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위크=박설민·김두완 기자 너무도 당연하지만 ‘남극’은 극한의 환경이다. 때문에 이곳에서 장기간 체류하는 것은 보통 힘든 일이 아니다. 아무리 철저한 훈련을 받은 월동연구대원들이라 할지라도 마찬가지다. 매년 12월 중순이 되면 ‘남극세종과학기지’의 월동연구대원들은 교대가 이뤄진다. 시사위크 취재팀이 세종기지에 입남극했던 2024년 12월도 마찬가지다.
◇ 북적이는 세종기지, 37차와 38차 월동대의 교차점
12월 15일, 남극에 도착한 지 하루가 지났다. 기지 밖에는 젠투펭귄과 턱끈펭귄이 간간히 보일 뿐, 단조롭고 평화로운 시간이 계속됐다. 바깥의 거대한 마리안소만 빙하와 바톤반도만이 ‘우리가 남극에 왔구나’를 실감케 했다.
상상했던 것과 조금 다른 점은 남극이 ‘북적’였다는 점이다. 취재팀이 도착했을 당시 세종기지엔 굉장히 많은 인원이 체류하고 있었다. ‘제37차 월동연구대’와 2024년 12월 입남극한 ‘제38차 월동연구대’가 동시에 기지에 체류하고 있기 때문이다.
장보고과학기지 월동대는 11월, 세종기지 월동대는 12월 중순에 교체가 진행된다. 월동대원 선발은 매년 2월 진행된다. 선발 인원은 총 18명으로 △연구직 △시설관리·조리직 두 분야다. ‘연구직’은 △해양 △지질/지구물리 △생물 △대기과학 △고층대기 △우주과학 등 6개 분야이며, ‘시설관리·조리직’은 △기계설비 △중장비 △발전 △전기설비 △전자통신 △조리 등이다.
1년 간 남극을 지켰던 37차 월동대는 다음날 38차 월동대에게 임무를 맡긴 후 기지를 떠날 예정이었다. 물론 출남극은 남극이 ‘허락’해야 가능하다. 변덕스러운 날씨 변화때문에 항공기가 비행할 수 없을 경우, 출남극은 더욱 미뤄지기 때문이다.
37차 월동대는 1년 간 사용하고 남은 물품들을 정리해 기지에 기부했다. 선크림과 샴푸, 약간의 간식거리, 보드게임 등 앞으로 38차 월동대와 하계대 연구원들이 유용하게 사용할 물자들이었다. 어쩌면 지구에서 가장 물품이 부족할 이 남극이라는 공간에서도 따뜻한 나눔의 정이 깃드는 순간이었다.
마지막 식사 시간, 37차 월동대원들은 문명으로 다시 떠난다는 기쁨과 아쉬움이 교차된 감정을 드러냈다. 동시에 항공기 연착에 대한 걱정도 커 보였다. 이들과 만난 지 얼마 되지 않아 많은 이야기를 나눠보지 못한 취재팀도 조금은 아쉬운 기분이 들었다.
◇ 1년 임무 마친 37차 월동대, 남극을 떠나다
12월 16일, 남극에서의 하루가 지나고 2일 차 아침이 밝았다. 밖에서 큰 소리의 중장비 작동음이 들려왔다. 거대한 로더(Loader, 흙과 골재를 나르는 건설기계)가 움직이는 소리였다. 서준영 제38차 월동대 중장비대원은 울퉁불퉁한 흙길을 따라 로더를 운전해 세종기지 생활관 앞에 멈춰 세웠다.
생활관 앞에 주차된 로더 위로 37차 월동연구대들이 짐을 싣기 시작했다. 2023년 12월부터 2024년 12월까지 1년간 세종기지를 지켰던 월동대원들은 이제 임무를 마치고 ‘제38차 월동연구대’에게 세종기지를 맡기고 남극을 떠나는 것이다.
1년 간 기지 생활을 했던 만큼 37차 월동대원들의 짐도 양이 많았다. 다들 캐리어와 가방에 그동안 사용했던 물건, 기념품 등 세종기지의 추억이 담긴 물건들을 가득 담아 옮기고 있었다.
