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종의 ‘평양에선 지금’] 푸틴은 왜 김정은의 메시아가 될 수 없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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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종 한국국가전략연구원 북한연구센터장북한학 박사
이영종 한국국가전략연구원 북한연구센터장
북한학 박사

북러 밀착의 열기가 좀체 식지 않을 기세다. 중국 ‘전승절(중국인민 항일전쟁 및 세계 반파시스트 전쟁 승리 기념일)’ 80주년 행사가 열린 지난 9월 3일 베이징에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양자 정상회담을 한 건 그 강력한 징표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26개국 정상급 인사를 불러 야심찬 잔칫상을 펼쳤는데, 북한과 러시아가 거기에 좌판을 깔고 앉아 선수를 친 셈이다.

물론 북중러 정상은 텐안먼(天安門) 망루의 VIP 관람석에 나란히 자리했다. 시진핑 주석을 중심으로 ‘좌(左) 정은, 우(右) 푸틴’의 모양새를 연출했으니 반(反) 서방 연대감 과시로서는 이만한 자리가 없을법하다. 누가 뭐래도 이날 주인공은 호스트인 시진핑 주석인 게 자명했다.

하지만 김정은 위원장과 푸틴 대통령의 브로맨스는 ‘이보다 더 좋을 수 없는’ 북러 관계의 현주소를 여실히 보여줬다. 두 사람은 전승절 퍼레이드와 시진핑 주석이 마련한 오찬 행사가 끝나자 연회장을 박차고 나가 러시아판 롤스로이스로 불리는 푸틴 대통령의 방탄차량 아우르스에 함께 올랐다. 서로 형님 먼저 아우 먼저 하며 양보하다 나란히 차량 뒷좌석에 앉아 연신 웃음을 터트리며 환담했다.

댜오위타이(釣魚臺) 국빈관에서 열린 정상회담에서 김정은 위원장이 의기양양한 모습을 보인 건 어쩌면 당연하고, 예상 가능한 수순이었다. 푸틴 대통령은 회담 석상에서 우크라이나전에 대규모 병력과 무기를 지원해준 김정은 위원장에게 연신 감사의 뜻을 전했다. 이 자리에서만큼은 푸틴 대통령이 채무자이자 ‘을 중의 을’로 보였다. 

이에 화답하듯 김정은 위원장도 러시아에 대한 전적인 지원을 강조하면서 “그것을 형제적 의무로 간주하고 조러(북러) 국가 간 조약의 이행에 변함없이 충실할 것”이란 점을 역설했다. 북한군의 참전으로 북러 관계가 혈맹수준으로 끈끈해지고 있음을 확인케 하는 장면이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지난 3일 중국 베이징에서 정상회담을 했다. 김정은 위원장이 주머니에 한 손을 넣고 다른 손으로 푸틴 대통령의 어깨를 잡은 모습이 눈길을 끈다. /조선중앙통신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지난 3일 중국 베이징에서 정상회담을 했다. 김정은 위원장이 주머니에 한 손을 넣고 다른 손으로 푸틴 대통령의 어깨를 잡은 모습이 눈길을 끈다. /조선중앙통신

공식 배포된 회담 사진에는 김정은 위원장이 한 손을 주머니에 넣고 푸틴 대통령의 팔을 잡으며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이 드러난다. 사실 부자지간 정도의 나이차(푸틴 대통령은 73세, 김정은 위원장은 41세다)가 나는데다 정상회담이란 점에 비춰보면 어색하거나 결례에 가깝게 비쳐질 수 있지만, 푸틴 대통령은 이를 대수롭지 않게 넘기는 듯했다. 그만큼 북한에 진 빚이 크기 때문이란 얘기일 수 있다.

북한은 우크라이나를 불법 침공한 러시아를 지원한다며 엄청난 물량의 무기와 포탄을 지원했다. 152mm 포탄으로 환산하면 모두 1,200만발에 이른다는 게 우리 국방정보본부의 추산이다. 북부 자강도 지역의 지하 군수시설이 풀가동되고 있다는 얘기도 들린다.

푸틴 대통령 입장에서 더욱 고마운 대목은 대규모 전투병 파견이다. 김정은 위원장이 지난해 8월 참전을 결정한 뒤 10월 중순 1만1,000명의 북한군 병력을 보냈다는 게 국가정보원의 파악 내용이다. 드론 공세 등으로 고전하며 전사상자가 늘자 올 초 3,000명 수준의 병력을 추가 투입했다는 파악도 나왔다.

초기 고전을 면치 못했던 북한군은 점차 전투력을 발휘하면서 러시아에 보탬이 되는 전과를 거두고 있다. 러시아 서부 쿠르스크에 집중 투입된 특수작전군 중심의 북한 병력은 이곳을 탈환하는 데 결정적 기여를 한 것으로 알려졌다. 2차 대전 이후 처음으로 러시아 본토를 빼앗겼던 푸틴 대통령은 북한군의 지원에 힘입어 상처받은 자존심을 회복할 수 있었다.

