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준규의 ESG 인사이트 61] 내부 고객 관리의 혁신, 마케팅 관점으로 풀어보는 조직 문제

마이데일리

[ESG 경영컨설턴트 심준규] 최근 몇 달간 다양한 기업의 경영진과 만나며 흥미로운 패턴을 발견했다. 대부분 기업이 ESG( 경영, AI(인공지능) 도입, 디지털 혁신 등 트렌디한 키워드로 가득한 비전을 제시한다. 하지만 미팅이 깊어질수록 전혀 다른 모습의 현실이 드러난다.

한 중견 제조업체는 지속가능한 성장을 위한 ESG 경영 도입을 열정적으로 설명하면서도, 직원 이직률이 무려 30%에 달한다고 고민을 털어놓았다. 또 다른 IT 분야 기업은 최신 기술 도입과 혁신적인 업무 프로세스를 자랑했지만, 정작 직원들은 과도한 업무량과 불명확한 커리어 패스로 인해 지쳐있었다. 다수 기업이 추구하는 혁신 전략과 현실 사이의 간극은 생각보다 훨씬 컸다.

AI 도입을 외치면서도 정작 그것을 운영할 인재는 계속해서 떠나고 있고, ESG 경영을 표방하면서도 직원의 기본적인 웰빙은 뒷전이다. 가장 기본적인 조직 안정화조차 이루지 못한 상태에서 고차원적인 전략을 논하는 모습은 모래 위에 성을 쌓는 것과 다름없었다. 화려한 전략 뒤에 숨어있는 진짜 문제는 바로 사람이다.

거슬러 올라가 보면 조직 심리학에서는 이미 오래전부터 명확한 답을 제시해왔다. 1960년대 허즈버그(Frederick Herzberg)가 제시한 '동기-위생(Motivation-Hygiene Theory)' 이론에 따르면, 작업환경이나 회사 정책 같은 외재적 요인이 충족되지 않으면 아무리 좋은 성취감이나 인정 같은 내재적 동기 요인을 제공해도 직원 만족도는 높아지지 않는다. 60여 년이 지난 지금도 변하지 않는 조직 운영의 핵심 원리다.

여기서 위생(衛生)이란 건강에 유익하도록 조건을 갖추거나 대책을 세우는 일은 뜻한다. 당시 직장생활에서 위생 요인은 급여나 근무환경 정도였지만, 지금 시대에는 △워라밸 △공정한 평가 △투명한 소통 △심리적 안정감 같은 요소들이 바로 위생 요인이다. 기업들은 비전 제시나 성과 인센티브 같은 동기 요인은 화려하게 포장하면서도, 직원이 기본적으로 요구하는 위생 요인은 소홀히 하는 경우가 많다.

그렇다면 어떻게 접근해야 할까? 답은 마케팅 관점에서 찾을 수 있다. 기업이 외부 고객을 대할 때는 세심한 니즈 분석, 시장 세분화, 차별화 전략을 사용하면서, 내부 직원에게는 단편적인 접근을 하는 모순을 범하고 있다. 직원도 하나의 중요한 이해관계자로서, 그들 입장에서 회사가 제공하는 가치를 평가하고 경쟁사와 비교한다는 관점이 필요하다.

실제로 직원은 자신을 둘러싼 노동시장에서 끊임없이 선택하고 있다. 더 나은 조건의 회사가 나타나면 이직을 고려하고,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를 통해 다른 회사 근무 환경을 비교하며, 동료들과 정보를 공유한다. 마치 소비자가 제품을 선택하는 과정과 동일하다.

조직 문제를 해결책은 마케팅의 핵심 프레임워크를 통한 다섯 가지 관점에서 체계적으로 접근해 볼 수 있다. 각각의 관점은 기존 인사 관리 방식과는 다른 시각을 제공하며, 실제 기업 사례를 통해 그 효과를 확인할 수 있다.

첫째, 고객 니즈 파악의 관점에서 살펴보면 기업이 직원의 근본적인 욕구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 마케팅에서 고객이 제품을 구매하는 진짜 이유를 찾기 위해 사용하는 JTBD(Jobs-to-be-Done) 프레임워크, 즉 '고객이 해결하고자 하는 과업'을 조직 내부에 적용해 볼 필요가 있다. 직원도 회사에서 단순히 급여를 받기 위한 일 외에도 성장하고, 인정받고, 의미 있는 업무를 하고 싶어한다.

예를 들어 한 제조업체의 직원 인터뷰에서는 흥미로운 결과가 나왔다. 회사는 직원이 '안정적인 고용'을 가장 중시하리라 여겼지만, 실제로는 △내 아이디어가 실제 제품에 반영되는 경험 △동료들로부터 전문성을 인정받는 것 △새로운 기술을 배워 경력을 쌓는 것이 더 중요한 니즈로 드러났다. 결과적으로 회사가 제공하던 고용 안정성 강조보다는 혁신 프로젝트 참여 기회 확대가 더 효과적이었다.

