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사위크|용산=이영실 기자 “후회하지 않을 영화, 자부심 느껴지는 작품, 훌륭한 명화를 감상할 기회.” 독보적인 작품 세계를 구축하며 전 세계 영화팬들을 사로잡아 온 박찬욱 감독이 신작 ‘어쩔수가없다’로 또 한 번 관객을 매료할 준비를 마쳤다.
19일 서울 용산구 CGV용산아이파크몰에서는 영화 ‘어쩔수가없다’ 제작보고회가 열렸다. 이날 행사에는 박찬욱 감독과 배우 이병헌·손예진·박희순·이성민·염혜란·차승원이 참석해 작품에 관한 다양한 이야기를 전했다.
‘어쩔수가없다’는 ‘다 이루었다’고 느낄 만큼 삶이 만족스러웠던 회사원 만수(이병헌 분)가 덜컥 해고된 후 아내와 두 자식을 지키기 위해, 어렵게 장만한 집을 지켜내기 위해, 재취업을 향한 자신만의 전쟁을 준비하며 벌어지는 이야기를 담는다.
박찬욱 감독이 ‘헤어질 결심’(2022) 이후 3년 만에 선보이는 신작으로 기대를 모은다. 평소 영화화에 대한 큰 열정을 드러냈던 소설 ‘THE AX(도끼)’를 원작으로, 감독 특유의 색깔을 더해 또 한 편의 독창적인 영화를 완성할 것으로 기대된다.
특히 ‘피에타’(2012) 이후 13년 만에 제82회 베니스국제영화제 경쟁 부문은 물론, 제50회 토론토국제영화제, 제63회 뉴욕영화제 등에 공식 초청되며 일찌감치 작품성을 인정받아 기대를 모은다. 올해로 30회를 맞은 부산국제영화제의 시작을 알리는 개막작으로도 선정돼 주목받고 있다.

탄탄한 캐스팅 라인업도 기대 포인트다. 박찬욱 감독과 영화 ‘공동경비구역 JSA’ ‘쓰리, 몬스터’를 함께한 이병헌을 필두로, 손예진·박희순·이성민·염혜란·차승원 등 내로라하는 충무로 대표 배우들이 출격해 빈틈없는 연기 앙상블을 완성한다.
박찬욱 감독은 이날 제작보고회에서 “미스터리 장르라고 하면 누가 범인인지 추리해 가는데 그런 수수께끼가 풀리고 나면 다 해소돼 버리는, 다시 음미하기 재밌지 않은 이야기가 많다”며 “이 작품의 원작은 처음부터 범죄를 저지르려고 하는 사람의 이야기로 시작해서 그를 따라가게 한다. 멀쩡했던 보통 사람이 사회 시스템 안에서 내몰리게 되는 과정을 묘사하기 때문에 몇 번을 곱씹어도 재미가 있었고 음미할 만한 가치가 있었다”고 원작 소설에 끌린 이유를 전했다.
이어 박찬욱 감독은 “아주 씁쓸한 비극인데 거기에 새로운 종류의 부조리한 유머를 넣을 만한 가능성이 보였다”며 “소설 자체도 그런 면을 갖고 있지만 이것을 내가 만든다면 더 슬프게 웃긴 유머가 살아날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고 연출 결심 계기를 밝혔다.
원작의 제목은 ‘도끼’다. 박찬욱 감독은 “책의 추천사를 쓸 때 ‘만약 이것을 한국 영화로 만든다면 제목은 모가지라고 바꾸겠다’고 했는데 ‘도끼’와 ‘모가지’ 두 제목 모두 해고라는 것을 의미하기보다 글자 그대로 잔인한 폭력행위, 신체 훼손을 연상시키기 때문에 제목을 바꿨다”고 설명했다.
영화의 제목 ‘어쩔수가없다’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면 좀 비겁한 정서가 담겨 있다. 나쁜 짓을 하면서도 합리화하는 그런 마음이 담겨 있어서 나쁘게 보면 정말 비겁한데 영화를 보며 인물을 들여다보면 연민을 느끼면서 ‘그래, 어쩔 수가 없었겠구나’ 하는 안타까운 마음이 들 수도 있을 거다”라고 이야기했다.
