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퍼스트 라이드’ 남대중 감독의 연출 철학

시사위크
남대중 감독이 영화 ‘퍼스트 라이드’로 또 한 번 유쾌한 웃음을 선물했다. / 쇼박스
남대중 감독이 영화 ‘퍼스트 라이드’로 또 한 번 유쾌한 웃음을 선물했다. / 쇼박스

시사위크=이영실 기자  영화 ‘퍼스트 라이드’는 끝을 보는 놈 태정(강하늘 분), 해맑은 놈 도진(김영광 분), 잘생긴 놈 연민(차은우 분), 눈 뜨고 자는 놈 금복(강영석 분), 사랑스러운 놈 옥심(한선화 분)까지 뭉치면 더 웃긴 24년 지기 친구들이 첫 해외여행을 떠나는 코미디다.

영화 ‘위대한 소원’(2016), ‘기방도령’(2019), ‘30일’(2023) 등 웃음과 따뜻한 여운이 공존하는 작품들을 선보여 온 남대중 감독이 메가폰을 잡고 배우 강하늘‧김영광‧차은우‧강영식‧한선화 등이 출연한 작품으로 지난달 29일 개봉과 동시에 박스오피스 1위를 수성한 뒤 꾸준히 관객몰이에 성공하며 흥행 순항을 이어가고 있다. 

데뷔작부터 대표 흥행작 ‘30일’까지 연이어 코미디 장르를 탐구해 오며 코미디를 향한 ‘진심’을 보여준 남대중 감독은 ‘퍼스트 라이드’를 통해서는 어린 시절부터 함께 해 온 친구들의 우정 이야기를 특유의 유쾌한 호흡으로 담아내 공감 가득한 웃음을 선사한다.

최근 시사위크와 만난 남대중 감독은 “관객이 내 영화를 보며 하하 웃고 스트레스를 풀고 기분 좋게 극장을 나섰으면 좋겠다”는 연출 철학을 밝혔다.  

-개봉 소감은.

“관객에게 영화를 선보일 수 있게 돼 기분이 좋다. 아마 모든 감독이나 배우들이 다 같은 마음일 거다. 극장가가 어려운 시기에 스크린에 걸릴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감사하고 행복하다. 이게 무슨 복인가 싶을 정도다. 올해 특히 한국영화 개봉이 많지 않았는데 이렇게 따끈따끈한 영화를 관객에게 내놓을 수 있다는 게 정말 기쁘다. 결과는 지켜봐야겠지만 현장에서도, 작업 과정에서도 너무 행복했다.”

-데뷔작 ‘위대한 소원’도 우정에 관한 이야기였는데 이번에 다시 그 소재를 꺼냈다. 

“나 자신에 대한 회고이기도 했다. 정태정이라는 인물이 친구들 사이에 있을 때만큼은 어릴 적의 본모습이 나온다. 우리네 아버지들도 그렇지 않나. 친구들 만나면 그 시절로 돌아간다. 그게 진짜 리얼한 모습이라고 생각했다. 시나리오를 쓰면서 반성도 많이 했다. ‘다음에 보자’ ‘다음에 한잔하자’ 말만 하면서 미루기만 했던 나 자신이 떠올랐다. 시나리오를 쓰면서 이걸 내가 지키지 않으면 위선자가 되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조금이라도 실천하려고 했다. 주변 사람들에게 연락도 더 자주 하게 됐다. 관객들도 영화를 보고 친구에게 잘 지내냐고 문자 하나 보낸다면 그걸로도 이 영화의 의미는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연민 캐릭터는 처음부터 ‘잘생긴’ 설정이었나. 차은우를 캐스팅하면서 추가된 부분인지 궁금한데. 

“원래부터 미소년 캐릭터였다. 친구들에게 보호본능을 일으키고 남자 친구들 사이에서도 챙겨주고 싶은 존재, 학교 안에서도 여학생들에게 인기가 많은 여리고 여린 친구로 설정돼 있었다. 차은우가 캐스팅되면서 이건 무한대로 표현해도 되겠다 싶었다. 어떻게 해도 개연성이 성립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이런 설정은 배우의 외모만으로 웃음을 줄 수 있어야 가능한데 차은우라면 설득력이 있다고 봤다. 원래부터 ‘잘생긴 놈’은 있었고, 차은우가 오면서 그 매력이 극대화된 셈이다.”

남대중 감독이 차은우 캐스팅 비하인드를 전했다. / 쇼박스
남대중 감독이 차은우 캐스팅 비하인드를 전했다. / 쇼박스

-차은우 캐스팅 과정이 궁금하다.

