서비스는 윤리적 가치를 추구하면서도 수익을 창출하는 구조를 만든 사례로 주목받고 있다.

토니스 초콜론리는 2005년 서아프리카 카카오 농장의 아동 노동과 노예 노동 실태를 고발하기 위해 설립된 기업이다. 100% 노예 노동 없는 초콜릿을 만들겠다는 목표로 출발했다. 처음부터 사회적 미션을 비즈니스 모델의 핵심에 둔 기업이다.

카카오 산업 문제는 복잡하다. 서아프리카 코트디부아르와 가나에서 전 세계 카카오의 60% 이상이 생산된다. 영세 농가는 생계를 유지하기 어려운 낮은 대가를 받고 있다. 동시에 생산량을 늘리기 위해 아동을 노동에 투입한다.

대형 초콜릿 기업은 카카오를 중간 유통업체를 통해 구매하기 때문에 실제 생산 농가의 상황을 파악하지 못한다. 설령 알더라도 수만 개 농가를 일일이 관리하기란 불가능에 가깝다.

토니스 초콜론리는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기 위해 공급망 추적 시스템을 구축했다. 가나와 코트디부아르의 카카오 농가와 직접 장기 계약을 맺고, 시장 가격보다 높은 프리미엄을 지불한다. 농가의 생산량, 소득 수준, 노동 환경을 실시간으로 추적한다. 아동이 학교에 다니는지, 성인 노동자가 적정 임금을 받는지, 농약 사용은 안전 기준을 지키는지 모니터링한다.

여기까지는 일반적인 사회적 기업의 모습이다. 토니스 초콜론리가 특별한 지점은 고도화된 추적 시스템을 자사만의 자산으로 삼지 않았다는 데 있다. 경쟁사가 이용료를 내고 사용할 수 있도록 개방했다.

미국 프리미엄 아이스크림 브랜드 벤앤제리스(Ben & Jerry's), 독일 유통 대기업 알디(Aldi) 등이 토니스 오픈 체인에 참여했다. 참여 기업은 토니스가 구축한 농가 네트워크에서 카카오를 공급받고, 모니터링 시스템을 활용해 노예 노동 없는 초콜릿을 생산한다. 플랫폼 이용료를 지불하는 구조다.

경영학적 관점에서 보면 이 모델은 두 가지 측면에서 흥미롭다.

첫째 인센티브 정렬(Incentive Alignment)이다. 개별 중소기업이 서아프리카 카카오 공급망을 일일이 추적하기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토니스 초콜론리는 신뢰할 수 있는 데이터를 플랫폼 형태로 제공해 경쟁사의 추적 비용을 획기적으로 낮춰준다. 경쟁사 입장에서는 막대한 투자 없이 윤리적 공급망을 확보할 수 있다.

플랫폼 이용료는 새로운 수익원이 된다. 초콜릿 제조 사업만으로는 규모 확장에 한계가 있지만, 플랫폼 사업은 참여 기업이 늘어날수록 수익이 증가한다.

둘째는 네트워크 효과와 표준 장악이다. 더 많은 브랜드가 시스템을 사용할수록, 공급망 데이터의 신뢰도는 높아진다.

참여 기업이 많아지면 카카오 농가 입장에서도 토니스 네트워크에 참여할 인센티브가 커진다. 안정적인 판로가 보장되고 프리미엄 가격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선순환 구조가 작동하면서 토니스의 윤리적 기준이 카카오 산업 전체의 표준으로 자리 잡게 된다.

경쟁사를 적이 아닌 플랫폼 고객으로 포섭해 자신이 만든 규칙이 곧 시장 규칙이 되도록 설계한 셈이다.

이렇게 토니스 초콜론리는 네덜란드 초콜릿 시장 점유율 1위를 차지했고, 유럽 전역으로 사업을 확장하면서 계약 농가의 평균 소득은 비계약 농가보다 30% 이상 높아졌다. 아동 노동 비율도 현저히 낮아지면서, 윤리적 목표와 사업 성장이 동시에 달성되는 모델을 입증했다.

볼보와 토니스 초콜론리의 사례는 데이터 가시성이라는 동일한 주제를 다른 방식으로 풀어낸다. 두 기업 모두 데이터 투명성을 전략적 자산으로 활용했지만, 볼보는 제품 중심의 폐쇄형 모델을, 토니스는 산업 중심의 개방형 모델을 구축했다.

볼보는 자사 제품의 데이터를 폐쇄적으로 관리하며 제품 신뢰도와 잔존 가치를 높이는 전략을 택했다. 배터리 여권은 볼보 차량의 경쟁력을 강화하는 독점적 자산이다.

토니스는 공급망 데이터를 개방하고 경쟁사와 공유하는 플랫폼 전략을 선택했다. 데이터를 독점하지 않고 산업 표준으로 만들어 더 큰 시장 영향력을 확보했다.

국내 기업이 취해야 할 방향도 이 대비를 통해 구체적으로 드러난다. 공급망 투명성 확보가 필요한 산업이라면 토니스처럼 추적 시스템을 플랫폼화하는 전략을 검토해야 한다. 특히 섬유, 전자제품, 식품 산업은 공급망 리스크가 크고 중소기업들이 개별적으로 관리하기 어렵다.

데이터 투명성을 경쟁 우위가 아닌 협력 기반으로 전환하면 네트워크 효과로 표준을 장악할 수 있다. 혼자 독점하려 하면 규모 확장에 한계가 있지만, 개방하면 참여자가 늘면서 시장 전체를 움직이는 힘이 생긴다. 제품 차별화가 핵심인 산업이라면 볼보처럼 데이터를 제품 신뢰도 강화에 활용하고, 공급망 리스크가 큰 산업이라면 토니스처럼 플랫폼화를 고려해야 한다.

사회적 가치와 경제적 가치를 동시에 추구하는 비즈니스 모델을 설계하면 규제 대응을 넘어 새로운 시장을 창출하는 전략적 도구가 된다. 데이터 가시성은 더 이상 비용이 아니라, 산업 표준을 선점하는 경쟁력의 원천이겠다.

|심준규. 인하대학교 경영학과 겸임교수. 더솔루션컴퍼니비 대표. <녹색금융으로 읽는 ESG 이야기>, <그린북>, <실천으로 완성하는 ESG 전략> 저자. 기업의 ESG 역량 강화 프로그램 개발과 ESG경영컨설팅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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