출남극을 앞둔 37차 월동대는 마지막으로 남극 생활을 즐기고 있었다. 세종기지 현판과 고(故) 전재규 대원 흉상 앞에서 기념촬영을 진행했다. 또한 ‘세상의 끝’에서 임무를 수행했던 그들은 세종기지를 떠나기 전, 마리안소만 빙하와 바톤반도, 펭귄들을 눈에 담았다. 그들의 얼굴에는 기쁨과 아쉬움, 뿌듯함이 교차하고 있었다.
황대하 38차 월동대 해상안전대원의 지휘하에 조디악(고무보트)에 모든 짐과 물자 탑재가 완료됐다. 이어 37차 월동대원들이 하나둘 보트에 탑승했다. 엔진소리와 함께 보트가 남극의 파도를 가르며 앞으로 나아가기 시작했다.
37차 월동대를 실은 보트는 마지막으로 마리안소만 빙하 앞 바다를 세 바퀴 돌았다. 일종의 안전 귀환을 위한 의식이라고 한다. 변덕스러운 남극 날씨에서도 무탈하게 고국으로 돌아가기를 기원하는 월동대의 마음이 느껴졌다.
그 마음을 남극 대륙도 알았을까. 37차 월동대가 떠날 당시 눈이 내리기 시작했지만 파도는 잔잔했다. 마치 남극이 그들을 마지막으로 배웅하는 느낌이었다. 떠나는 월동대원들은 세종기지를 바라보며 손을 흔들었다. 그렇게 그들은 1년의 시간, 남극에서의 추억, 책임감을 모두 내려놓고 마침내 ‘문명’을 향했다.
◇ 남은 자들의 시간, 새로운 이들을 기다리는 설렘
18명의 37차 월동대 대원들과 하계대 연구원들 일부가 떠나자 세종기지는 조금은 조용해졌다. 어제까지만 해도 복닥거리던 기지는 차분한 분위기가 돌았다. 이젠 정말 18명의 38차 월동대와 펭귄팀, 저서생물 연구팀, 동물모니터링팀 등 하계대 연구원들을 포함해 30명 남짓만이 남았다.
물론 체류 인원이 줄어 좋은 점도 있었다. 연구동 상주 인원이 줄면서 1인실을 사용할 수 있게 됐다는 점이다. 세종기지는 총 78명의 인원이 체류 가능하다. 이때 월동대 18명이 사용하는 본관 생활관을 제외하면 연구동에선 총 60명의 인원이 체류한다. 때문에 보통 2인 1실로 운영된다.
총 체류 인원의 절반 이하가 되면서 황의현 38차 월동대 총무는 1인실 사용을 허락했다. 사람이 줄어 다소 쓸쓸한 느낌이 들긴 했지만 하계대 인원 모두 즐거운 표정으로 짐을 옮겼다. 세탁기나 건조기 사용 시 기다리는 시간이 줄어든 것도 장점이었다.
즐거운 하계대와 달리, 38차 월동대는 분주해지기 시작했다. 37차 월동대로부터 받은 인수인계 자료를 정리하고 세종기지 운영을 본격적으로 맡아야해서다. 특히 임무 전반과 물자 정리, 중장비 관리 때문에 김원준 월동대장과 황의현 총무, 노기영 유지반장의 어깨가 무거워졌다.
38차 월동대원들은 떠난 37차 월동대가 사용했던 숙소와 침대, 이부자리 등을 정리했다. 1월부터 찾아올 하계대 연구원 등 손님들이 사용할 수 있게 하기 위함이다. 이처럼 남극에는 떠난 이들이 있다면 찾아오는 이들이 있다. 때문에 월동대는 하계 기간 동안 쉴 틈이 없다.
남은 하계대 연구원들 역시 본격적인 연구활동 시작에 나섰다. 남극세종과학기지 하계연구대 ‘야생동물팀’, 일명 ‘펭귄팀’은 다음날 바로 남극의 ‘포터소만’ 지역의 탐사를 진행할 예정이었다. 이곳은 펭귄과 해표, 남극도둑갈매기, 자이언트 패트럴 등 다양한 남극생물이 서식하는 지역이다.
취재팀 역시 이들의 일정에 맞춰 동행 취재를 진행하기로 결정했다. 촬영 장비를 점검하고 취재 복장을 미리 준비했다. 사실상 ‘첫 남극 현장 취재’였던 만큼 긴장도 됐다. 그렇게 남극을 떠난 사람들, 그리고 남은 사람들의 시간이 흘러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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