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M터뷰] "모든 사람은 저마다의 속도 있어"

맘스커리어
▲ 류승연 작가[사진=본인]

 

[맘스커리어 = 김혜원 엄마기자] 정치부 기자에서 전업맘, 그리고 다시 작가로. 류승연 작가의 삶은 전환의 연속이었다. 대치동 키즈로 자란 그녀는 치열한 입시와 사회생활을 뚫고 정치부 기자로 성장했고, 50대에는 부장 기자가 되어 있을 거라 믿었다. 하나 7개월 만에 태어난 쌍둥이 중 아들이 발달장애 진단을 받으며, 삶의 방향은 완전히 달라졌다. 비장애 딸과 장애 아들을 키우는 과정에서 그녀는 “장애는 극복할 대상이 아닌, 함께 살아가는 하나의 상태일 뿐”이라는 깊은 깨달음을 얻게 된다.

 

이후 그 이야기를 세상과 나누고자 글을 쓰기 시작했고, <사양합니다, 동네 바보 형이라는 말> <아들이 사는 세계>는 많은 독자의 공감을 얻었다. <사양합니다, 동네 바보 형이라는 말>은 영화 ‘그녀에게’로 제작돼 관객의 사랑을 받았다. 오늘도 류 작가는 엄마이자 작가로 두 아이와 하루를 보낸다. 아이들과 함께하는 하루가 누군가에겐 세상의 벽을 허무는 시작이 될 것이라는 믿음을 지닌 채.

- 기자에서 전업맘, 그리고 다시 작가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인생의 큰 전환점 가운데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은 언제였습니까?

인생의 가장 큰 전환점을 꼽으라면, 10년 전 어느 날 여동생에게서 전화를 받았던 순간입니다. 당시 제 아들은 통합교육 과정에서 큰 어려움을 겪고 있었고, 저 역시 매일 분노하거나 절망에 빠져 인생의 나락에 있는 상태였습니다. 그날, 여동생이 전화기 너머로 이렇게 말했습니다.


“언니, 그렇게 매사에 최선을 다해 살지 않아도 돼.”
 

그 말을 듣고 나니, 저는 아들이 생후 13개월에 재활치료를 시작한 이후부터 어떻게든 쌍둥이 누나의 발달을 따라잡게 하려고 늘 긴장하고, 힘을 주며 세상을 살아왔다는 사실을 뒤늦게 깨달았습니다. 저조차도 그런 제 모습을 미처 알아차리지 못하고 있었던 겁니다.


“매사에 최선을 다해 살지 않아도 된다”는 말은 제게 커다란 충격이었습니다.

그런 깨달음이 몰려오며, 저는 그때 처음으로 어깨의 힘을 뺐습니다. 그 순간, 참았던 오열이 터져 나왔습니다. 저는 그때를 ‘각성의 순간’이라고 표현합니다. 그만큼 제게는 깊고, 거대한 의미를 가진 시간이었습니다.

 

▲ <사양합니다, 동네 바보 형이라는 말> 

 

▲ <아들이 사는 세계> 

 

- <사양합니다, 동네 바보 형이라는 말>과 <아들이 사는 세계>를 집필했습니다. 한 인터뷰에서 “아들이 성인이 된 이후의 이야기를 쓰면 완성이다”라고 했는데 책을 통해 세상과 나눈 메시지는 무엇입니까?


아들의 엄마가 되기 전, 저는 신문사 기자였습니다. 일을 그만둔 지 꽤 오래됐지만, 얼마 전 저는 여전히 기자의 사명감으로 살고 있다는 사실을 새삼 깨달았습니다. 다만 달라진 것이 있다면, 이제 저의 취재 대상이 아들의 장애(발달장애)와 장애계(특수교육계, 사회복지계 등)로 바뀌었다는 점뿐이었죠.

 

<사양합니다, 동네 바보 형이라는 말>이 과거의 저처럼 발달장애가 낯선 이들을 위해, 발달장애인과 그 가족의 삶을 알리고자 쓴 ‘입문용’ 책이었다면, <아들이 사는 세계>는 성인 발달장애인의 삶을 들여다보고, 그에 앞서 학령기인 아들이 성인기를 준비하려면 무엇이 필요한지를 고민하고, 취재해 간 과정을 담은 책입니다. 아들이 현재 고등학생이다 보니 그의 삶의 중심은 학교이고, 그래서 이 책에서는 특수교육에 관한 내용이 많은 비중을 차지하게 됐습니다.


