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세계 최초' 그늘에 가려진 'AI 기본법'

프라임경제
[프라임경제] 인공지능(AI) 기본법이 지난 1월22일 전면 시행됐다. 시행 후 딱 13일. 정부가 마련한 지원 데스크에는 172건의 문의가 쏟아졌다. 하루 평균 13건이 넘는 이 질문들의 핵심은 하나다. "우리가 만드는 이 기술, 법 어기는 건가요?"

대응 체계를 갖춘 기업이 2%에 불과한 상황에서 법은 가이드라인이 아닌 족쇄가 되어 K-AI의 숨통을 조이고 있다. 혁신의 신호탄이어야 할 법 시행이 현장에서는 범죄자가 되지 않기 위한 '생존 문답'으로 변질됐다.

문의가 잇따르는 건 법이 명확한 가이드라인을 주지 못했다는 증거다. 사전 규제는 기준이 생명이다. 반면 지금의 AI 기본법은 '고영향 AI'라는 모호한 개념으로 기업들을 정부 상담소 앞에 줄 세우고 있다. 지난해 12월 스타트업얼라이언스가 국내 스타트업 101곳을 대상으로 진행한 조사 결과에 따르면 98% 기업이 AI 기본법 규제 대응 체계를 갖추지 못했다고 응답했다. 기업들은 혁신 대신 정부의 입만 바라보는 처지로 전락했다.

현장은 역차별의 늪에 빠졌다. 한국 기반 AI 저품질 콘텐츠(슬롭) 조회수가 세계 1위인 84억회를 기록할 때, 법의 칼날은 엉뚱하게도 기술 스타트업을 향한다. 국내 기업은 법을 지키려 워터마크를 찍고 행정 비용을 쓰지만, 해외 소형 앱들은 규제 밖에서 워터마크 없는 콘텐츠를 무차별적으로 배포한다. 172건의 문의가 쏟아지는 동안 정작 막아야 할 가짜 정보의 온상은 규제 그물 사이로 유유히 빠져나가는 셈이다.

물론 희망적인 움직임도 있다. 규제의 파고를 넘기 위해 AI 무단 학습을 원천 차단하는 기술적 방어책을 내놓는 보안 기업들이 등장하고 있다. 이들은 단순히 법을 지키는 수준을 넘어, 기술로 창작자의 데이터를 보호하고 진본성을 증명하는 '디지털 방패' 역할을 자처한다. 규제가 혁신의 족쇄가 될 때, 기술로 그 족쇄를 풀려는 기업들이 나타나는 것은 다행스러운 일이다.

정부는 172건의 질의를 '성공적 안착'으로 착각해서는 안 된다. 그것은 현장의 공포와 혼란이 담긴 비명이다. 법이 기업을 상담소에 가두는 족쇄가 아니라, 기술적 대안을 가진 기업들이 마음껏 뛸 수 있는 운동장이 돼야 한다. 구멍 난 방역망을 고치는 법은 규제의 문구를 늘리는 것이 아니라, 국내 기업이 해외 업체와 공정하게 경쟁할 수 있는 실질적인 인프라를 지원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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