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위크=박설민 기자 삼성전자는 지난 1월 31일 ‘삼성 컬러 이페이퍼’를 전 세계 순차 출시한다고 밝혔다. 이번 신제품은 늘 그렇듯 ‘삼성전자’다운 제품이었다. A4용지 크기로 얇고 가볍지만 고화질 초저전력 디스플레이를 적용, 고화질과 에너지절감 두 가지 기능을 동시에 잡았다. 이페이퍼는 기존 삼성전자 전자기기들과 큰 차별성은 없는 것처럼 보인다.
이때 주목할 것은 이번 사용된 신소재다. 삼성전자는 이페이퍼의 디스플레이 제작에 ‘플랑크톤’을 주재료로 사용했다. 디스플레이 제품에 식물성 플랑크톤을 사용한 것은 세계 최초다. 삼성전자뿐만이 아니다. 이제 해양플랑크톤은 신소재 산업의 새로운 블루오션으로 떠오르고 있다.
◇ 삼성전자의 디스플레이 신제품 뼈대가 된 ‘플랑크톤’
삼성 컬러 이페이퍼 신제품은 세계 최초로 식물성 플랑크톤 오일 기반 ‘바이오 레진(Bio-resin)’이 적용된 디스플레이다. 이 소재는 레진 생산 과정에서 이산화탄소를 직접 흡수하는 성질을 가진 식물성 플랑크톤을 원재료로 활용했다.
삼성전자 측에 따르면 삼성 컬러 이페이퍼는 글로벌 인증기관 ‘UL’로부터 제품 커버에 식물성 플랑크톤에서 유래한 바이오 레진과 재활용 플라스틱이 절반 이상 포함됐음을 검증받았다. 쉽게 말해 플랑크톤 기반 바이오 레진과 재활용 플라스틱을 섞어 제품 커버 제작에 사용했다는 뜻이다. 여기서 ‘바이오 레진’은 식물, 유기자원 등에서 추출해 만든 친환경 수지다.
그렇다면 삼성전자의 바이오 레진 소재가 된 플랑크톤은 무슨 종이었을까. 기자가 삼성전자 측에 문의한 결과, 정확한 답을 얻을 수는 없었다. 기업의 기술 부문의 경우 정확히 답변하기 어려울 수 있어서다. 삼성전자 관계자도 ‘시사위크’와의 통화에서 “일단 식물성 플랑크톤 오일 기반까지는 말씀드릴 수 있으나 구체적 종까지는 확인이 어렵다”고 답했다.
현재 글로벌 바이오 레진 기술 연구·개발 현황을 살펴보고 대략적으로 예측해 볼 수는 있다. 이에 따라 삼성전자가 바이오 레진 추출에 사용했을 것으로 예상되는 플랑크톤 종은 크게 △나노클로롭시스(Nannochloropsis) △클로렐라(Chlorella vulgaris) △규조류(Phaeodactylum tricornutum) △스피루리나(Spirulina) 정도다.
‘나노클로롭시스’는 해양 미세조류 중 지질 함량이 높고 바이오연료, 소재 개발에서 ‘오일 연료’로 자주 사용된다. ‘클로렐라’는 해양뿐만 아니라 담수에서도 서식하는 플랑크톤이다. 바이오 레진 및 복합재, 바이오매스 소재 개발에 이용된다. ‘규조류’는 추출한 화학성분을 이용, 고분자 합성이 가능하다. 이를 기반으로 저비용·친환경 디스플레이 개발 연구도 이뤄지고 있다. 스피루리나는 ‘바이오 폴리머’ 소재 개발에 이용되는 대표적 플랑크톤이다. 친환경 바이오 플라스틱의 핵심 소재로 자주 거론된다.
오철홍 한국해양과학기술원(KIOST) 책임연구원은 ‘시사위크’와의 통화에서 “삼성전자가 어떤 식물성 플랑크톤에서 오일을 추출해 신소재를 개발했는지에 대해선 정확히 알긴 어렵다”면서도 “다만 규조류 등에서 추출한 바이오실리카(Biosilica) 등의 소재가 아닐까 추측해본다”고 조심스럽게 답했다.
◇ 급성장하는 ‘플랑크톤 신소재’ 시장
사실 삼성전자 입장에서는 일반 플라스틱이나 고분자 화합물을 제품에 활용하면 편리할 수밖에 없다. 가격이나 생산, 재료 수급 등도 훨씬 자유롭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식물성 플랑크톤에서 추출한 바이오 레진을 활용한 이유는 간단하다. 환경오염, 탄소배출 등 문제서 비교적 자유롭기 때문이다.
