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로를 선택한 최천식 감독×윤경이 합작한 우승 [MD더발리볼]

마이데일리
인하대 윤경-최천식 감독./곽경훈 기자

[마이데일리 더발리볼 = 김희수 기자] 남성고등학교의 ‘에이스’ 윤경은 모든 대학 팀이 탐내는 자원이었다. 그가 고민 끝에 선택한 학교는 인하대학교였다. 최천식 감독 역시 주전 선수들의 대거 이탈로 발생한 전력 누수를 만회할 카드인 윤경을 망설임 없이 품었다. 그리고 사제는 함께 2025시즌 U-리그를 평정하며 대학 무대 정상에 올랐다. 그리고 둘은 또 한 번 서로를 선택했다. 한 시즌 더 동행을 이어가기로 했다. 서로에 대한 굳은 신뢰가 돋보이는, 최고의 사제지간인 두 사람을 <더발리볼>이 찾아갔다.

위기를 기회로 만든 최천식X윤경의 크로스!

Q. 인하대가 2024시즌이 끝나고 주력 선수들을 네 명이나 드래프트로 떠나보내야 했죠. 돌아보면 2025시즌은 어떤 마음으로 준비한 시즌이었나요?

최천식 - 사실 어느 정도 마음을 비우다시피 준비한 시즌이었죠. 그런데 일본 전지훈련을 다녀오고 다른 팀들의 준비 상황도 체크하면서 ‘우리가 생각보단 할 만하겠다’는 느낌이 들더라고요. 마침 리그에서 대진운도 따라줬고, 1학년인 (윤)경이가 자신감을 갖고 정말 잘해준 것도 있고 해서 시즌이 잘 풀린 듯합니다.

Q. 역시 윤경의 합류가 최고의 열쇠였군요.

최천식 - 사실 옛날에는 신입생들이 원서를 넣으면 그걸로 끝이었는데, 지금은 합격자 발표가 나면 선수들을 어디로 최종 선택을 하게 만드느냐 싸움이 또 있습니다. 더 치열해진 거죠. 거기서 사실상 이후 1~2년 대학 팀의 성적이 결정됩니다. 그래도 우리는 경이를 포함해서 원했던 선수들이 다 들어와 줘서 이번 시즌 성적을 잘 낼 수 있었던 것 같아요.

Q. 윤경 선수는 인하대에 오길 잘했다고 생각한 순간이나, 살짝 후회한 순간이 있을까요?

윤경 - 우선 후회한 순간은 정말로 없습니다(웃음).

최천식 - 이런 건 따로 물어봐야 하지 않나요?

윤경 - 정말로 없습니다! 쉴 땐 쉬고, 운동할 땐 운동하는 팀이라서 좋았고, 틀에 박히지 않은 창의적인 플레이들을 할 수 있게 감독님께서 풀어주신 것도 정말 감사했습니다.

Q. 앞서 이야기한 대로 인하대가 예상을 뒤엎고 조별리그에서 무패 가도를 달렸죠. 원동력이 무엇이었나요?

최천식 - 배구에서 결국 가장 중요한 건 팀워크인데, 지난 시즌보다 팀워크는 오히려 더 좋았다고 봅니다. 지난 시즌에 잘 안 풀렸던 경기는 항상 우리 안에서의 문제로 팀워크가 흔들리면서 패하는 패턴이었어요. 이번 시즌에는 그런 경기가 없었습니다. 새로 합류한 경이나 (김)정환이가 팀에 활력소가 된 것도 컸죠. 전반적인 체급은 약해졌지만 오히려 팀으로서는 지난 시즌보다 더 끈끈했던 시즌이라고 생각합니다.

Q. 윤경 선수는 1학년임에도 적응기 없이 리그를 폭격했습니다. 처음부터 자신감이 있었나요?

윤경 - 연습경기랑 전지훈련 때까지는 고3 큰형에서 대1 막내가 된 입장이라, 눈치 같은 게 좀 보이지 않을까 걱정도 했어요. 하지만 형들이랑 감독님이 그런 거 전혀 신경 쓰지 말고 하라고 해주셔서 하고 싶은 대로 한 게 자신감을 살리는 데 도움이 됐습니다!

Q. 잘 풀리던 시즌에 찾아온 첫 고비는 여름방학 연맹전이었습니다. 두 대회 모두 우승 트로피를 들어 올리지 못했죠.

최천식 - 고성대회 때는 선수들이 잘해줬어요. 다만 결승 5세트 14-11에서 역전당한 게 뼈아팠죠. 상대 조선대가 부담 없이 경기에 임한 반면, 우리는 세터 (이)한샘이가 부담감에 조금 흔들린 게 아쉬웠습니다. 결국 그 부담감을 잡아주지 못한 제 잘못이 크죠. 단양대회 때는 (임)인규와 경이가 청소년 대표팀 일정 때문에 자리를 비웠기 때문에, 그 자리를 채우기도 급급했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2승 2패를 한 건 나름의 성과였다고 봅니다.