2년 반 뒤 아들이 학교를 졸업하면, 그때부터는 사회복지계의 품에 안기게 됩니다. 일을 그만뒀으나 여전히 기자의 시선과 사명감으로 살아가는 제가 아들을 주제로 한 책을 한 권 더 쓴다면 자연스럽게 사회복지에 관한 이야기가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사양합니다, 동네 바보 형이라는 말>에서 출발해 <아들이 사는 세계>를 거쳐, 언젠가 사회복지를 다룬 책이 나오게 된다면 어떨까요. 사람들은 이 세 권의 책을 통해, 그 안에서 제 아들이, 발달장애가 있는 한 개인이 성장해 가는 모습을 따라가게 될 것입니다. 허구의 이야기가 아니라, 실존하며 현실을 살아가는 한 사람의 삶을 통해, 독자들은 아들과 같은 발달장애인을 어떻게 이해하고 함께 살아갈 수 있을지를 각자의 방식으로 고민하게 되리라 생각합니다.

- 기자로서의 경험이 글쓰기나 엄마로서의 활동에 어떤 영향을 주었는지 궁금합니다.

글쓰기 측면에서는 사실 많은 도움을 받았습니다. 따로 글쓰기를 배우거나 연습하지 않았지만, 저는 그냥 제 생각을 솔직하게 써 내려가면 됐거든요.


엄마로서는 아마도 ‘추진력’ 면에서 기자 경험이 도움이 되지 않았나 싶습니다. 기자라는 직업이 원래 그렇잖아요. 매일 기사를 취재하는 과정은 말 그대로 맨땅에 헤딩하는 일이니까요. 저는 그런 일에 크게 거리낌이 없었달까요. 하고자 하는 일이 있으면 될 때까지 밀어붙이는 것, 행동으로 증명하는 것, 그런 측면이 기자 경력의 도움을 받았다고 생각합니다.

- 발달장애 아들을 키우며 ‘세상의 벽’을 언제 가장 실감했습니까? 그 경험은 작가님께 어떤 의미로 남아 있습니까?

언제 가장 실감했는지 딱 꼽기기보단, 아들과 함께하는 삶에서 크고 작은 ‘벽’의 존재를 수시로 느끼며 살아갑니다. 비장애인 딸에겐 없는 벽이 아들에겐 있고, 저와 남편에겐 없던 벽이 아들에겐 존재한다는 것을 느끼죠. 그런 벽을 마주할 때마다 때론 분노하고 때론 절망하지만 바로 그렇기에 오히려 더 열심히 두 주먹을 불끈 쥐고 이 삶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 벽에 금이라도 가게 하기 위해서요.

차라리 제게 있는 벽이었다면 그냥 포기하거나 받아들이고 살았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자식에게 있는 벽은 그럴 수가 없더라고요. 더더군다나 언젠가 아들을 남겨두고 먼저 가야 하는 부모 입장에서, 살아 있는 동안에라도 아들을 둘러싼 견고한 벽을 최대한 말랑하게 만들어보자는 생각으로 살고 있습니다.

 

▲ 동환이와 함께[사진=본인]

 

- ‘장애는 하나의 상태일 뿐’이라고 받아들이게 됐다고 했습니다. 이 인식의 전환은 어떤 계기로 가능했나요? 그 변화는 가족에게 어떤 영향을 주었는지도 궁금합니다.

드라마틱한 사건을 계기로 인식이 급변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제 인식의 전환은 여러 일을 종합적으로 겪으며 서서히 이뤄진 것이었습니다. 다만 그렇게 인식의 전환이 확연히 이뤄진 후에는 이전과 다른 것들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이제 저희 가족에게 아들은 그냥 사람입니다. 딸과 다를 바 없는 그저 사람. 단지 장애가 있을 뿐입니다. 이전까진 장애인도 똑같은 사람으로 보아달라고 호소했지만 저부터도 제 아들을 사람이기에 앞서 장애인으로 보고 있었더라고요.