그러면서 “꼭 주인공만의 마음을 표현한 제목은 아니고 이 영화에 등장하는 많은 사람, 심지어 주인공을 해고하는 기업 중역의 입에서도 나온다”며 “사실 현대 사회, 자본주의사회에서 정리해고 구조조정 이런 이야기는 당하는 사람 입장에서도 슬픈 일인데 그걸 행하는 사람들도 늘 ‘어쩔 수가 없다’고 말을 하잖나. 다들 각자의 이유가 있다. 그것이 충돌해서 빚어내는 비극, 그것을 보여주고 싶었다”고 부연했다.

디테일이 살아있는, 독보적 프로덕션도 스토리의 밀도와 완성도를 높이는 요소다. 특히 각 인물의 공간을 저마다의 특색에 맞춰 정교하게 구현했는데 70~80년대 부유층을 중심으로 유행했던 ‘불란서 주택’ 양식에 노출 콘크리트 기반의 브루탈리즘을 결합해 디자인한 만수의 집은 만수의 다층적인 내면을 형상화한다. 또 만수가 분재를 가꾸며 시간을 보내는 온실과 가족의 행복한 시간이 깃든 마당 정원을 사실적으로 표현하기 위해 분재 및 조경 전문가의 자문을 받아 디테일하고 아름다운 미장센을 완성했다.
박찬욱 감독은 “하나의 캐릭터와도 같다고 생각하면서 집을 만들었다”며 “류성희 미술감독과 정말 많은 집을 보러 다녔다. 그중 하나를 선택했는데 우리가 찾아낸 집 그대로가 아니라 많이 덧붙이고 바꿨다. 실내는 완전히 다 새로 구현해서 찍었다. 뒷마당과 앞마당에 차이를 뒀고 나무와 꽃 하나하나 신중하게 선택했다. 세상에 없는 독특한 집을 만들었다”고 과정을 떠올렸다.
긴장감과 유머를 오가는 폭넓은 음악도 극의 감정선과 분위기를 더욱 풍부하게 만들 전망다. 특히 현대와 고전을 넘나드는 사운드를 구현하기 위해 런던 컨템포러리 오케스트라와 협업, 애비 로드 스튜디오에서 녹음해 완성도를 높였다. 여기에 깊이 있는 연주로 사랑받는 세계적인 첼리스트 장기엔 케라스(Jean-Guihen Queyras)가 연주한 곡 ‘르 바디나주(Le Badinage)’가 삽입, 진한 여운을 선사할 예정이다.
박찬욱 감독은 “모차르트부터 트로트까지 정말 많은 곡들이 영화 속에 등장한다. 그밖에 영화음악은 현대음악에 가깝다. 재즈 요소도 있고 내가 지금까지 만든 음악 중 가장 모던하다”며 “영화의 제작비를 아끼고 아껴서 런던 오케스트라와 녹음했다. 최상의 음질, 연주자들의 실력도 최상에 도달한 것 같다”고 자신했다. 또 “우리나라 가요가 많이 나온다”며 “조용필부터 김창완, 배따라기까지 들으면 참 재밌고 아름답다는 걸 느낄 거라고 확신한다”고 귀띔해 기대감을 높였다.

이병헌은 25년 동안 다닌 제지 회사에서 해고된 후 재취업을 위해 고군분투하는 만수로 분해 단단한 연기내공을 재입증할 전망이다. 손예진은 만수의 아내 미리 역을 맡아 남편의 갑작스러운 실직에도 가족을 위해 앞장서는 인물로 분해 새로운 얼굴을 보여줄 예정이다. 이병헌, 손예진의 첫 연기 호흡도 기대된다.
박찬욱 감독과 영화 ‘공동경비구역 JSA’ ‘쓰리, 몬스터’를 함께한 이병헌은 “어릴 때는 내 것을 하느라 벅차고 힘들어서 (박찬욱) 감독님의 차별화된 점을 딱히 설명할 수 없었는데 정말 오랜만에 감독님을 만나서 작업하니 저렇게까지 디테일하게 모든 것을 관할해야하는구나 느꼈다”고 다시 만난 박찬욱 감독의 현장을 떠올렸다.
이어 “여러 번 연출 제안을 받았는데 해볼 생각을 해보지 못했고 연기하는 게 더 좋고 그랬는데 이번 감독님과의 작업을 통해 그 생각이 더 확실해 졌다”며 “이렇게까지 거장이 되려면 이렇게 해야하는구나라는 걸 직접 옆에서 지켜보면서 나는 진짜 못할 일이라는 생각이 더 뚜렷해진 계기가 됐다”고 덧붙이며 작은 것 하나 허투루 하지 않은 박찬욱 감독을 향한 존경심을 표했다.
