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정숙 변호사의 친절한 ‘Law Talk’] 권리금 뺏어먹기의 숨겨진 진실

시사위크
엄정숙 법도 종합법률사무소 대표변호사
엄정숙 변호사·부동산 전문변호사·공인중개사

# 10년 넘게 매일 새벽 4시에 일어나 반죽을 치고 빵을 굽던 김씨는 결국 빈손으로 쫓겨났다. 강남구 한 상권에서 베이커리를 운영하며 권리금 1억5,000만원을 지급하고 매달 500만 원 월세를 내며 성실히 살아온 결과였다. 임대차 만료 3개월 전, 새로운 임차인을 구해 권리금 1억2,000만원에 가게를 넘기려 했지만 임대인이 신규 임차인에게 “내게도 3,000만원 주면 계약해주겠다”고 요구했다. 신규 임차인은 부담을 느끼고 발길을 돌렸고, 김씨의 10년 투자는 물거품이 됐다.

이런 일이 지금도 전국 상권에서 벌어지고 있다. 권리금은 단순한 돈이 아니다. 상권 분석부터 시설 투자, 고객 확보, 영업 노하우 축적에 이르기까지 임차인이 쌓아온 모든 것이 집약된 가치다. 그런데 일부 임대인들이 이를 가로채려는 시도가 갈수록 교묘해지고 있다.

상가건물임대차보호법 제10조의4는 바로 이런 불법 행위를 막기 위해 만들어졌다. 법은 임대인이 임대차 종료 6개월 전부터 임차인의 권리금 회수를 방해하면 안 된다고 명시한다. 구체적으로 신규 임차인에게 권리금을 요구하거나, 임차인의 권리금 수수를 방해하거나, 과도한 임대 조건을 제시해 계약을 무산시키는 행위 등을 금지한다.

그러나 현실은 여전히 녹록지 않다. 예를 들면, 홍대 앞에서 음식점을 운영하던 박씨는 권리금8,000만원에 가게를 넘기기로 신규 임차인과 합의했다. 그런데 임대인이 갑자기 “보증금을 2억에서 4억으로 올려야 한다”며 터무니없는 조건을 제시했다. 이는 사실상 계약 체결을 거부하는 것과 같았다. 결국 박씨는 소송을 제기해 2년 뒤 승소했지만, 그 사이 가게는 문을 닫았고 권리금은 이미 증발한 상태였다.

법원은 이런 경우를 명백한 권리금 회수 방해로 본다. 상가건물임대차보호법 제10조의4 제3항에 따르면, 임대인이 권리금 회수를 방해해 손해를 끼쳤을 때는 배상 책임을 진다. 손해액은 신규 임차인이 지급하기로 한 권리금과 임대차 종료 시점 권리금 중 낮은 금액을 한도로 한다.

더 악랄한 수법도 있다. 일부 임대인은 아예 “내가 선택한 사람과만 계약한다”며 임차인의 신규 임차인 주선권 자체를 무시하는 경우가 있다. 이때는 보통 임대인이 권리금을 챙기려는 속셈이다. 강서구에서 치킨집을 운영하던 최씨는 이런 식으로 권리금 6,000만원을 고스란히 빼앗겼다. 임대인이 “임대차 종료와 함께 폐업신고 해달라”고 요구했고, 나중에 알고 보니 임대인이 직접 선택한 새 임차인으로부터 권리금 명목으로 돈을 받았다.

문제는 이런 불법 행위의 입증이 쉽지 않다는 점이다. 권리금 거래는 대부분 현금으로 이뤄지고, 임대인의 방해 행위도 은밀하게 진행된다. 따라서 임차인은 처음부터 철저한 준비가 필요하다. 신규 임차인과의 권리금 협의 과정을 문자나 이메일로 기록하고, 임대인과의 대화 내용도 녹음하거나 문서로 남겨두는 것이 중요하다.

특히 임대인이 과도한 임대 조건을 제시하거나 부당한 요구를 했을 때는 즉시 증거를 확보해야 한다. 주변 상가의 임대료를 조사해 시세와의 차이를 입증하는 자료도 필요하다. 공인중개사를 통해 거래할 때는 모든 과정을 서면으로 남기도록 요청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권리금 분쟁은 소멸시효가 3년이므로 임대차 종료 후에도 충분히 대응할 수 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증거 확보가 어려워지므로 가능한 한 빨리 법적 대응에 나서는 것이 좋다. 무엇보다 권리금은 임차인이 정당하게 투자하고 쌓아온 재산이라는 인식이 사회 전반에 확산되어야 한다.

법이 있어도 지키지 않으면 무용지물이다. 권리금 갈취는 단순한 민사 분쟁이 아니라 소상공인의 생계를 위협하는 심각한 사회 문제다. 임차인들이 자신의 권리를 정확히 알고 당당하게 주장할 때, 비로소 공정한 상거래 질서가 자리잡을 수 있을 것이다. 10년 사업의 결실을 하루아침에 잃지 않으려면, 권리금 보호에 대한 법적 이해와 철저한 사전 준비가 그 어느 때보다 절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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