아들을 발달장애인으로 먼저 보느냐, 아니면 나와 똑같은 사람으로 먼저 보느냐는 정말 다른 출발점입니다. 후자의 시각을 갖게 되면 발달장애에 대해 갖고 있던 수많은 고정관념과 편견, 확증편향이 깨지는 경험을 하게 될 거예요. 모두가 그 즐거운 경험을 하게 되는 날이 오길 바랍니다.  

 

▲ 가족사진[사진=본인]

 

 

- 수인이가 “차라리 나도 장애인으로 태어났으면 좋았을걸”이라고 말했을 때, 어떤 감정이 드셨나요?

아이들이 초등학교 1학년 때 했던 말이었는데요. 그 당시엔 딸의 그 말을 듣자마자 분노가 치솟아 마구 소리를 질렀습니다. “너까지 그러면 엄마는 못 살아! 안 살아!”라고요. 그때 저는 어깨에 잔뜩 힘을 준 채 ‘장애도’라는 세계 안에서 아들의 장애에 온 삶이 매몰돼 살아가고 있었거든요. 지금 생각해 보면 당시의 저는 딸에게 참 못난 엄마였던 거죠.


지금은 딸하고 이때 이야기도 자연스럽게 나눕니다. “어때? 요즘도 차라리 장애인으로 태어났으면 좋았겠다고 생각해?”라고 물어보면 딸이 큭큭 웃으며 말해요. “동환이가 수능 공부 안 하는 건 여전히 부러워”

 

▲ 가족과 함께[사진=본인]

 

- 이후 수인이에게 더 많은 시간과 애정을 쏟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하셨습니까?

엄청 많은 노력이요. 그래야 했어요. 집에서 아들은 24시간 손길이 필요한 아이였기에 딸에게 관심과 애정을 표현하기 위해선 의도적으로 아들에게 향하던 손길을 거두고 딸에게 시선을 머무는 엄청난 노력이 필요했어요.


그래도 했습니다. 정말 감사했던 건 저는 비장애인 자녀를 잘 양육하는 것도 정말 중요한 일이라는 걸 아이들이 어릴 때 알 수 있었던 점이에요. 당시 ‘나도 차라리 장애인으로 태어났으면 좋았을걸’이라는 제목으로 칼럼을 썼다가 욕 메일을 정말 많이 받았어요. 전국의 비장애 형제자매들이 저에게 딸을 그렇게 키우지 말라고 말 그대로 욕을 많이 해주셨는데요. 그 메일들을 읽으며 이미 어른이 된 비장애 형제자매들이 성인이 되어서까지도 부모에 대한 원망과 한을 지닌 모습을 보게 된 것입니다. ‘아, 내가 아들에게만 집중하며 살았다간 딸의 마음속에 어른이 되어서도 씻을 수 없는 상처를 남기게 되겠구나’라는 것을 깨닫게 됐던 거죠.


그래서 딸을 위해 정말 노력을 했습니다. 더 많은 관심과 애정은 말할 것도 없고요. 아들과 분리된 딸만의 사회, 그 안에서의 세계를 딸이 독자적으로 꾸려갈 수 있도록 신경도 많이 썼습니다.


아무리 부모가 잘해주어도 딸이 비장애 형제자매로서 받는 스트레스는 분명히 있을 것이기에 그런 부분에서 쌓아두지 않고 풀고 갈 수 있도록 학교의 위클래스 상담을 알차게 활용했어요.

더불어 여행 모임에서 만난 비장애 형제자매들끼리 어울리며 학교 친구들과는 또 다른, 비장애 형제자매라서 서로 이해할 수 있는 정서적 유대도 나눌 수 있도록 지원했습니다.


덕분인지 지금 딸은 적어도 비장애 형제자매로서는 아주 건강하게 잘 자라고 있습니다. 동생이 집에 있어도 거리낌 없이 친구들을 데리고 오고, 동생의 장애를 밝히는 데 있어서도 주저함이 없고, 동생의 특수학교에도 기회가 있을 때마다 함께 갑니다. 동생을 가장 많이 혼내기도 하지만 가장 많이 사랑하기도 하고요.

- 수인이와 단둘이 보내는 시간이나 둘만의 약속이 있다면 소개해 주세요.