연기에 중점을 둔 부분도 전했다. 이병헌은 “평범한 인물들인데 굉장히 극단적인 상황을 맞이한다”며 “평범한 인물이 저렇게 극단적인 상황을 맞게 됐을 때 심리적 변화나 행동 변화를 어떻게 하면 설득력 있고 개연성 있게 다가갈 수 있을지 고민하며 작업했다. 극단적인 상황을 더 설득력 있게 표현하려고 늘 애썼다”고 이야기했다.
또 이병헌은 “‘깐느박’과 함께 작업하니까 안좋은 작품이 나올 수 없겠다는 생각을 처음부터 했다”며 “얼마 전 완성된 영화를 보면서 정말 좋다고 생각했다. 이 좋은 기분을 관객도 오랜만에 느낄 수 있으면 좋겠다”고 전하며 기대를 당부했다.
손예진은 이번이 박찬욱 감독과 첫 만남이다. 그는 “신인의 마음이었던 것 같다”며 “박찬욱 감독님과의 작업이 너무 궁금했다. 박찬욱 감독님과 작품을 해보고 싶다는 게 이 작품을 택한 가장 큰 이유”라고 했다. 또 “너무나 강렬한 이야기였고 이병헌 선배가 이미 캐스팅된 상황이었기 때문에 안하면 안 될 것 같다는 생각이 강했다”고 덧붙였다.
캐릭터에 대해서는 “미리는 따뜻하고 긍정적인 엄마인데 모성이 영화에서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기도 한다”며 “결혼 전에도 아이 엄마, 이혼녀 역할을 해봤다. 근데 출산을 직접 해보니 경험은 어떤 것과 비교할 수 없더라. 아이를 낳은 경험이 도움이 되지 않았을까 싶다. 몰입이 쉬웠고 연기도 자연스러웠다”고 회상했다. 그러면서 “극장에 와서 보면 후회하지 않을 영화가 나왔다”고 작품을 향한 자신감을 내비쳤다.

박희순과 이성민·염혜란·차승원도 함께한다. 박희순은 잘나가는 제지 회사의 반장 최선출 역을, 이성민은 제지 업계의 베테랑이었지만 지금은 만수와 같은 구직자 신세인 구범모 역을 맡았다. 염혜란은 구범모의 아내 아라, 차승원은 만수의 또 다른 경쟁자 고시조로 분해 빈틈없는 앙상블을 완성한다.
이들 역시 완성도 높은 작품의 탄생을 자신하며 기대를 당부했다. 박희순은 “많이 웃고 재밌게 영화를 봤다. 그러면서도 페이소스가 깊게 남는, 잔향이 남는 영화였다”고 했고 염혜란은 “얼마나 공들인 작품인지 자부심이 느껴졌다”고 이야기했다. 차승원도 “내가 찍었지만 남의 영화처럼 바라보게 되는 그런 영화라 기대가 많이 된다”고 보탰다.
이성민은 “박찬욱 감독님의 영화를 볼 때마다 그렇지만 보는 게 아니라 감상하는 게 이런 거구나 느낀다”며 “유럽의 유명한 미술관에 가서 몇시간 줄서서 그림을 보듯 우리 영화도 줄 서서 감상할 수 있는 좋은 영화가 될 거다. 훌륭한 명화를 감상할 기회가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박찬욱 감독은 “영화감독이 되고 싶고 영화를 만들고 싶다고 했을 때부터 항상 영화관이 기준이었다”며 “무심코 지나갈 법한 작은 소리, 작게 보이는 어떤 부분에도 시간을 들여 매만지는 작업들, 내가 선사하려고 한 노력들이 큰 스크린, 좋은 스피커, 폐쇄된 환경에서 다 전달될 수 있기 때문에 극장이 우선”이라며 극장 관람을 독려했다.
끝으로 흥행에 대한 기대감을 묻자 “항상 ‘천만’ 관객을 목표해서 만들어왔기 때문에 이번이라고 새삼 다를 건 없다”며 위트와 자신감 있는 대답을 내놔 기대를 더했다. ‘어쩔수가없다’는 오는 8월 27일부터 9월 6일까지 개최되는 베니스영화제에서 월드 프리미어로 공개된 뒤 9월 국내 극장에서 만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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