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위크=박설민 기자 국내 연구진이 화학물질의 반응 원리를 이해할 수 있는 인공지능(AI) 개발에 성공했다. 스마트폰 배터리 수명 향상 등 산업계부터 난치병 치료제, 신소재 개발 등 다양한 분야에서 사용 가능할 것으로 기대된다.
한국과학기술원(KAIST)은 김우연 화학과 교수 연구팀이 분자의 안정성을 좌우하는 물리 법칙을 스스로 이해해 구조를 예측하는 AI모델 ‘리만 확산 모델(R-DM)’을 개발했다고 10일 밝혔다. 이번 연구는 KISTI 슈퍼컴퓨팅센터 우제헌 박사와 KAIST 혁신신약연구단 김성환 박사와 공동 진행했다.
신물질 개발은 물질을 구성하는 원자들이 얼마나 안정적으로 결합하느냐가 중요하다. 이 과정은 ‘분자 설계’에 달려 있다. 핵심은 가장 어떻게 원자를 배치해야 가장 안정적 분자가 되는지 찾는 과정이다. 그러나 이는 거대한 산에서 가장 낮은 골짜기를 찾는 것과 같다. 매우 오랜 시간이 걸리고 어려운 작업이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KAIST 연구진은 R-DM을 새롭게 고안했다. 이 AI모델의 핵심은 분자의 ‘에너지’를 직접 고려한다는 점이다. 기존 AI가 분자의 모양을 단순히 흉내 낸 것이라면 R-DM은 분자 내부에서 어떤 힘이 작용하는지를 고려하여 구조를 스스로 다듬는다.
연구팀은 분자 구조를 에너지가 높을수록 언덕, 낮을수록 골짜기로 표현한 지도로 나타냈다. 그 다음, AI가 가장 에너지가 낮은 골짜기를 찾아 이동하도록 설계했다.
R-DM은 이러한 에너지 지형 위에서 불안정한 구조를 피해 가장 안정적인 상태를 찾아가며 분자를 완성한다. 이는 수학 이론인 ‘리만 기하학’을 적용한 것이다. 화학의 기본 원리인 ‘물질은 에너지가 가장 낮은 상태를 선호한다’는 법칙을 AI가 스스로 학습한 결과다.
실험 결과, R-DM은 기존 인공지능보다 최대 20배 이상 높은 정확도를 보였다. 예측 오차는 정밀 양자역학 계산과 거의 차이가 없는 수준까지 줄어들었다. 이는 AI 기반 분자 구조 예측 기술 중 세계 최고 수준의 성능이다.
이 기술은 신약 개발은 물론 차세대 배터리 소재, 고성능 촉매 설계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용될 수 있다. 많은 시간이 걸리던 분자 설계 과정을 크게 단축해 연구개발 속도를 획기적으로 높여줄 ‘AI 시뮬레이터’로 기대된다. 또한 화학 사고나 유해 물질 확산처럼 실험이 어려운 상황에서도 화학 반응 경로를 빠르게 예측할 수 있어, 환경·안전 분야에서도 활용 가능성이 크다.
김우연 교수는 “인공지능이 화학의 기본 원리를 이해하고 분자의 안정성을 스스로 판단한 첫 사례”라며 “신소재 개발 방식을 근본적으로 바꿀 수 있는 기술”이라고 말했다.
이번 연구 성과는 국제학술지 ‘네이처 컴퓨테이셔널 사이언스(Nature Computational Science)’에 지난달 2일자로 게재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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