약속 중에서 조금 특별한 것이 있다면, 딸이 20살이 되면 제 첫사랑 얘기를 들려주기로 했어요. 왜 지금부터 말하지 않느냐면 그땐 19금에 관한 대화도 심도 있게 나눌 예정이라 딸이 대학교 1학년이 되었을 때 둘이 데이트하며 엄마의 20대 사랑과 이별에 관해 이야기하려고요. 그때가 저도 기대됩니다. 나쁜 남자 만나지 말아야 할 이유 등 해줄 이야기가 정말 산더미거든요.

 

▲ 물이 즐거운 동환이[사진=본인]

 

- '기다려주는 눈빛 하나면 충분하다'고 하셨습니다. 작가님이 바라는 이웃과 사회의 태도는 어떤 것인가요?

기다려준다는 건, 단순히 시간상으로 기다린다는 것만을 뜻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 사람의 속도를 존중한다는 것과 같다고 생각해요. 발달장애가 있는 아들과 함께 살아가면서 비로소 알게 된 게 있다면 사람은 누구나 저마다의 속도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너무나 당연한 말인데 ‘아들의 엄마’가 되기 전까지 저는 이 말이 무슨 의미인지 모르고 살았던 것 같아요.


‘나’의 기준에서 타인이 나와 같기를 바라는 건 또 다른 형태의 폭력이라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과거의 저는, 그것이 폭력이라는 생각을 하지 못했고 오히려 능력이라고 생각하며 제 속도에 미치지 못하는 사람들을 낮춰 보곤 했죠.


그런 제가 아들을 키우면서 이제야 깨달았습니다. 모든 사람은 저마다의 속도가 있다는 것을. 그리고 그 속도를 존중하는 건 그 사람의 존재 자체를 존중하는 일이라는 것을요. 제가 이 사회에 바라는 것이 있다면 제가 알게 된 이 ‘진실’을, 직접 경험해보고 나서야 알게 되는 게 아니라 마치 ‘1+1=2’처럼 자연스럽게 모두가 알고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 장애를 ‘극복할 대상’이 아닌 ‘함께 살아가는 상태’로 보자고 강조하셨습니다. 이를 위해 부모, 특히 엄마들이 할 수 있는 작은 실천은 무엇이 있을까요?

‘장애’가 자연스러운 특성 중 하나, 단지 하나의 상태로 여겨지게 되면 그땐 장애가 있는 사람도 나와 같은 사람이라는 인식이 당연해질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장애가 ‘먼 나라 남의 일’처럼 느껴질 때, 장애인도 나와는 다른 존재가 되고 그러다 보면 ‘우리’라는 이너서클 안에서 장애인은 배제되게 됩니다.

장애가 누구에게나 삶의 한순간 다가올 수 있는 자연스러운 상태로 받아들여진다면 그땐 장애인과 장애인을 위한 여러 일이 내 일처럼 여겨지고 그렇게 행동할 수 있을 거예요. 부모들이, 특히 엄마들이 할 수 있는 실천이요? 주변에 장애인이 있거나 장애인을 가족구성원으로 둔 가정을 만나게 된다면, 그들을 ‘나와는 다른 존재’가 아닌 ‘어쩌면 내 일이었을지도 모르는 일’로 받아들여 주세요.


‘장애인’을 나도 그럴 수 있었던 사람으로 바라보고, ‘장애’ 역시 언젠가는 내 일이 되거나 내가 사랑하는 사람의 일이 될 수도 있는 것으로 바라보면 그때부턴 내가 사는 지역에 특수학교가 들어선다 해서 반대하는 일은 사라지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 장애에 대한 사회 인식 중 가장 시급히 바뀌어야 할 점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아, 이건 정말 명확합니다. 가장 시급히 바뀌어야 할 건 예산 편성입니다. 장애인을 위한 정책이 전무한 게 아니거든요. 법적으로는 교육, 복지 등 전 영역에 걸쳐 근거가 되는 법은 이미 만들어져 있어요. 그런데도 그 법이 잘 시행되지 않는 이유는 그 법을 시행할 예산이 충분히 뒷받침되지 않기 때문이에요.


예를 들어보면 이런 상황인 건데요. 고등학생 딸이 시험 끝나고 친구들과 모처럼 하루 놀다 오겠다 했을 때 엄마가 용돈으로 5천 원을 주면서 “그래, 그동안 수고했으니 오늘 친구들하고 잘 보내고 와”라고 하면 어떨까요. 밥 먹고, 영화 보고, 카페도 갔다가 친구들과 스티커 사진도 찍어야 하는데 과연 딸은 그 모든 일을 할 수 있을까요?


