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라임경제] 제주 내륙의 길은 생각보다 거칠다. 바람은 강하고, 노면은 연속된 업&다운힐로 이어진다. 그러나 그 복합적인 환경은 좋은 차를 가장 솔직하게 드러낸다. 그리고 그 길 위를 달린 건 포르쉐의 하이브리드 플래그십 '파나메라 터보 S E-하이브리드'다.
처음 시동 버튼을 누르는 순간, 조용함이라는 전형적인 하이브리드의 인상은 사라진다. 엔진이 깨어나는 소리는 단단하고 묵직하다. 4.0ℓ V8 바이터보 엔진과 190마력 전기모터의 조합, 총 782마력, 시스템 토크 102.0㎏·m.
여기에 엄격한 자동차 배출가스 규제 유로 7(Euro 7) 충족을 위해 기존 트윈-스크롤에서 싱글-스크롤 터보차저로 변경해 촉매변환기의 예열단계를 단축했다.

숫자는 이미 슈퍼카의 영역이다. 정지상태에서 100㎞/h까지 가속하는데 단 2.9초, 최고속도는 325㎞/h다. 솔직히 처음 데이터를 봤을 때 믿기지 않았다. '이게 세단의 수치가 맞나?' 싶었다. 하지만 제주 와인딩의 첫 코너를 지나자 그 의문은 곧 확신으로 바뀌었다.
파나메라는 그야말로 '두 얼굴의 괴물'이다. 도심의 출발 신호에서는 순수 전기차처럼 부드럽고 조용하지만, 가속페달을 깊게 밟는 순간 하이브리드 시스템은 폭발하듯 전환된다.
전기모터가 초반을 날카롭게 당기고, V8이 중후반을 터뜨린다. 두 동력이 연결되는 순간의 무게 이동은 거의 감지되지 않는다. 8단 포르쉐 듀얼 클러치 변속기(PDK)의 반응은 감각적이며, 어떤 속도에서도 기어의 이음새가 사라진다.

이번 시승 코스는 제주 내륙의 중저속 업&다운힐 와인딩 구간. 고속보다는 리듬감이 중요하고, 코너링 중 노면의 굴곡이 계속 변한다. 이런 조건은 차의 서스펜션과 스티어링 정교함을 판단하기에 제격이다. 또 200㎞/h 속도에서 다운포스는 60㎏까지 향상되며 까다로운 코너링 구간에서 탁월한 민첩성을 발휘한다.
포르쉐 액티브 라이드(Porsche Active Ride) 서스펜션은 단순히 충격을 흡수하는 수준을 넘어, 마치 차체를 정지된 축처럼 고정시킨다. 코너에서 무게 이동이 일어나지 않고, 노면이 휘어져도 차는 수평을 유지한다. 그 정밀함은 물리 법칙을 거스르는 듯하다.
스티어링은 당연히 포르쉐답다. 전기 유압식 펌프와 리어 액슬 스티어링이 만들어내는 조향감은 묵직하면서도 매끄럽다. 속도를 높일수록 차체가 더 낮아지고, 중심이 안정적으로 눌린다. '거대한 그랜드 투어러'라는 인식을 잊게 만드는 탄탄함이다. 한 번의 코너 진입 후 차가 정확히 어디로 향할지를 예측할 수 있는 이 직관적인 움직임, 그것이 바로 포르쉐의 정밀함이다.

성능이 폭발적이라 해서 승차감이 희생된 건 아니다. 이번 세대의 에어 서스펜션은 부드러움과 단단함의 경계를 완전히 새롭게 정의했다. 요철 위를 지날 때도 차체는 수평을 유지하고, 실내로 전달되는 진동은 놀라울 만큼 억제된다. 마치 거대한 에너지가 정제된 형태로만 드러나는 느낌이다.
하이브리드 시스템은 새로운 차원의 완성도를 보였다. 25.9㎾h 용량의 고전압 배터리는 순수 전기모드로 최대 63㎞를 달릴 수 있고, 회생제동은 88㎾로 향상됐다. 제동 시 전력 회수 감각은 부드럽지만 강력하다. 전기모드에서의 응답성도 날카롭고, 전환 시 충격이 없다. 효율과 퍼포먼스의 두 축이 완벽히 맞물린 셈이다. 참고로 최적의 충전 조건에서 0에서 100%까지 11㎾ 온-보드 AC 충전기로 약 2시간39분만에 배터리 완충이 가능하다.
디자인은 터보 S라는 이름에 걸맞게 존재감이 강렬하다. 프런트 범퍼의 공기흡입구와 리어 디퓨저는 과시적이지 않으면서도 공격적이다. 옐로우 캘리퍼의 PCCB 세라믹 브레이크, 다크 브론즈 테일파이프 그리고 전용 색상인 터보나이트 컬러가 고급스러운 긴장감을 완성한다.

실내는 클래식 포르쉐 감성과 미래적 인터페이스가 교차한다. 손끝에 닿는 모든 스위치가 정제된 클릭감을 주고, 계기판은 여전히 드라이버 중심으로 휘어진다.
이 차의 진가는 빠르게 달릴 때보다 천천히 달릴 때 드러난다. 가속과 제동, 코너링과 직진이 하나의 호흡으로 이어진다. 단 한 번의 출력 낭비도, 불필요한 반응도 없다. 전동화가 만들어낸 정숙함 위에 포르쉐가 깔아놓은 기계적 긴장감. 그것이 파나메라 터보 S E-하이브리드의 정체성이다.
시승을 마치고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 차는 스펙으로 달리지 않는다. 숫자를 초월한 어떤 기분으로 달린다. 조용한 순간에도 긴장감이 흐르고, 폭발적인 가속 뒤에도 품격이 남는다. 파나메라 터보 S E-하이브리드는 포르쉐가 만든 가장 이성적인 하이브리드이자 동시에 가장 감성적인 그랜드 투어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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