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혜인의 반걸음 육아 79] 어렵고 외로운 숙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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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사 김혜인] 나는 현관 앞에, 아이는 부엌에 있다.

아이가 날카롭게 찢어지는 목소리로 "안아주세요!" 한다. "네가 엄마한테 와. 안아줄게"라고 말했다. 아이가 다시 "엄마가 와! 엄마 오세요!!!" 하고 울부짖는다.

내가 두 팔을 가득 벌리며 "안아줄게, 이리 와" 하니 아이가 울면서 달려왔다. 그러나 안아주려는 순간, 아이는 휙 돌아서 아까 그 자리에 다시 섰다. "여기서 안아주세요!!!" 내 앞에 도돌이표라도 있는 듯이 이 과정을 끝없이 반복한다.

아이는 그저 안아주길 바라는 게 아니다. 엄마가 자기에게 와서 자기가 원하는 곳에서 안아달라고 요구한다. 아이 아빠, 할머니, 삼촌이 함께 있어도 내게만 그랬다.

이건 아이라면 으레 하는 떼쓰기일까? 보통의 순한 아이도 때로 이상한 트집을 잡거나 말도 안 되는 이유로 떼쓴다. 그럴 땐 이상한 요구에 반응하지 말고, 떼쓰는 방법으로 아무것도 얻지 못한다는 걸 경험하게 해야 한다.

그러나 평범한 떼쓰기가 아닐 수도 있다. 아이는 자폐 스펙트럼 장애가 있으니까. 휠체어에 탄 자가 계단 앞에서 멈춰 있듯이, 아이 뇌 신경회로가 어느 지점에서 가로막혀 있는지도 모른다.

아이가 달려왔다가 돌아가길 반복하는 걸 보면, 내게 걸어오는 행동 자체가 어려운 건 아니다. 나는 아이가 떼쓰는 중이라고 판단하고 현관에 앉아 아이를 기다렸다. 도전 행동에 반응하지 않고 아이를 향해 때때로 팔을 벌리며 네가 다가오면 얼마든지 안아주겠다는 마음을 전했다.

그러나 아이가 우는 시간이 길어지자 마음이 흔들렸다.

한 의사의 말이 떠오른다. “진단을 굳이 내리자면 불안장애예요. 정서가 안정되지 않아서 발달이 올라오지 않는 거예요.”

다른 이의 말도 들린다. "아이 짜증을 키웠네요. 매번 아이 요구를 다 들어줘서 그래요. 엄마가 처음엔 버티다가 마지막엔 결국 아이에게 졌을 거예요. 엄마가 주도권을 가져야죠."

아이가 급기야 손으로 바닥을 내리치고 제 머리카락을 쥐어뜯기 시작했다. 분노발작, 아니 멜트다운이다. 이제는 정말로 내가 할 수 있는 게 없다. 그 무엇도 아이를 자극하지 않도록 모든 말과 움직임을 멈췄다.

아이가 드디어 현관에 와서 신발을 신고 내게 안겼을 때 시계를 보니, 우리가 나가기로 한 지 1시간이 지나 있었다.

내가 일찌감치 아이가 원하는 대로 했다면 괜찮았을까? 바로 전날에도 아이는 내게 비슷한 요구를 했다. 나는 기꺼이 안아주었다. 그러나 그 결과도 분노발작이었다.

아이는 “엄마 오세요! 엄마! 엄마! 엄마! 엄마가!!” 하며 오직 나만 찾지만, 그럴 때 나는 한없이 외롭다. 마치 내게만 주어진 숙제 같아서다.

아이는 이제 꽤 자라서 더욱 복잡하고 어려워졌다. 안아서 토닥이는 것만으론 해결할 수 있는 게 거의 없다. 내게 뾰족한 수가 있는 것도 아닌데, 다른 이들은 더욱 아무것도 해주지 못한다.

아이는 오늘도 엄마와 자기 사이의 문제인 듯이 나만 지목했다. 너무 어렵고 외로운 숙제를 풀어 나간다. 답을 알 수 없지만 무엇이든 써내려 간다. 그러다 보면 얼결에 정답에 가까운 걸 낼 수도 있다. 아니라면 정성만큼은 갸륵하게 봐줄지도 모른다.

|김혜인. 중견 교사이자 초보 엄마. 느린 아이와 느긋하게 살기로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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