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사위크=권신구 기자 배임죄를 둘러싼 정치권의 공방이 뜨겁다. 이재명 대통령의 의지에 더해 상법 개정 등으로 부담이 커진 기업 달래기에 나선 여당은 신속한 배임죄 폐지에 힘을 싣고 있는 반면 정작 기업의 경영 위축을 우려하던 야당은 이를 반대하고 나섰기 때문이다. 경영 환경 개선이라는 본래의 목적보다는 정치적 목적으로 문제에 접근하다 보니 교착 상태도 심화하는 형국이다.
23일 여야는 배임죄 폐지를 두고 충돌했다. 김병기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는 이날 국회에서 열린 원내대책회의에서 “국민의힘에 묻겠다. 배임죄 폐지에 찬성인가 아니면 반대인가”라며 “친기업 정당을 자처하면서 재계의 숙원에는 등을 돌리고 있다”고 비판했다. 김 원내대표는 “(폐지에) 찬성한다면 민생경제협의체 안건으로 상정하고 정기국회 내에 신속히 처리할 것을 제안한다”며 “반대한다면 그 책임은 국민과 재계 앞에서 분명히 져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같은 김 원내대표의 발언은 최근 민주당이 드라이브를 걸고 있는 ‘배임죄 폐지’에 대해 국민의힘이 반대 목소리를 낸 데 따른 것이다. 김도읍 국민의힘 정책위의장은 이날 국회에서 열린 원내대책회의에서 “국민의힘은 형법상 배임죄 폐지에 반대한다”고 강조했다. 이는 그간 민주당 주도의 상법 개정안의 반대 논리로 ‘배임죄 남용’을 우려했던 국민의힘 입장과는 사뭇 다른 모습이다. 배임죄를 손봐야 한다며 각종 개정안을 발의한 것과도 거리감이 느껴지는 대목이다.
사실 애초부터 미묘한 입장 차이는 존재했다. 현행법상 배임죄는 크게 형법·상법·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 등 세 개로 나뉘어 있는데, 실무에서 형법상 배임죄로 기소하다 보니 ‘상법상 배임죄’는 사실상 사문화된 상태다. 이렇다 보니 ‘상법상 배임죄’를 폐지해야 한다는 데에는 여야 모두 이견이 없다. 송언석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이날 국회에서 열린 ‘취임 100일 기자간담회’에서 “상법상 기업인에 대한 특별배임죄는 얼마든지 전향적인 의견을 갖고 있다”고 했다.

◇ ‘폐지’냐 ‘보완’이냐 엇갈린 여야
문제가 되는 부분은 ‘형법상 배임죄’다. 형법 제356조의 경우 ‘업무상의 임무에 위배하여 배임을 한 경우 10년 이하의 징역 또는 3천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규정돼 있는데, ‘업무상 임무에 위배’라는 문구가 광범위하고 모호하다는 지적이 적지 않았다. 기업의 합리적 경영 판단에 대해서도 ‘배임죄’를 적용할 수 있다는 맹점이 존재하는 만큼, 구체적인 범위를 정하자는 게 야당의 생각이다. 실제로 고동진 국민의힘 의원이 발의한 형법 개정안에는 ‘합리적 경영상 판단 행위’의 경우에는 처벌을 예외로 하는 조항이 담겨있다.
배임죄 ‘보완’에 방점이 찍힌 국민의힘은 ‘전면 폐지’ 주장을 납득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김도읍 국민의힘 정책위의장은 이날 회의에서 “(지난번 상법 개정은) 회사와 주주의 충실 의무 강화를 통해 주주, 특히 개미 투자자를 보호하자는 것”이라며 “그런데 이제 와서 배임죄를 폐지하는 것은 회사의 충실의무를 사실상 면제해 주겠다는 말과 다르지 않다”고 지적했다. 일각에선 기업의 경영 활동 보장이라는 ‘일부’의 문제를 이유로 조항 자체를 폐지하는 것은 법체계를 흔들 수 있다는 우려도 존재한다.
파열음은 법리적·경제적 공방의 영역에 ‘정치적 주장’이 개입하면서 격화되고 있다. 야당이 이러한 여당의 주장을 이재명 대통령의 ‘배임죄 재판’과 연결 짓고 나서면서다. 주진우 국민의힘 의원은 이날 페이스북에 “배임죄 완화와 폐지는 엄연히 달라 범죄면책정부가 될 것”이라며 “배임죄가 폐지되면 수혜를 보는 사람은 속물 정치인과 기업 사냥꾼뿐”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배임죄 폐지의 최대 수혜자는 4,895억원 배임 혐의 재판 중인 이재명 대통령”이라며 “이 대통령 좋자고 현재 배임죄로 재판 중인 수천 명을 무죄 방면하는 꼴”이라고 지적했다.
민주당은 이러한 국민의힘의 주장이 ‘정치 공세’라고 받아쳤다. 김병기 민주당 원내대표는 이날 회의에서 “배임죄 폐지는 민생 경제 회복과 기업 활동 정상화를 위한 시대적 과제”라며 “정쟁의 수단이 아니라 국민과 기업을 위한 제도 개선인 것”이라고 했다. 허영 민주당 원내정책수석부대표도 “민주당이 배임죄 폐지를 추진하고 민사처벌을 강화하는 것은 형사, 민사의 이중처벌 부작용을 바로잡고 경제형벌을 합리화해서 더 나은 기업환경을 만들겠다는 의지”라고 했다.
대한상공회의소가 지난달 19일 발표한 ‘배임죄 제도 현황 및 개선방안 연구’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경우 배임죄에 대해 주요국보다 무거운 기준을 적용하고 있다. 미국과 영국의 경우 배임죄가 없는 대신 사기죄로 규율하거나 주로 손해배상 등 민사적 수단을 활용하고 있다. 독일·일본은 형법·상법에 배임죄를 규율하고 있으나 특별법을 통해 가중처벌을 하지 않고 있다. 이에 재계는 과도하고 오래된 처벌 기준을 현실화하는 등의 배임죄 개선이 필요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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