윤경 - 고성대회 때 4강에서 명지대를 이기고 결승에 올랐는데, 조선대전에서 오랑바야르를 제대로 막지 못했어요. 우리가 끝낼 수 있는 기회에서 멘털이 흔들린 것도 아쉬웠고요. 그런 것들이 기억에 남습니다.

Q. 이어진 리그 6강 플레이오프에서도 중부대-한양대를 상대로 연패를 당하면서 한 번의 고비가 찾아왔죠. 하지만 결국 고비를 넘고 리그 우승을 차지하게 됩니다.

최천식 - 초반에는 잘 나가다가 당한 2연패였죠. 이것 때문에 흐름이 좀 어려워지지 않을까 싶었는데, 한양대의 학교 사정으로 인해 우리가 홈 코트를 먼저 쓸 수 있었던 것이 준결승전에 굉장히 좋은 영향을 끼쳤던 것 같습니다. 또 결승전은 어웨이로 갔는데, 지난 시즌에 홈에서 졌던 것과 반대 상황이 돼서 오히려 부담감이 좀 덜했던 것 같고요. 작전시간에 선수들을 좀 강하게 다그칠 때도 선수들이 얼지 않고 오히려 살아나는 걸 보면서 우리에게 어웨이 경기가 득이 됐다는 걸 느꼈습니다.

윤경 - 중부대와 6강전은 0-2로 지다가 5세트까지 끌고 갔지만 너무 아쉽게 진 경기였어요. 그때부터 ‘이제 지면 안 되겠다’는 생각을 했고, 준결승전부터는 정말 이기고 싶다는 생각만 머릿속에 가득했어요. 중부대와 결승전에서는 선수들끼리 (박)규환이 형의 마지막 대회를 꼭 우승으로 마무리하자고 의지를 다졌던 기억도 나네요.

인하대 윤경-최천식 감독./곽경훈 기자

Q. 윤경 선수는 시즌 내내 한양대와 매치업이 힘들어 보이기도 했습니다. 세터 블로킹이 워낙 높다 보니 때릴 곳이 많지 않았잖아요. 그럼에도 중요한 순간마다 한양대를 넘어선 포인트는 무엇이었나요?

윤경 - 한양대를 상대할 때는 위화감 같은 게 좀 느껴졌어요. 앞에 있는 블로커들이 전부 다 2m에 가까우니까, ‘도대체 어디에 때려야 하나’ 싶은 생각이 많이 들었죠. 한양대를 상대할 때는 그나마 최대한 낮은 쪽을 공략해보자는 마음으로 접근했어요. 중앙 쪽보다는 사이드 위주로 풀어갔던 것 같습니다.

Q. 다른 선수들의 활약도 시즌 내내 이어졌습니다. 선수들에게 칭찬을 한다면요?

최천식 - 앞서 말씀드렸듯 배구에서는 팀워크가 가장 중요합니다. 코트에서 뛰는 모든 선수들은 물론이고 웜업존의 팀워크까지 전부 다 중요하죠. 다행히 이번 시즌은 모든 선수들이 좋은 분위기를 만드는 데 동참해 줬어요. 인하대 배구는 언제나 팀워크를 중시합니다. 이 철학을 모두가 존중해주고 따라준 것에 대해 고맙게 생각합니다!

"윤경은 동 나이대 이경수-문성민에게도 뒤지지 않는 파워를 가졌다"

Q. 인하대에서 20년 동안 수많은 선수들을 지켜보셨죠. 그 중에서도 윤경 선수를 보면서 특별한 무언가를 느끼셨나요?

최천식 - 국가대표 아웃사이드 히터가 될 것이라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어떻게든 키워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죠. 경이는 1학년을 기준으로 놓고 보면 이경수나 문성민 같은 공격수들의 그 나이 당시와 비교해도 뒤지지 않는 파워를 가졌어요. 다만 아웃사이드 히터기에 리시브 장착이 필수죠. 훈련으로 이 부분을 향상하면 윤경은 한국 남자배구의 아웃사이드 히터 계보를 이을 수 있는 선수로 성장할 수 있겠다고 생각했고, 지금도 그 생각은 유효합니다. 이번 시즌에는 정말 중요한 경기에서는 경이를 아포짓으로 돌리고 공격에 집중할 수 있도록 한 적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리그 우승을 차지했으니, 가능한 원래의 자리에서 뛰도록 하려고 합니다.

Q. 그렇다면 앞으로의 윤경 선수가 어떤 식으로 성장하고 나아가길 바라나요?

최천식 - 경기력의 측면에서는 워낙 적극적이고 승부욕도 강한 선수라 크게 걱정하지 않아요. 훈련으로 기본기만 더 탄탄히 다진다면 좋을 것 같습니다. 무엇보다 초심을 잃지 않았으면 해요. 외부의 칭찬이나 기대보다도 지금처럼 곁에 있는 동료들의 신뢰를 받을 수 있는 선수가 돼야 해요. 운동은 길어야 30대 후반이면 끝나요. 그 다음부터는 또 새로운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때를 위해서라도 주변 사람들이 믿을 수 있는 사람이 돼야 해요. 경이는 지금처럼만 하면 그렇게 될 겁니다.

