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데일리 = 이호빈 기자] 올해는 광복 80주년을 맞아 일제강점기 속에서도 기업 이윤보다 민족의 자립과 독립을 우선시한 유한양행과 동화약품의 발자취가 재조명받고 있다.
양사는 창업 초기부터 독립운동과 민족의 역량 강화, 국민 건강 증진을 사명으로 삼았고, 광복 이후에도 사회공헌과 산업 발전에 기여하며 창업정신을 이어오고 있다.

◇ 민족의 실력 양성과 독립전선에 선 유한양행
1895년 평양에서 태어난 유일한 박사는 1905년 불과 9세 나이로 미국 유학길에 올랐다. 그는 독립운동가 박용만이 설립한 한인소년병학교에서 오전에는 농장에서 학비를 벌고, 오후에는 학업과 군사훈련을 병행하며 민족의식과 자주독립 사상을 키웠다. 이 시기 경험은 훗날 그의 독립운동과 기업 경영철학의 뿌리가 됐다.
미시간대학교를 졸업한 뒤 라초이 식품회사를 창업해 귀국 자금을 마련한 유 박사는 1926년 유한양행을 설립했다. 그는 “건강한 국민만이 주권을 되찾을 수 있다”는 신념 아래 민족 실력 양성과 경제적 자립을 기업 존재 이유로 삼았다.
유일한 박사는 일제 치하에서 항일운동의 거점으로 삼기 위해 전략적으로 주요 도시에 해외 지사를 설립했다. 1930년대 후반부터는 미국에 체류하며 유럽·중국 시장 개척과 함께 본격적인 독립운동에 나섰다.
1942년 미국과 일본의 태평양전쟁이 발발하자 미육군전략처(OSS) 한국담당 고문으로 활약했다. 1945년엔 재미 한인을 특수공작요원으로 선발해 일본·한국에 침투시켜 적후방을 교란하는 비밀작전인 '냅코(NAPKO) 작전'에 참여했다.
1945년 8월 15일 광복 후 귀국한 유 박사는 유한양행을 재정비하고 ‘유한공고’를 설립, 주식 전량을 장학재단에 기부하는 등 사회환원에 앞장섰다. 1969년 경영 일선에서 물러나면서도 혈연이 아닌 전문경영인에게 경영권을 넘기고 국내 첫 ‘종업원 지주제’를 시행했다.
오늘날 유한양행은 2017년부터 대한약사회와 함께 ‘나라사랑 안티푸라민 나눔사업’을 통해 국가유공자 지원을 이어가고 있다. 기부는 8년 동안 국가유공자 총 6361명에게 전달됐다.
2022년부터는 사업 취지에 공감한 대한약사회 소속 약사들이 국가유공자 가정을 직접 방문해 복약지도 봉사활동에도 함께하고 있다. 올해는 국가유공자 어르신 1000명을 대상으로 안티푸라민 나눔상자 전달과 건강 상담을 지원할 예정이다.

◇ ‘생명을 살리는 물’ 활명수로 독립자금 지원한 동화약품
1897년, 궁중 선전관 민병호는 급체와 토사곽란으로 고통받는 백성을 위해 국내 첫 양약 '활명수'를 개발했다. 이듬해 아들 민강과 함께 동화약방(현 동화약품)을 세우며 활명수의 대중화를 시작했다.
이후 동화약방은 약을 넘어, 독립운동의 중심지로까지 확장된다. 1919년 3·1 운동 직후, 상하이 대한민국임시정부와 국내를 잇는 비밀연락망인 '서울연통부'를 동화약방에서 운영한 것이다. 이 때 동화약방 사장 민강은 국내외 연락과 정보 수집을 맡았고, 활명수 판매 수익으로 독립운동 자금을 조달해 임시정부에 전달했다.
당시 활명수 한 병 값은 50전. 설렁탕 두 그릇과 막걸리 한 말을 살 수 있는 금액으로, 독립운동가는 중국으로 이동할 때 활명수를 함께 가져가 현지에서 고가에 판매하며 자금을 마련했다.
민강 사장은 수차례 옥고를 치르고 고문 후유증에 시달리다 1931년 순국했다. 이후 독립운동으로 인한 외압으로 동화약방의 경영은 위기에 빠졌지만, 1937년 민족기업인 보당 윤창식이 회사를 인수하며 동화약품의 역사는 끊기지 않고 이어졌다. 현재 동화약품 창업지에는 서울시에 의해 1995년 건립된 '서울연통부 기념비'가 세워져 그 뜻을 기리고 있다.
광복 이후 동화약품은 활명수 브랜드를 국민 소화제로 발전시키며 국민 건강 증진과 사회적 책임을 병행하고 있다. '생명을 살리는 물'이라는 창업 정신은, 독립자금을 대던 시절의 의미를 넘어 지금도 국민과 함께하는 브랜드 가치로 이어지고 있다.
동화약품 관계자는 "동화약품은 창립 이후 '제약보국'의 정신을 지켜왔다"며 "초대 사장 민강의 독립운동 정신을 계승해 앞으로도 국민 건강과 사회적 책임을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유한양행과 동화약품의 역사는 광복이 단순히 정치적 해방이 아니라, 민족의 실력 양성과 경제적 자립, 그리고 국민 건강의 토대 위에서 완성됐음을 보여준다. 두 기업이 일제강점기 민족기업의 길을 걸으며 쌓아 올린 정신은 광복 80주년을 맞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살아 숨 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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