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광웅의 이혼이야기] 이혼소송에서 재산분할 포기각서와 위자료 지급각서, 효력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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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라임경제] "이혼할 때 위자료도 주고, 재산분할 포기 각서까지 받았는데… 왜 이제 와서 재산분할을 청구할 수 있는 겁니까?" 이혼 후 전 배우자로부터 재산분할 심판청구를 받은 사람들이 이혼전문 변호사인 필자에게 자주 하는 질문이다. 

많은 부부가 소송 부담을 피하고 협의이혼으로 마무리하기 위해 "그냥 3천만 원 줄 테니 끝내자"는 식으로 합의하며, '재산분할은 청구하지 않겠다'는 각서를 주고받고 서명까지 한다. 당시에는 모든 법적 관계가 정리됐다고 믿지만, 몇 년 뒤 재산분할심판 소장이 날아오면 당혹감과 분노가 밀려온다. "각서까지 썼는데 왜?"라는 하소연이 나오지만, 법정에서는 이런 각서를 '효력 없음'으로 보는 경우가 적지 않다.

사례를 하나 보자.
고양시 일산의 A씨는 협의이혼 당시 아내에게 위자료 3천만 원을 지급하고, 재산분할은 서로 청구하지 않겠다는 각서를 자필로 주고받았다. 계약서 형식으로 서명까지 했고, 문자로 "이걸로 모든 관계는 끝"이라는 말도 남겼다. 그러나 1년 10개월 뒤, 파주시 운정에 사는전 아내가 김포시 부동산, 퇴직금, 국민연금, 예금, 임대보증금 등 혼인 중 형성된 재산 전반에 대해 재산분할 심판을 청구했다. 과연 이 각서만으로 A씨는 재산분할 청구를 막을 수 있을까.

법적으로 재산분할은 민법 제839조의2에 따라 보장된 권리다. 이 조항은 단순한 금전 문제가 아니라, 이혼 후 생계 기반을 잃을 수 있는 배우자를 보호하는 장치로 기능한다. 따라서 가정법원은 단순히 "재산분할을 포기하겠다"는 문구만으로 이 권리를 쉽게 포기한 것으로 인정하지 않는다. 법원은 이혼 당시의 재산 형성 경위, 정보의 대칭성, 실제 기여도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재산분할의 정당성을 판단한다. 즉, 감정에 휩쓸려 쓴 문장 하나만으로 법적 권리를 포기했다고 보기 어렵다.

실무에서 자주 보이는 문구로는 "이로써 위자료 및 재산분할을 모두 정리한다" "향후 일체의 민·형사상 청구를 하지 않는다" "재산과 관련해 어떠한 이의도 제기하지 않는다" 등이 있다. 겉으로는 강력해 보이지만, 재산 내역과 금액이 구체적으로 명시되지 않으면 법원에서 인정되지 않는 경우가 많다. 특히 재산 정보가 불충분하거나 합의 당시 일방이 압박을 받았던 정황이 있으면, 재산 포기 의사의 신뢰성이 약화된다. 다만, 혼인 중 공동 형성된 재산이 거의 없거나, 지급된 금액이 전체 재산 대비 상당해 실질적 분할로 볼 수 있는 경우라면 재산분할 청구가 제한될 수 있다.

그렇다면 어떤 경우에 재산분할 포기각서가 효력을 인정받을 수 있을까. 첫째, 금액과 항목이 구체적으로 기재돼야 한다. 단순히 "3천만 원 지급"이라고 쓰는 것이 아니라, "아파트 매도대금, 예금, 연금 등을 포함해 재산분할로 지급함"과 같이 명시해야 한다. 둘째, 상호 협의가 공정하게 이루어졌음을 입증할 수 있어야 한다. 공정증서로 작성했거나, 조정조서를 통해 법원의 확인을 받은 경우라면 효력이 크게 높아진다. 셋째, 일방의 포기 선언이 아니라 쌍방의 재산권리를 전면적으로 정리한 합의서여야 한다. 이러한 기준을 충족하지 못하고, 이혼 직전에 급히 작성한 각서라면 향후 전 배우자의 재산분할 청구를 막기 어렵다. 가정법원은 해당 문서가 작성 당시의 상황, 정보 격차, 심리적 압박 등을 반영하지 못했다고 판단하면 무효로 간주할 수 있다.

사례와 같은 경우 가정법원은 각서의 존재 자체보다, 혼인 중 재산이 어떻게 형성되었는지와 상대방의 기여도를 중심으로 판단한다. A씨 사건에서도 법원은 각서에 명시된 금액이 전체 재산 규모에 비해 충분한 재산분할에 해당하는지, 작성 당시 전 아내가 모든 재산 내역을 알고 있었는지, 합의 과정이 자발적이고 공정했는지를 면밀히 검토해, 그 결과, 3천만 원이 전체 재산에 비해 턱없이 적고, 전 아내가 일부 재산 내역을 알지 못한 상태에서 각서가 작성된 점이 인정된다면 재산분할 청구를 기각할 수 없다는 결론이 내려질 수 있다. 

이혼을 깔끔하게 끝내고 싶은 마음은 누구나 같다. 그러나 '깔끔함'은 감정이 아니라 법적으로 유효한 문서가 뒷받침될 때만 가능하다. 자필 각서 한 장이면 모든 게 해결될 거라는 믿음은 착각에 불과하다. 

"이걸로 끝"이라고 말하는 순간, 정말 끝을 보려면 구체적인 합의서와 절차, 그리고 필요하다면 공정증서나 법원의 확인까지 갖춰야 한다. 종이 한 장에 안도하는 순간, 그보다 훨씬 두꺼운 판결문이 우편함에 꽂힐 수 있다. 사랑은 추억 속에 묻을 수 있지만, 재산은 구체적인 재산분할합의서로 나눠야 한다. 마음은 내려놓더라도, 권리까지 내려놓는 실수는 하지 말자. 

김광웅 변호사(이혼전문) / 제47회 사법시험 합격 / 사법연수원 제37기 수료/ 세무사 / 변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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