그러나 손실도 컸다. 김정은 위원장의 베이징역 도착에 이목이 쏠려있던 지난 2일 오후 국정원은 국회 정보위 보고를 통해 북한군 전사자가 2,000여명에 이른다고 밝혔다. 앞서 4월 600명의 사망자를 포함해 4,700명의 전사상자가 발생한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고 밝힌 데서 전사자 숫자가 크게 늘어난 것이다.

1만4,000여명의 병력이 투입된 것으로 파악되는 가운데 2,000명이 전투 수행 중 숨졌다면 병사 7명 가운데 1명이 사망했다는 얘기가 된다. 낯선 땅에 투입돼 우크라이나군의 드론공세 등에 제대로 대처하거나 적응하기 어려웠을 것이란 점을 감안해도 궤멸 수준에 가까운 희생은 이해가 되지 않는 측면이 있다.

포로로 잡히는 걸 ‘배신’으로 간주하는 세뇌교육에 빠진 10대 후반~20대 초중반의 병사들은 집단 자폭이나 극단적 선택을 사실상 강요당했다. 상황이 이런데도 김정은 위원장은 지난 6월 푸틴 대통령의 특사가 방북하자 지뢰제거를 위한 공병 1,000명과 인프라 재건을 위한 2개 여단 규모 5,000명의 군 건설인력을 보내주겠다고 약속했다. 미국 CNN 등 외신은 김정은 위원장이 이와 별도로 3만명 규모의 추가 파병을 추진하고 있다는 보도를 내놓고 있기도 하다.

김정은 위원장은 러시아 파병이란 승부수를 통해 체제안보를 보장받고 군사·경제적 실리도 챙기겠다는 계산을 하고 있는 것으로 판단된다. 

2023년 9월 극동 보스토치니우주센터에서 열린 북러 정상회담 직후 북한이 수차례 실패해온 군사정찰위성 발사에 성공하자 푸틴 대통령의 기술지원 덕분이란 관측이 나왔다. 핵 잠수함 관련 기술지원이나 미그-29 등 4세대 전투기를 스텔스 기능의 첨단 5세대로 바꾸는 지원이 제공될 가능성도 점쳐진다. 용병 형태로 파견된 북한군 병사들의 참전수당(월 2,000달러 수준)이나 무기 제공 대가가 김정은 위원장의 호주머니로 흘러 들어갈 것이란 점은 북한 체제의 특성을 조금만 이해해도 알 수 있다.

다만, 뭔가 여의치 않은 분위기도 감지된다. 푸틴 대통령이 북한에 연신 감사의 뜻을 전하면서도 가시적인 반대급부가 지원되고 있는 정황은 드러나지 않는다. 식량과 원유, 생필품 등 물자가 흘러들어가고 외화가 내부로 유입돼 북한 경제에 온기가 도는 모습이 보여야 하지만 감감무소식이다.

이런저런 해석이 가능하겠지만 무엇보다 북러 간 교역을 비롯한 경제 펀더멘털이 취약하기 그지없다는 점을 꼽을 수 있다. 사실 북한과 러시아 사이의 경제교류는 의외로 미미한 수준이다. 북한 대외교역에서 러시아가 차지하는 비중은 1%가 되지 않는다. 중국은 80% 이상을 차지하고 코로나 사태 등 특정 시기에는 95%를 기록하기도 했다.

최근 북러 간 인적·물적 교류를 늘리기 위한 노력이 이어지고 있다지만 러시아 관광객의 방북 등은 속빈 강정에 가깝다. 올 들어 북한 관광을 위해 방북한 러시아 국민이 지난해 보다 60% 늘어났다고 선전했지만, 그 숫자가 2,615명에 불과하다는 건 북러가 당면한 고민을 보여준다.

관심은 우크라이나 전쟁이 마무리 된 이후에도 푸틴 대통령이 김정은 위원장에 대한 효용을 지속적으로 느낄 것이냐 하는 점이다. 전략적 측면에서 관계지속의 필요성이 어느 정도 있겠지만 절실함은 아무래도 예전 같지 않을 수 있다.

김정은 위원장이 북러 밀착 속에서 상대적으로 소원해진 것 아니냐는 지적을 받아온 북중 관계 복원을 위해 베이징을 찾고 시진핑 주석과 만난 것도 우크라이나전 종전 이후를 대비한 포석일 수 있다. 다급한 북한의 경제 문제를 풀어줄 든든한 후견국이란 점에서 중국의 지원이 절실할 것이란 얘기다.

한계에 봉착한 김정은 체제를 구원해줄 메시아나 동아줄이 되기에는 푸틴 대통령과 러시아 모두 역부족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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