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대스트리트북스] 연민이라는 이름의 끌림

마이데일리

책 만드는 사람들은 출판업계를 ‘홍대 바닥’이라고도 말합니다. 이곳에 많은 출판사가 모여 있기 때문입니다. 문화 예술의 거리로 불리던 홍대의 옛 정취도 지금은 많이 사라졌지만, 여전히 의미 있는 책의 가치를 전하고 싶습니다. 홍대 바닥에서 활동 중인 여섯 명의 출판인이 돌아가며 매주 한 권씩 책을 소개합니다.

[번역가 조민영] 책 한 권을 다 읽고 서가에 꽂으러 갔다가, 무심코 옆에 놓인 나쓰메 소세키의 <마음>을 꺼내 들었다. 처음엔 그저 몇 페이지만 훑어볼 생각이었는데, 서가 앞에 선 채로 말 그대로 이 책에 마음을 빼앗겼다.

새로운 책을 읽을 때마다 도입부에서 한참 헤매는 나로서는 신기한 경험이었다. 도입부에 눈길을 사로잡는 극적인 사건이 있는 것도 아닌데, 도대체 무엇이 내 마음을 이렇게 사로잡았을까.

이 첫 만남의 끌림이 진짜였는지 확인하고 싶어, 다른 출판사의 번역본을 사서 재독을 시작했다. 첫 번째 읽기에서는 주인공 ‘나’의 담담한 서술을 좇아 ‘선생님’이라는 수수께끼 같은 인물을 따라갔다. 그다음 두 번째 읽기에서는 곳곳에 스며든 죽음의 전조가 마음 아프게 다가왔다.

결말을 알고 다시 읽으니 조급함은 사라지고, 첫 독서에서 지나친 선생님 말과 행동이 새로운 의미로 다가왔다. 왜 이 책 제목이 <마음>인지도 어렴풋이 알 수 있었다.

<마음>은 상편 ‘선생님과 나’, 중편 ‘부모님과 나’, 하편 ‘선생님과 유서’ 이렇게 세 부분으로 구성된다. 제목에 주요 인물이 거의 다 등장한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이야기는 어느 여름 바닷가에서 대학생인 나와 선생님의 우연한 만남으로 시작된다. 나는 배움이 깊지만 세상과 담을 쌓고 살아가는 이 남자에게 이끌리고, 그를 선생님이라 부르며 따른다.

하지만 가까이 다가갈수록 선생님은 스스로를 감춘다. 매달 조시가야 묘지에 꽃을 바치면서도 누구 무덤인지는 밝히지 않고, 아내와 금슬은 좋게 살면서도 “사랑은 죄악”이라는 말을 거듭한다. 나의 아버지가 병으로 쓰러졌을 때조차 재산 문제부터 정리하라고 조언하는 냉정한 모습을 보인다.

게다가 선생님은 세상과 인간을 혐오하는 지독한 염세주의자다. “나는 나 자신조차 믿지 않아. 말하자면 나 스스로를 믿지 못하니까 남도 믿을 수 없는 것이지. 나 자신을 저주할 수밖에 어쩔 도리가 없어.” 일본 제일 명문대를 나왔음에도 특별한 직업 없이 세상과 담을 쌓고 사는 그의 삶에는, 어떤 사정이 숨겨져 있는 것일까.

겉보기엔 따뜻하면서도 끝내 알 수 없는 사람. 선생님은 나에게 조금씩 마음을 열다가도, 결국 자신은 존경받을 자격이 없는 사람이라며 스스로 벽을 세운다. 나는 그 야속한 태도에 실망하면서도, 세상에 알려지지 않은 그의 학식과 사상이 아깝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소설은 나의 아버지 병세 악화와 죽음이라는 사건을 거치며 선생님의 죽음을 예고한다. 개인의 죽음은 메이지 천황의 서거라는 국가적 죽음과 겹쳐지며 작품 전체를 어둡게 물들인다.

마지막 하편, ‘선생님과 유서’에서 모든 수수께끼가 풀린다. 선생님이 나에게 보낸 긴 유서에는 그의 인생을 꺾어버린 두 번의 배신이 담겨 있다. 하나는 작은아버지가 재산 문제로 자신에게 저지른 배신, 다른 하나는 자신이 가장 친한 친구에게 저지른 배신이다. 이 두 경험은 선생님을 깊은 불신과 혐오 속에 가두었고, 세상과 자신을 등지게 만든 이유가 된다.

책을 다시 읽으며 처음에 보이지 않던 세밀한 부분이 도드라졌다. 특히 선생님의 지독한 염세주의와 자기 파괴적인 태도에서 오히려 연민을 느꼈다. 그가 짊어진 죄책감과 고독, 끝내 벗어나지 못한 자기혐오가 가슴 아프게 다가왔다. 아마도 그 연민이야말로 이 책이 나를 사로잡은 가장 큰 이유였을 것이다.

<마음>은 인간 내면의 모순과 복잡한 감정을 세밀하게 그려낸다. 이제 세상에 첫발을 내디디려는 나의 순수한 시선을 따라가다 보면, 끝내 알 수 없는 선생님의 마음속 깊은 상처와 고뇌가 드러난다.

이 책은 시대의 격변 속에서 개인이 마주하는 고독과 절망, 그 앞에서 우리가 얼마나 용기 있게, 혹은 비겁하게 살아가는지를 묻는다. 세월이 흘러도 이 책이 여전히 독자에게 강한 울림을 주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번역가 조민영. 세 아이가 잠든 밤 홀로 고요히 일하는 시간을 즐긴다. 월간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번역위원으로 참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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