Q. 윤경 선수는 벌써부터 외부의 엄청난 기대와 관심을 받고 있습니다. 이걸 어떻게 받아들이려고 하나요.

윤경 - 우선 정말 감사드립니다. 하지만 저는 아직 부족한 게 많아요. 지금은 외부의 평가에 신경 쓰기보다는 제가 해야 할 일을 잘 하는 데에 집중해야 할 것 같습니다. 이럴 때일수록 기본에 충실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Q. 윤경 선수의 드래프트 참가 여부에 모두의 관심이 모였습니다. 두 분이 많은 대화를 나누셨을 텐데, 어떤 결론을 내렸나요(인터뷰는 남자부 드래프트 전에 진행됐다)?

윤경 - 드래프트는 나가지 않는 걸로 결정했습니다(웃음). 결정하고 나니 마음이 편하더라고요. 지금까지 인하대에서 긴 시간은 아니지만 재밌는 추억을 정말 많이 쌓았어요. 그래서 여기서 조금 더 배구를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최천식 - 제가 많이 졸랐죠(웃음). 리시브 훈련 더 하고 다음을 기약해 보자고 말했습니다. 지금 워낙 관심을 많이 받고 있는 상태인데, 그건 분명 긍정적인 신호죠. 만약 이번에 나갔다면 1~2순위도 확정적이었을 겁니다. 하지만 지금 나가서 뽑히면 자칫하면 프로에서 백업 아포짓이 돼버릴 수도 있어요. 프로는 언제 가느냐보다는 얼마나 준비가 돼서 가느냐가 더 중요한 무대입니다. 아웃사이드 히터로 더 완성도를 끌어올린 뒤에 프로로 가야 경이가 더 잘 성장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고, 경이가 제 마음을 잘 이해해주고 최종 결정했어요.

Q. 윤경 선수의 미래만큼 감독님의 미래를 궁금해 하시는 분들도 많습니다. 대학 감독계에 세대교체의 바람이 불고 있기 때문인데요.

최천식 - 저도 원래는 8월이 정년이었습니다. 하지만 1년 재계약을 체결하게 됐고, 앞으로 얼마나 더 할지는 모르겠습니다(웃음). 어쨌든 저는 ‘뼛속까지 인하’인 사람입니다. 인하부중에서 배구를 처음 시작했고, 인천 대한항공에서 선수 생활을 했죠. 그리고 지금 이순간까지 인하에서만 45년째 배구를 하고 있어요. 감독으로서 미래가 언제까지일지는 알 수 없지만, 언제나 인하대 배구를 위해 노력하며 살아갈 겁니다!

인하대 윤경-최천식 감독./곽경훈 기자

Q. 윤경 선수는 1년차 시즌에 우승을 차지했습니다. 2년차 윤경의 목표는 무엇일까요?

윤경 - 리그 우승을 해봤으니, 이제 연맹전이랑 전국체전까지 다 우승해보고 싶습니다(인하대가 전국체전 우승을 거두며 윤경의 꿈은 또 한 번 이뤄졌다)! 나가는 대회마다 다 우승하고 싶어요. 이번 시즌에 거둔 성공이 큰 원동력이 될 것 같습니다.

Q. 그럼 좀 더 가까운 미래인 이번 겨울방학에는 뭘 하고 싶어요?

윤경 - 우선 다음 시즌 시작 전까지 리시브 보강에 끝까지 주력해보고 싶어요. 제가 리시브를 안 하면 다음 시즌 우리 팀이 상당히 힘들어질 것 같거든요. 체격도 좀 더 키워보고 싶네요!

Q. 이제 인터뷰를 마무리할 시간입니다. 두 분의 소감을 들려주세요!

윤경 - 처음으로 감독님과 함께 한 인터뷰였는데, 감독님께서 좋은 말씀을 많이 해주셔서 정말 좋았습니다(웃음).

최천식 - 이렇게 둘이 자주 인터뷰했으면 좋겠네요(웃음). 내년에 우승하고 한 번 더 하시죠!

Q. 끝으로 두 분이 서로에게 하고 싶은 말 한 마디씩 하면서 인터뷰 마치겠습니다!

최천식 - 시원하게 한 번 해봐라. 이런 기회 많지 않아(웃음).

윤경 - 감독님께서 저를 인하대에 뽑아주셔서 정말 감사드립니다. 그 기대에 부응할 수 있는 선수가 될 수 있도록 더 정진하겠습니다. 또 늘 초심 잃지 않고 노력하겠습니다. 사랑합니다(웃음)!

최천식 - 나도 네가 인하대를 선택해줘서 정말 고마웠다. 이번 시즌에 스케줄이 정말 타이트했는데 힘든 티도 내지 않고 오히려 더 적극적으로 운동해준 것도 고마웠어. 드래프트 참가도 미루면서 인하대에 남아준 만큼, 내가 너에게 약속한 모든 것들을 지키면서 더 좋은 선수가 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 도와줄게. 지금처럼만 잘해다오!

글. 김희수 기자

사진. 곽경훈 기자

(본 기사는 배구 전문 매거진 <더발리볼> 11월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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