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 축구가 일본 축구에 내리 세 번을 지고도 국가대표 감독이나 축구협회 등이 부끄러워하거나 반성하는 빛이 별로 보이지 않는다.
파울로 벤투호의 연속 3대0, 홍명보호의 1대0. 옛날 역사를 되살리며 일본에만큼은 져서는 안 된다는 것이 아니다. 일본이 아니라 어떤 나라에도 그렇게 패배해서는 안 되는 것. 브라질, 스페인이라 할지라도 한 골도 못 넣고 세 번이나 계속 졌다면 냉정하게 반성하고 대책을 세워야 한다.
일본에도 그 정도로 밀리는 실력으로 어떻게 세계 무대에 나서려는가? 그런데도 홍명보 감독은 “경기는 잘했다”고 했다. 축구 좋아하는 국민에 죄송하고 부끄럽지 않은가?
이미 한국 축구는 여러 측면에서 일본에 한참 뒤졌다. 축구협회부터 구단, 선수까지 어디 한 부분 일본을 이길만한 실력을 갖추지 못하고 있다.
■김남일 “한국 선수, J리그 주전 어려워지고 있다”
지난 3일 일본 고베에서 열린 축구 행사에 참석한 김남일 전 ‘성남’ 감독은 “내가 있을 때도 J리그는 한국 선수라 해도 경기에 쉽게 나갈 수 있는 곳이 아니었다. 지금은 한국 선수가 J리그에서 주전으로 뛰는 게 어려워지고 있다”고 말했다. 족집게처럼 그의 지적은 정확했다.
일본 프로축구 J리그에 한국인 붙박이 주전 선수가 없다. J1 20개 구단 가운데 7개 구단에만 12명 선수가 있다. 하지만 주전급 2명뿐이다. 국가대표 나상호·오세훈도 제대로 자리를 잡지 못하는 형편. 12명 가운데 4명은 올해 한 경기도 시합에 못 나가고 있다.
김도훈, 하석주, 최성용, 유상철, 홍명보, 황선홍, 최용수, 김남일, 박지성, 이천수 등 국가대표들이 줄줄이 진출하면서 J리그에는 한국인 선수 열풍이 불었다. 김보경, 백성동, 박주호, 김진현, 한국영, 장현수, 조영철, 김진수 등 다음 세대에서 이름을 날렸던 선수들 상당수가 J리그에서 뛰었다. 그런 시절에 비하면 변해도 너무 변했다. 초라하다.
지난 6월 ‘FC 도쿄’에 이적한 국가대표 골키퍼 김승규는 7월 2경기에 90분 모두 뛰었다. 지난 2월 ‘카시마’로 옮긴 수비수 김태현는 거의 경기를 못 뛰었다. 5월 들어 주전으로 기용된 뒤 10경기 연속 전 시간 출전을 이어가고 있다. 그러나 두 선수 모두 붙박이 주전이 될지는 더 지켜봐야 한다.
오세훈은 2월 ‘시미즈’에서 ‘마치다’로 이적했다. 초반 13경기는 선발로 뛰었으나 최근에는 경기에 제대로 못 나서고 있다. 최근 5경기 가운데 3경기에는 아예 나가지 못했다. 지금까지 21경기 1득점. 최전방 공격수로서는 너무 저조한 성적.
나상호도 24년 ‘FC서울’에서 ‘마치다’로 옮겼다. 올해 21경기 4득점에 그치고 있다. 선발 출전은 겨우 5경기. 최근 6 시합은 계속 후보다.
그런데도 두 선수는 국가대표. 홍명보가 이런 상황을 알고도 선발했는지는 알 수 없다. 일본소속 구단에서 후보들을 대표로 뽑은 것은 비판받아 마땅하다.