실제로 리스본대학교 연구진에 따르면 바이오 레진 기반 신소재 수지를 사용할 경우 ‘기후변화 영향(Climate Change Total) 및 비재생 에너지 사용(NRPE)’ 지표에서 최대 약 75% 이상의 환경 부담 감소 효과가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삼성전자에 따르면 이페이퍼 제품 제조 과정에서 기존 석유 플라스틱 대비 40% 이상 탄소배출 절감이 가능하다고 한다.
삼성전자는 지난 2022년 ‘신(新)환경경영전략’을 발표, 경영의 패러다임을 ‘친환경 경영’으로 전환한 상태다. 이를 위해 2050년까지 모든 플라스틱 부품에 ‘재생 레진’을 적용한다는 방침이다. 이번에 식물성 플랑크톤 기반 바이오 레진 소재를 활용한 것도 삼성전자의 ‘자원 순환 체제’ 경영 전략의 일환으로 풀이된다.
삼성전자뿐만 아니라 해양 플랑크톤에서 추출한 바이오 신소재는 이미 산업계의 ‘뉴 노멀 트렌드’로 자리 잡는 추세다. 글로벌 시장조사업체 ‘퓨처마켓인사이트’에 따르면 해양 플랑크톤 추출물 시장은 지난해 기준 10억5,270만달러 규모로 추정된다. 연평균 성장률은 13.1%로 오는 2035년에는 36억720만달러에 이를 전망이다.
글로벌시장조사업체 ‘포춘비즈니스인사이트’는 “식물성 플랑크톤 기반 바이오플라스틱 등 신소재에 대한 수요는 지속가능성, 글로벌 규제 등과 함께 세계 시장에서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며 “전자제품, 의료, 코팅, 접착제, 3D프린팅 필라멘트와 같은 응용 영역에서 재료 특성 및 바이오플라스틱 제형 혁신을 통해 확장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 韓과학계, ‘KIOST’ 중심의 바이오 신약 개발 연구 활발
이 같은 산업 흐름에 맞춰 과학계도 플랑크톤 기반의 신소재·신물질 개발 연구를 지속하고 있다. 국내 핵심 연구기관으로는 한국해양과학기술원(KIOST)를 꼽을 수 있다. ‘KIOST 제주연구소’에서는 식물성 플랑크톤인 미세조류를 활용한 해양바이오 자원 연구가 활발히 이뤄지고 있다. 연구 분야는 바이오매스를 이용한 에너지 자원 및 신소재 개발 등 다양하다.
대표적으로 KIOST는 지난 2021년 해양 플랑크톤에서 추출한 원천소재를 이용, ‘소태아 혈청’ 대체물질을 개발했다. 소태아 혈청은 도축된 소의 태아 혈액에서 채취한 물질이다. 단백질 함량이 높고 세포 성장 및 기능 관여 호르몬을 함유하고 있어 바이오·의약 산업에 없어선 안될 자원이다. 하지만 환경오염과 윤리적 문제는 걸림돌이었다.
이에 KIOST 연구진은 해양 플랑크톤 스피루리나에서 ‘SACCS’ 물질을 추출한 후, 세포 배양을 진행했다. 그 결과, 세포 성장류르 성장 속도가 매우 안정적으로 나타났다. 소태아 혈청 대체율은 최대 90%까지 효과가 있음을 입증했다. 즉, 해양 플랑크톤에서 추출한 자원이 바이오 산업 분야의 새로운 대체 자원이 될 수 있는 것이다.
해양 플랑크톤에서 추출한 기억력 개선 효능 물질 개발도 대표적 연구다. KIOST 제주연구소의 최운용 제주바이오연구센터 박사팀은 스피루리나에서 ‘SM70EE’라는 물질을 추출했다. 이 물질을 70대 이상 인지기능 저하 환자 180명을 대상으로 효능을 분석한 결과, 시각기억, 어휘력 등이 뚜렷하게 개선되는 것을 확인했다.
KIOST는 해당 물질을 건강기능식품 생산업체 ‘네추럴웨이’와 스피루리나 추출물 제조방법에 대한 기술이전 계약을 체결했다. 체결 규모는 약 1억7,000만원 규모다. 해당 물질은 2023년 식품의약품안전처로부터 개별인정형 원료로 인증받기도 했다.
오철홍 KIOST 책임연구원은 ‘시사위크’와의 통화에서 “2023년 기술을 네추럴웨이에 이전이 완료된 상태로 이후 원료 생산과 사업화는 기업 주도로 진행되는 것으로 알고 있다”며 “스피루리나 원료 제조를 방향으로 사업이 기획된 것으로 알고 있느나 기술 이전 이후 상황은 정확히 확인하긴 어려우며 아직 본격적인 제품 생산 단계에는 이르지 못한 것으로 파악된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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