둘째, 시장 세분화 관점에서 보면 직원 니즈도 세대별로 현저히 다르다. 베이비부머 세대는 안정적인 고용 유지에 집중하는 반면, 밀레니얼 세대는 일과 삶의 균형에, Z세대는 빠른 성장과 인정에 더 관심이 많다. 하나의 인사 정책으로는 여러 세대의 니즈를 동시에 만족시킬 수 없다는 점이 현재 상당수 기업이 직면한 딜레마다.

한 중견 IT기업은 코로나 이후 세대별 근무 방식을 차별화해서 좋은 결과를 얻었다. 20대 직원에게는 재택근무와 자율출퇴근제를 우선 적용하고, 30대에게는 육아휴직과 시차출근제를 확대했으며, 40대 이상에게는 전문가 과정 교육비 지원과 사내 멘토 역할 기회를 제공했다. 같은 복지 예산으로도 각 세대 만족도가 크게 향상됐다.

셋째, 제품 차별화 전략 관점에서 살펴보면 대부분 국내 기업은 여전히 획일적인 접근에 머물러 있다. 업계 최고 수준의 복지를 자랑하면서도 정작 직원이 진정으로 원하는 가치가 무엇인지는 정확히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 고객 니즈를 파악하지 않고 제품을 출시하는 실수를 조직 내부에서 반복하고 있는 셈이다.

정보화 시대에 업무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 도입되는 ISP(정보전략계획)가 대표적인 사례다. 많은 기업이 동일한 ERP(전사적 자원 관리) 시스템이나 협업 도구를 도입하면서 차별화 없는 디지털 환경을 만들고 있다. 하지만 직원들이 진정 원하는 것은 단순한 시스템 도입이 아니라 업무 효율성 향상과 창의적 사고를 돕는 맞춤형 디지털 환경이다.

넷째, 고객 관계 관리 관점에서 해결책을 찾을 수 있다. 마케팅에서 고객과 지속적인 소통과 관계 구축이 중요하듯이, 조직 내에서도 직원과 체계적인 관계 관리가 필요하다. 단순한 연례 평가나 만족도 조사를 넘어서 정기적인 일대일 면담, 실시간 피드백 시스템, 경력 개발 상담 등을 통해 지속적인 관계를 구축해야 한다.

한 금융회사는 매니저와 팀원 간의 월 1회 정기 면담 제도를 도입하면서 면담 내용을 체계화했다. 업무 성과 리뷰 외에도 개인적 고민, 경력 목표, 회사에 대한 건의사항 등을 정기적으로 논의하고, 회사 차원에서 이를 해결하기 위한 액션플랜을 수립했다. 결과적으로 직원들의 회사에 대한 신뢰도가 높아지고 이직률이 감소했다.

다섯째, 고객 여정 설계 관점에서 최근 주목받는 '직원 경험(Employee Experience)' 개념을 이해할 수 있다. 고객 여정(Customer Journey)을 분석하듯이 직원의 입사부터 퇴사까지 전 과정을 체계적으로 설계하고 관리하는 접근법이다. 각 단계에서 직원이 느끼는 감정과 경험을 깊이 있게 분석해 개선점을 도출한다.

갤럽의 2024년 글로벌 직장 현황 보고서에 따르면 우리나라 직장인의 몰입도는 13.4%로 전 세계 평균 23%보다 낮은 수준으로 나타났다. 몰입도가 높은 상위 25%에 속하는 직원은 하위 25%에 비해 생산성, 수익성, 고객평가 등급이 높고 이직률과 결근율이 낮으며 안전사고가 더 적게 발생한다고 발표했다. 몰입은 단순한 만족을 넘어서는 개념으로, 직원이 자신의 업무에서 의미를 찾고 성장을 경험할 때 발생한다.

결국 진정한 경영 혁신은 화려한 경영전략보다는 사람에서 시작된다. AI든 ESG든 디지털 혁신이든, 다수 전략은 결국 사람이 실행한다. 그 사람들이 불안정하고 불만족한 상태라면 어떤 훌륭한 전략도 성공하기 어렵다는 자명한 진리를 간과해서는 안 된다.

기업 경쟁력은 얼마나 좋은 기술을 보유했느냐가 아니라, 얼마나 우수한 인재를 오래 머물게 하고 몰입하게 할 수 있느냐에 달려있다. 외부 고객을 대하듯 내부 직원도 세심하게 분석하고 맞춤형 솔루션을 제공하는 기업이 지속가능한 성장을 이룰 수 있다.

|심준규. 더솔루션컴퍼니비 대표. <그린북>, <실천으로 완성하는 ESG 전략> 저자. 기업의 ESG 역량 강화 프로그램 개발과 ESG경영컨설팅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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