‘카와사키’의 브라질 월드컵 대표 골키퍼 정성룡은 3~4월 2경기만 뛰었다. 그 이후 출전이 없다. ‘오사카’의 전 국가대표 골키퍼 김진현은 올해 7경기 주전이었다. 그러나 4월 이후 아예 못 뛰고 있다. 한국 국적 재일동포 조귀재 감독의 ‘교토상가’에는 역시 국가대표 골키퍼였던 구성윤이 후보로 2경기 출장에 그친 뒤 7월 서울 이랜드로 떠났다.
‘히로시마’는 국가대표 수비수 김주성을 ‘FC’서울로부터 7월 31일 영입했다. 하지만 6일 현재 선수 등록을 하지 않고 있다. 그가 주전이 될지는 두고 봐야 한다.
J2 20개 구단 중 9개에 10명의 한국 선수가 있다. 그러나 주전은 1명도 없다. 가끔 출전하는 후보 선수 3명. 나머지는 벤치만 지킨다.
J리그는 한국 선수들에게는 쓸쓸한 무대다. 찬 바람이 부는 곳. 왜 이렇게 되었는가? 선수들의 유럽 진출이 부쩍 늘어나면서 일어난 자연스러운 현상일 수 있다. 그들은 손흥민·김민재·이강인처럼 더 큰 세계에서 인정받고 싶은 욕망이 클 것이다.
그러나 유럽 5대 리그 1부에 한국은 4명뿐이다. 이제 손흥민이 떠나면 3명. 이에 비해 일본은 15명. 4배 많다. 명성 높은 구단 수도 더 많다. 특히 일본의 15명 가운데 13명이 거의 붙박이 주전으로 뛴다. 한국은 손흥민 외에 확실한 주전 선수가 없었다.
■J리그마저 외면하는데…한국 선수는 너도 나도 ‘유럽행’?
이런 상황을 고려하면 무조건 유럽으로 가기보다 박지성 선수처럼 일본을 거치는 것도 좋은 방법. 하지만 이제 J리그가 한국 선수들을 그다지 선호하지 않는 것이 아닌가? 그래서 갈 수 없는 것이 아닌가? 냉정하게 평가할 필요가 있다.
지금까지 J리그 선수들이 유럽 5대 리그 1·2에만 40명 가까이 나갔다. 다른 유럽 리그에도 많이 진출했다. 그런데도 J리그가 한국 선수들로 보충하지 않는 것은 그들의 실력을 높이 평가하지 않기 때문일 수 있다. 현재 국가대표들조차 후보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에서 미뤄 짐작할 수 있다. 좋은 선수들이 많다면 J리그가 왜 탐을 내지 않겠는가?
지금 J리그에는 브라질 선수들이 1부 51명, 2부 34명 등 85명이나 있다. 한국 선수들에게도 충분히 열려 있는 시장. 한국보다 훨씬 규모가 크고 수준이 높다. 어린 선수들에게 좋은 선택이 될 수 있다. 하지만 J리그가 한국 선수들에게 큰 매력을 느끼지 않는다면 아무 소용없다.
일본축구협회 ‘회장 장기집권’은 이미 47년 전에 끝난 유물. 오로지 축구인 가운데 회장이 뽑힌다. 회장 선출로 시끄러웠던 적도 없다. 그런 체제 속에서 모리야스 하지메 국가대표 감독은 어떤 학맥 등도 없이 순수 실력만으로 뽑혔다. 일본에는 한국식 시민구단, 기업 자선금으로 운영하는 구단이 없다.
한국 축구협회는 축구인이 아닌 집안 형제들이 28년 째 장기집권을 하고 있다. 숱한 말썽 속에 정몽규 회장이 뽑히고 홍명보가 감독이 되었다. 국민 세금으로 꾸리는 시민구단 등 자생력 없이 프로 구단이 존속하는 곳은 한국뿐이다.
이러니 한국 축구가 발전하기 힘들다. 일본에 계속 질 수밖에 없다. J리그 진출도 어려울 정도로 한국 선수들 실력이 늘지 않는 것도 그 영향일 것이다. 안타깝기 그지없다.
손태규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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