장애 예산이 딱 그렇더라고요. 가장 시급히 바뀌어야 할 건 자명합니다. 쓸데없이 멀쩡한 보도블럭 교체하는 데 세금을 사용하기보다는 정말 절실하고 필요한 장애 관련 복지와 교육에 예산을 충분히 확보해 주었으면 좋겠습니다.

- 수인이와 동환이가 어른이 되었을 때, 작가님이 바라는 가족의 모습은 어떤가요?

다른 부모들이 바라는 것과 같은 가족의 모습이요. 장애인 가족이라고 해서 특별한 무엇을 바라는 게 아니라 보통의 부모가 생각하는 미래 모습을 그렸을 때 떠오르는 풍경을 저도 바라고 원합니다.


저희 가족이 아들의 장애로 인해 남들과는 다른 특별한 삶을 사는 게 아니라 보통의 기족들처럼 평범한 삶을 살아갈 수 있다면 그게 가장 바람직하고 행복한 모습일 거라고 생각해요. 그럴 수 있는 사회이길 바라봅니다.

- 발달장애 자녀를 둔 부모로서 ‘내가 먼저 떠났을 때’를 대비해 지금 가장 중점적으로 준비하고 있는 부분은 무엇인가요?

아들의 사회성 부분입니다. 저는 아들이 사람들과 잘 어울려 살 줄 아는 청년으로 자랄 수 있도록 많은 정성을 쏟고 있어요. 제가 없는 세상에서 아들은 여러 사람의 지원을 받으며 살아야 해요. 주변의 사람과 관계를 잘 맺고 살아가는 게 성인기 삶에서 아주 중요한 요소더라고요. 하지만 아들은 발달장애인이라는 이유로, 비장애인보다 사회성을 기를 기회가 자주 박탈되고 있어요. 발달장애가 있기에, 더 많은 반복경험을 통해 배워야만 체득할 수 있어 더 많은 기회가 필요한데도 말이에요. 그래서 사회성 부분을 많이 고민하며 다양한 시도를 해보고 있습니다.

그다음으로는 아들의 ‘활동’과 ‘참여’의 범위를 늘리는 데 중점을 두고 있어요. 아들의 성인기 삶을 건강하게 이끄는 동력은 활동과 참여인데, 지금 아들은 교육 제도의 어쩔 수 없는 부분으로 인해 바로 그 활동과 참여에서 배제되고 있는 현실이라서요.


저는 오래전부터 제가 없는 미래, 아들의 성인기 삶에 대한 고민을 이어오며, ‘나는 잘 죽고 아들은 잘 살릴 수 있을까’를 생각했어요. 그 고민으로부터 시작, 취재를 통해 나름의 해답을 찾기 위해 고군분투한 여정을 담은 책이 바로 작년에 출간한 <아들이 사는 세계>입니다.

- 같은 고민이 있는 부모에게 가장 먼저 건네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면 무엇일까요?

힘들다는 것 잘 알고 있습니다. 저도 힘드니까요. 하지만 우리가 아니면 알지 못하는 ‘기쁨’ 또한 누리며 살고 있다는 것도 잘 알고 있어요. 저도 그 기쁨을 매일 소소하게 느끼며 살아가니까요. 이번 생에 우리는 ‘발달장애인의 부모’가 되었습니다. 비장애인의 부모였으면 매 순간 ‘내 사후’를 고민하지 않고 조금 더 맘 편히 살 수 있었을지도 모르지만 이미 되어버린 걸 어쩌겠습니까.


이번 생에 부여된 내 역할이 ‘발달장애인의 부모’라면 그 부분은 어쩔 수 없지만 그다음 어떤 태도로 삶을 살아갈 것인지는 각자가 선택할 수 있는 여지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자식의 장애에 잠식당해 가족의 삶마저도 장애물에 가로막히도록 할 것인지 아니면 ‘그럼에도 불구하고’ 행복하게 살아가려 애쓸 것인지. 함께 갔으면 좋겠어요. 행복하게 살아보려 애쓰는 쪽으로요. 방향을 정해놓고 걷는 것과 방향성 없이 걷는 건 목적지가 다르니까요.

 

맘스커리어 / 김혜원 엄마기자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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