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프라임경제] 대한제국 황실의 일원으로 민족의 독립을 위해 헌신했던 의친왕(義親王) 이강의 숭고한 뜻을 기리는 승하 70주기 추모 행사가 지난 15일 홍유릉 일원에서 엄숙히 개최됐다. 이번 추모제는 황실 후손과 사가독서 후손, 독립운동 관계자, 학계 전문가, 시민들이 함께 모여 우리 민족사 속에서 의친왕이 지닌 역사적 의미를 재조명하는 자리였다.
의친왕은 대한제국 광무황제의 차남으로 태어나, 제국의 명운이 기울어가던 격변의 시기를 온몸으로 겪은 황족이다. 그는 단순히 황실의 일원으로 안주하지 않고, 일제 강점기의 억압 속에서 독립운동 단체와 인사들을 은밀히 지원하며 민족의 자주 독립을 위한 뜻을 이어갔다.
특히 사동궁은 당시 수많은 독립운동가들이 드나들던 장소로, 자금과 정보가 오가던 독립운동의 숨은 거점으로 알려져 있다.
이번 추모제에서는 의친왕의 업적과 행적이 다시 한 번 집중적으로 조명됐다. 대동단 사건을 비롯해 임시정부와 독립운동가들에 대한 재정적·인적 지원이 구체적으로 소개됐으며, 그의 삶이 단순한 황족으로서의 생애가 아니라 조국의 광복을 향한 투쟁의 일부였음을 강조하는 발언들이 이어졌다. 참석자들은 한목소리로 의친왕이 처했던 제약과 한계를 고려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당시 황실 인사들은 일제의 면밀한 감시와 억압 속에 자유로운 활동 자체가 어려웠으며, 공개적으로 독립운동에 나서기보다는 은밀히 지원하는 방식이 불가피했다는 점이 강조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각에서는 의친왕의 독립운동 행적을 축소하거나 부정하려는 시도가 있어왔고, 또 다른 한편에서는 역사적 맥락을 무시한 편협한 평가라고 지적도 상존한다. 독립운동이 반드시 무장 투쟁이나 해외 망명으로만 이뤄진 것이 아니라, 자금 지원·거점 제공·비밀 정보 전달 등 다양한 방식으로 전개되었다는 점을 고려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번 추모제에서도 이러한 논점이 다시 한 번 부각됐으며, 의친왕이 남긴 정신을 올바로 계승하는 것이 후대의 책무임이 강조됐다.
행사에 참석한 한 관계자는 "의친왕은 스스로의 신분과 위치 때문에 더욱 큰 제약을 받았지만, 그럼에도 독립의 뜻을 접지 않았다"며 "그분의 뜻을 단순히 드러난 행적으로만 평가해서는 안 된다. 은밀한 지원과 결의야말로 억압의 시대를 버틴 힘이었다"고 강조했다.
또 다른 참석자는 "오늘 우리가 누리는 자유는 보이지 않는 곳에서 헌신한 분들의 희생 위에 서 있다"며 "의친왕은 바로 그 '보이지 않는 독립운동'의 대표적인 인물로 기억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이번 추모 행사는 단순한 제례의 의미를 넘어, 우리 역사 속에서 간과되거나 왜곡되어 온 의친왕의 독립운동 사실을 바로잡고 재조명하는 계기가 되었다. 황실 후손들은 물론 학계와 시민사회가 함께 목소리를 모아 그의 업적을 기리고자 했다는 점에서 그 의미는 더욱 깊다.
광무황제가 선포했던 ‘대한’의 이름이 100년이 넘는 세월을 지나 오늘날 다시 빛나듯, 의친왕의 이름 역시 독립운동사의 한 장으로 뚜렷이 자리매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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