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준규의 ESG 모델링 10] 지속가능한 고객관리 下 ‘라이브어스’ 거대한 연대가 만든 순간의 폭발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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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G(환경·사회·지배구조) 경영이 화두가 된 지 수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많은 기업이 보고서 작성 수준에 머물러 있습니다. 진정한 지속가능 경영은 비즈니스 모델 자체를 사회적 가치 중심으로 재설계하는 일입니다. 이 칼럼에서는 ESG를 성장 동력으로 활용한 글로벌 선도 기업 성공과 실패 경험을 균형 있게 살펴보고, 한국 기업이 참고할 수 있는 실질적 교훈을 제시하고자 합니다. <편집자주>

[ESG 경영컨설턴트 심준규] 하루 만에 20억 명을 움직일 수 있을까? 전 세계 7개 대륙에서 24시간 동안 동시에 펼쳐지는 음악회를 상상해보라. 2007년 7월 런던, 뉴욕, 도쿄, 상하이, 요하네스버그, 리우데자네이루, 함부르크, 남극까지 150개 이상의 세계적인 아티스트 팀이 한 목소리로 기후변화 대응을 외쳤다.

다큐멘터리 <불편한 진실>로 환경 운동에 나선 앨 고어 전 미국 부통령이 기획한 이 거대한 환경 캠페인 ‘라이브어스(Live Earth)’였다.

앞서 살펴본 레고는 고객과 일대일로 깊은 신뢰를 쌓으며 오랜 시간 함께 문제를 풀어갔다. 반면에 이 글로벌 음악 이벤트는 짧은 시간 동안 최대한 많은 사람을 하나의 거대한 운동으로 묶어내는 전략을 택했다. 메탈리카, 마돈나, 레드 핫 칠리 페퍼스, 푸 파이터스 같은 슈퍼스타들이 같은 날 같은 목적으로 무대에 섰다.

이들은 평소 경쟁자였지만 이날 하루만큼은 같은 편이었다. 런던의 록 팬과 상하이의 가족 관람객, 리우의 젊은이들은 서로 얼굴도 모르지만 같은 메시지를 공유했다. 전 세계가 동시에 하나의 경험을 나눈다는 것, 그 자체가 강력한 메시지였다.

핵심은 구체적인 행동 약속이었다. 탄소 배출량을 줄이고, 에너지 효율을 높이고, 재생에너지 확대를 위한 법안을 지지하고, 나무를 심고, 무엇보다 정부가 국제 조약에 참여하도록 압박하라는 7가지 실천 사항이 제시됐다. 콘서트장에서, 온라인에서, 수백만 명이 이 약속에 서명했다.

이 접근의 독특한 점은 개인의 양심에만 호소하지 않았다. 영국 웸블리 스타디움의 거대한 디지털 스크린에는 전 세계에서 들어오는 서명 숫자가 실시간으로 올라갔다. 수십만, 수백만 명이 같은 약속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눈으로 확인하는 순간, 개인의 작은 행동은 거대한 운동의 일부가 됐다.

온라인 플랫폼에서 새로운 가능성이 열렸다. 지금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열악한 여건임에도 당시로서는 기록적인 1500만 건 이상 실시간 스트리밍이 이뤄졌고 콘서트 이후 2주 동안 5500만 건의 동영상 조회가 추가로 발생했다. 물리적 공간 제약 없이 전 세계 누구나 참여할 수 있었다.

하지만 긍정적인 모습 외에 모순도 함께 드러났다. 환경을 위한 행사를 열면서 정작 환경에 막대한 부담을 줬다. 세계적인 스타와 거대한 스태프를 이동시키기 위해 수십 대 비행기가 동원됐고, 수십만 관객이 콘서트장으로 이동했다. 당시 단순히 계산된 탄소 배출량만 7만4500톤에 달했다. 평균적인 영국인 3000명이 1년간 배출하는 양이었다.

콘서트가 끝난 뒤 각 공연장에는 엄청난 양의 쓰레기가 남았다. 일회용 플라스틱 컵, 음식 포장재, 버려진 물건들이 1000톤 가까이 쌓였다. 주최 측은 탄소 상쇄권을 구매해 나무를 심겠다고 밝혔지만, 이미 발생한 환경 부담을 완전히 상쇄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었다.