“조상님이 주신 복이 아닌가 싶다.(웃음) 제사를 잘 지낸 덕을 여기서 받나 싶었다. 더 기분 좋았던 건 반대로 제안이 들어왔다는 점이다. 내가 판타지오(차은우 소속사) 쪽 드라마 대본 작업을 하고 있었는데 그쪽에서 영화 준비 중인 것을 알고 요청해서 시나리오를 보여줬는데 연민 캐릭터 캐스팅 됐냐면서 차은우에게 시나리오를 줘도 되겠냐고 하더라. 인생은 타이밍인데, 차은우가 마침 코미디를, 특히 청춘 코미디를 하고 싶어 하던 시기였다더라. 군 입대 전 마지막으로 교복을 입고 하는 작품을 찾고 있었는데 마침 ‘퍼스트 라이드’가 그 시기에 맞물렸다. 흔쾌히 시나리오를 읽어줘서 정말 기뻤다.”

-여행을 떠나기 전까지의 빌드업 과정이 길게 느껴진다. 그렇게 구성한 이유가 있다면.

“원래 시나리오 자체가 그렇게 짜여 있었다. 억지로 느리게 끌거나 차은우 분량을 늘리려는 의도는 없었다.(웃음) 나는 항상 ‘빌드업 코미디’를 추구한다. 코미디는 웃음만 주는 게 아니라 결국엔 감동이나 메시지를 전달해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그게 급격히 톤이 바뀌면 설득력이 떨어진다. 그래서 초반부터 쌓아야 한다. 그래야 뒤에서 감정이 터질 때 관객이 공감할 수 있다. ‘퍼스트 라이드’도 마찬가지다. 학창시절 친구들이 갑자기 여행을 가는 게 아니라 어릴 때부터의 관계와 우정이 어떻게 변하고 현실을 마주하면서 어떤 치유를 받는가에 초점을 맞췄다. 여행이 꼭 목적이 아니라 그 과정을 통해 제자리로 돌아가는 이야기다. 우정도, 사랑도, 인생도 내 뜻대로만 되진 않잖나. 엇갈리고 돌아가더라도 결국 방향이 같다면 한 길에서 만날 수 있다고 믿었다. 그런 생각을 담으려 했다.”

-마음의 병을 안고 있는 캐릭터의 표현 방식에 있어서도 고민이 많았을 것 같다.

“코미디지만 인물의 내면이 무겁기 때문에 조심스러웠다. 나도 신경정신과 전문의에게 자문을 구했다. 실제 이런 증상이 있는지, 어떻게 치유되는지 등 구체적으로 인터뷰했다. 음주나 환경 변화가 어떤 영향을 주는지까지 듣고 그걸 토대로 썼다. 주변 사람들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하더라. 그래서 영화 속에서도 친구들이 그를 끌어내고 회복시키는 과정에 힘을 뒀다. 코미디 장르기 때문에 표현은 조금 과장됐지만 그 본질은 진지하게 접근했다.”

남대중 감독과 다시 호흡을 맞춘 강하늘. / 쇼박스
남대중 감독과 다시 호흡을 맞춘 강하늘. / 쇼박스

-해외 범죄 집단 관련 에피소드가 최근 캄보디아 이슈와 겹쳐서 불편하다는 반응도 있었다. 의도한 게 아니라 안타까운 마음도 클 것 같은데.

“의도한 건 전혀 아니다. 내가 노스트라다무스도 아니고 궁예도 아니잖나. 우연히 겹친 거다. 하지만 그런 이슈와 상관없이 촬영할 때부터 나라에 대한 예의는 지키려고 했다. 태국에서 촬영했는데 그 나라를 부정적으로 그리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 촬영 허가를 받은 이상 그건 기본적인 예의라고 봤다. 그래서 영화 속 ‘빌런’들이나 부정적인 인물들은 특정 국적이 없는 다양한 인물들로 설정했다. 태국인으로 오해받을 만한 설정은 피했다. 실제로도 촬영 전에 태국 정부, 경찰, 관광청에 시나리오를 모두 제출했다. 만약 부정적인 내용이었다면 허가가 나오지 않았을 거다. 오히려 자국 경찰의 활약을 보여줘서 고맙다는 말까지 들었다. 그게 가장 다행이었다.”

-전작 ‘30일’ 흥행이 이번 영화를 연출하는 데 영향을 준 부분도 있나. 

“‘30일’이 잘 됐기 때문에 ‘퍼스트 라이드’도 제작과 기획이 훨씬 수월하게 진행됐다. 요즘 한국 영화 시장이 워낙 어렵고 코미디 장르를 극장에서 개봉한다는 게 쉽지 않다. 그래서 ‘30일’의 흥행이 큰 도움이 됐다. 연출 방향이 바뀌었다기보다 오히려 그 덕분에 ‘어떻게 하면 더 많은 관객이 웃을 수 있을까’를 더 고민하게 됐다. 예전엔 ‘하이개그’를 하고 싶었다. 모두가 웃는 코미디보다 특정 관객층이 열광하는 웃음을 만들고 싶었다. 지금 생각하면 건방진 욕심이었다. 이제는 남녀노소, 특정 세대를 가리지 않고 모두가 편하게 웃을 수 있는 코미디를 하고 싶다. 그런 마음으로 이번엔 12세 관람가로 만들었다. 부모님과 아이가 함께 봐도 불편하지 않고 가족이 다 같이 웃을 수 있는 영화를 만들자는 게 목표였다. 수위나 표현의 정도, 상황의 리듬을 조율하면서 그런 부분에 특히 신경 썼다.”

