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혜인의 반걸음 육아 82] 보이지 않고 들리지 않는

마이데일리

[교사 김혜인] 자폐 아이 부모를 대상으로 한 교육 첫날, 강사는 이런 말을 했다.

“신체장애는 어떤 어려움이 있는지 잘 드러나지만, 자폐는 겉으로 멀쩡해 보여서 배려받지 못하는 경우가 많아요. 실은 우리 아이가 보이지 않고 들리지 않는 상태인지도 모르는데요.”

어떤 장애든 오해와 편견, 무지를 겪는다. 자폐 아동의 분노발작은 부모가 제대로 훈육하지 않아 생기는 심한 떼쓰기로 오인되기 십상이다.

병원에서 언어 치료가 있는 날이었다. 치료사가 제안한 아이스크림 놀이를 아이가 두 번 거절했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언젠가부터 아이스크림을 심히 거부한다. 아이가 선택한 놀이를 잠깐 한 뒤에 치료사가 다시 아이스크림 놀이를 제안했다. 아이가 참았다. 그러나 화를 간신히 참느라 장난감 조작이 잘 안 됐다. 그걸 도와주려 하자 감정이 폭발했다.

아이가 장난감을 던지고 바닥을 뒹굴었다. 치료사가 뒤로 물러났고 나는 차분히 기다렸다. 10분이 지나자 아이가 약간 누그러져서, 그러나 여전히 악쓰고 울면서 내게 안겼다.

아이를 안고 나오는데 무엇 때문인지 다시 심하게 발버둥 쳤다. 아이가 자라며 힘이 더욱 세진다. 나는 이미 목과 어깨, 손목과 허리 근육통을 겪는다. 아이를 내려놓을 수밖에 없었다.

아이는 알 수 없는 말로 악쓰며 괴성에 가깝게 노래를 불렀다. 바닥을 구르다가 병원 복도와 휴게 공간을 뛰어다니며 울부짖었다. 아이 양쪽 무릎이 점점 빨개지며 상처가 났다. 그렇게 아이는 깊은 혼돈에 갇혔다. 마치 아무것도 들리지도 보이지도 않는 듯이.

내게 종종 안아 달라는 몸짓을 하지만 안을 수 없을 정도로 발버둥 치는 건, 변덕이 아니라 자기를 어떻게 좀 해달라는 몸부림이리라. 도와주고 싶은데, 해줄 수 있는 게 거의 없다. 혼돈 속에서는 숨소리조차 고통스러운 자극이 된다.

보다 못한 듯, 한 할머니가 휴대폰에 영상을 틀어 아이에게 다가왔다. “얘야, 이거 봐라.” 아이가 휴대폰을 던져버릴 게 뻔했다. “죄송합니다. 저희 아이가 자폐예요.” 할머니가 멎쩍게 돌아섰다.

한 남자가 음료수를 뽑아서 아이에게 주려고 했다. “이거 주면 안 될까요?” 음료수를 막으며 말했다. “죄송합니다. 아이가 던질 거예요.”

도움이 되지 않는 도움의 손길을 거절하고, 교육받은 대로 아이가 머리를 벽이나 바닥에 심하게 부딪치지 않게 막았다. 이 혼돈 속에 아주 약간의 틈이 생기길, 그래서 아이에게 내 말이 들릴 수 있기를 가만히 기다렸다.

아이가 혼란스럽게 내지르는 괴성 중에 언뜻 “물 마시고 싶어요!”라는 말이 들렸다. 악쓰며 내는 쉰 소리지만 나만은 알아들었다.

가방에서 물통을 꺼내니 역시 던지려 했다. 아이가 좋아하는 정수기 앞으로 끌고 가다시피 데려갔다. 아이는 너무 화가 나서 힘을 제어할 수 없는 듯이 종이컵을 거칠게 뽑는 동시에 주먹을 꽉 쥐었다. 종이컵이 찌그러졌다. 그게 또 화가 났다. 다시, 또 다시. 애꿎은 종이컵만 계속 구겨져 나갔다. 내가 대신 담아서 먹이려 했다. 역시 아이는 너무 화가 나서 마시지 못했다. 발버둥에 물이 쏟아졌다.

휴게 공간 저쪽에서 한 여자가 소리질렀다. “아이 좀 어떻게 하세요! 여기 지금 사람들 쉬는 곳이잖아요! 네?!”

나야말로 제발, 아이를 달래고 싶다.

"죄송합니다!" 나는 허리를 90도 굽히며 사과했다. 그를 똑바로 쳐다보며 아주 크게 말했다. “저희 아이가 자폐라서 그래요! 저도 어떻게 하고 싶은데 할 수가 없습니다!” 아이 울음 소리가 시끄러워서 나도 크게 말해야 그에게 들릴 거라는 핑계로, 내 슬픔과 고통을 그를 향해 내질렀다.

아이가 드디어 발버둥을 그치고 울면서 내게 안겼을 때 시간을 확인하니 30분이 흘렀다. 물을 주니 그제야 심한 갈증을 해소하듯 벌컥벌컥 들이켰다.

아이가 분노발작하는 건 이제 이골이 난 일이다. 그러나 집으로 돌아가는 차 안에서 나는 숨죽여 울었다. 항의를 받은 게 원통해서, 아이가 자폐라고 소리친 게 치욕스러워서, 스스로가 불쌍해서.

아이가 창밖을 보며 혼자 숫자를 세기 시작했다. 하나, 둘, 셋, 넷…. 이어서 색깔을 말했다. 빨간색, 파란색, 노란색...

나는 자기 연민의 청승에서 빠져 나왔다. 입술을 굳게 다물며 생각했다. 이왕 눈물이 날 바에야, 목이 말라도 너무 화가 나서 물을 마시지 못하는 아이가 가엾어서 울어야겠다고. 더위가 누그러졌으니 이제 아이에게 무릎을 덮는 긴 바지를 입혀야겠다고.

|김혜인. 중견 교사이자 초보 엄마. 느린 아이와 느긋하게 살기로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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