더 근본적인 질문도 제기됐다. 사람들이 이미 기후변화 문제를 알고 있는데, 이런 대규모 이벤트가 과연 필요한가? 인식을 높이는 것과 실제 행동 변화는 다른 문제 아닌가? 완벽하지 않은 방법으로 환경 운동을 하는 것이 과연 의미가 있는가?

실제로 측정가능한 변화를 입증하기는 어려웠다. 콘서트 이후 구체적인 정책 변화가 얼마나 일어났는지 참여자가 실제로 생활 방식을 바꿨는지 확인할 방법이 없었다. 하지만 무시할 수 없는 영향도 분명 있다. 당시 어린 세대에게 이 이벤트는 기후변화를 처음 인식한 순간이었고, 이후 환경 운동에 나선 젊은이 중 상당수가 이날을 계기로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고 말한다.

이 사례가 보여준 고객관계의 본질은 집단적 순간의 힘이다. 깊고 지속적인 참여보다는 짧지만 강렬한 집단 경험을 통해 소속감을 만들어냈다. 개인이 거대한 운동의 일부라고 느끼게 하고 그 순간만큼은 자신이 역사의 목격자이자 참여자라는 정체성을 부여했다. 고객을 글로벌 시민 운동의 동지로 재정의한 것이다.

완벽하지 않았지만, 그날 만들어진 연대감은 분명 어딘가에 씨앗으로 남았다. 하루 동안 20억 명이 같은 메시지를 들었다는 사실 자체가 가진 상징성은 컸다. 순간의 집단적 각성이 만들어낼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줬다.

국내 기업이 여기서 배워야 할 교훈은 명확하다. 먼저 고객관계에 대한 이분법적 사고에서 벗어나야 한다. 제조업이나 내구재 기업이라면 레고처럼 고객을 제품 개발 과정에 참여시키고, 투명하게 진행 상황을 공유하며, 실패까지 솔직하게 인정하는 방식이 효과적일 수 있다. 반면 대중 소비재나 서비스 기업이라면 대규모 캠페인을 통해 순간적이지만 강력한 참여를 이끌어낼 수 있다.

하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건 일관성이다. 이 사례가 가진 한계는 일회성에 그쳤다는 점이다. 그해의 폭발적 관심은 지속되지 못했다. 한 번의 화려한 이벤트보다 꾸준한 소통과 참여가 진짜 관계를 만든다.

국내 기업이 흔히 저지르는 실수를 직시해야 한다. ESG 보고서는 화려하게 발간하지만 고객이 실제로 참여할 통로는 없다. 대규모 캠페인을 벌이면서도 정작 고객의 목소리를 듣지 않는다. 고객 참여 프로그램을 만들어놓고도 그 결과를 실제 의사결정에 반영하지 않는다.

진정한 ESG 기반 고객관계는 고객을 변화의 동반자로 인정하는 데서 출발한다. 레고처럼 깊이 있게 참여시키든, 글로벌 캠페인처럼 광범위하게 동원하든, 핵심은 같다. 고객이 단순한 소비자가 아니라 기업의 지속가능성 여정에서 없어서는 안 될 파트너라는 인식이다.

레고가 신뢰를 바탕으로 한 지속적 협력의 힘을 보여줬다면, 라이브어스 이벤트는 순간의 집단적 각성이 만들어낼 수 있는 가능성을 증명했다. 깊이와 넓이, 지속성과 폭발력, 일대일 신뢰와 집단적 운동. 국내 기업들이 진정으로 지속가능한 미래를 만들고 싶다면, 고객을 어떻게 관계 맺을 것인지부터 다시 질문해야 한다.

고객을 설득의 대상으로 볼 것인가, 변화의 동력으로 볼 것인가 선택은 우리의 몫이다.

|심준규. 인하대학교 경영학과 겸임교수. 더솔루션컴퍼니비 대표. <그린북>, <실천으로 완성하는 ESG 전략> 저자. 기업의 ESG 역량 강화 프로그램 개발과 ESG경영컨설팅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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