-감독이 생각하는 ‘웃음의 기준’은 무엇인가.

“열 명 중 열 명을 다 웃길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예전에는 ‘열 명 중 일곱 명이 웃으면 대성공’이라고 생각했는데 지금은 다섯 명이 웃더라도 세 명이 ‘웃기긴 한데 좀 불편하다’고 느끼면 실패라고 본다. 코미디를 하면서 자꾸 배우고 느낀다. 사실 연출자는 현장에서 배우면 안 된다고 하지만 하다 보면 깨닫게 된다. 지금은 ‘내가 왜 영화감독을 하려 했을까’라는 초심으로 돌아가게 된다. 결국 사람들을 즐겁게 해주고 싶어서 시작한 일인데 나만 웃고 있으면 안 되잖나. 그런 걸 점점 더 실감하고 있다. 아직은 다행히 과반수 이상이 ‘재밌다’고 해준다. ‘30일’도 그렇고 이번 ‘퍼스트 라이드’도 그렇다. 하지만 요즘은 웃기기가 정말 어렵다. 강하늘도 그 이야기를 하더라. 예전엔 ‘개그콘서트’나 ‘유머일번지’ 같은 코미디 프로그램이 있었는데 지금은 유튜브나 SNS를 켜면 코미디 콘텐츠가 넘친다. 그런 환경 속에서 영화가 웃음을 준다는 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싶다. 그래도 코미디 영화만의 매력이 분명히 있다. 혼자 봐도 웃기지만 함께 보면 더 크게 웃게 된다. 관객이 한 공간에서 같은 타이밍에 웃는 그 에너지가 있다. 그래서 코미디 영화는 여전히 극장에서 볼 가치가 있다고 믿는다.”

남대중 감독이 우정에 대해 이야기한 이유를 전했다. / 쇼박스
남대중 감독이 우정에 대해 이야기한 이유를 전했다. / 쇼박스

-코미디 감각을 잃지 않기 위한 노력도 하나. 

“영화감독이 되기 전의 경험들이 양분이 돼서 꾸역꾸역 버티는 것 같다. 시트콤 같은 인생을 살았다. 시골 출신이고 도시로 유학 와서 다양한 친구들을 만났다. 엉뚱한 사람도 많았고. 그런 경험들이 쌓인 것 같다. 지금 내가 인간의 내면을 꿰뚫거나 자아를 성찰하는 깊은 작품을 하진 않지만 그 시절의 경험들이 자양분이 돼서 코미디 영화를 하고 있는 것 같다. 요즘에는 ‘뭘 더 해야 하나’보다 ‘뭘 하면 안 되나’를 많이 생각한다. 무지에서 비롯된 실수를 하지 않기 위해 공부하고 배우려고 한다. 자부할 수 있는 건 모니터링을 정말 많이 한다는 점이다. 자기 검열을 심하게 하는 편이다. 연령, 성별, 직업군별로 시나리오를 다 읽혀본다. 10대부터 80대까지 다 읽고 안 웃기면 솔직하게 이야기해 달라고 한다. 불편하다는 지점이 있으면 왜 그런지도 듣는다. 완성 후에도 블라인드 시사도 자주 한다. 굳이 누가 지적하지 않아도 내가 먼저 불편한 부분 없었냐고 묻는 편이다.”

-감독에게 ‘코미디’란 어떤 의미인가.

“내게 코미디는 가장 기본이 되는 베이스다. 코믹 액션, 코믹 로맨스, 코믹 호러 등 장르를 섞어도 결국 ‘코미디’가 중심에 있다. ‘핸섬가이즈’ 같은 영화도 재밌게 봤고 코믹 로맨스처럼 따뜻한 정서가 깔린 영화도 좋아한다. 원래 영화감독의 꿈을 가진 이유가 사람들을 즐겁게 해주고 싶어서였다. 재능이 많았다면 개그맨이 됐을 거다. 몸으로 웃기거나 가수가 됐다면 노라조처럼 웃기고 신나는 무대를 했을 거다. 결국 나는 ‘사람을 웃기고 싶다’는 욕망이 큰 사람이다. 이번 ‘퍼스트 라이드’는 휴먼 코미디에 가깝지만 다음에는 코믹 액션을 해보고 싶다. 그런 장르를 준비 중이다. 내게 코미디는 웃음을 통해 인간을 이해하고 위로하는 장르다.”

-이 작품이 관객에게 어떻게 다가갔으면 하나.

“내가 추구하는 영화 철학은 단순하다. 관객이 내 영화를 보면서 하하하 웃고 보는 동안 스트레스가 풀리고 극장을 나설 때 기분 좋게 나갔으면 좋겠다. 부모님과 혹은 친구, 연인과 같이 보면서 ‘그 장면 웃기더라’ ‘그건 좀 과하지 않았냐’ 하며 이야기 나눌 수 있다면 그걸로 충분하다. 보는 동안 즐겁고 보고 나서 이야깃거리가 생기는 영화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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