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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락 오바마(오른쪽) 전 미국 대통령은 지난 대선에서 ‘여자 오바마’로 불린 카멀라 해리스를 민주당 후보에 뽑히도록 했다.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 X(옛 트위터) 캡처 |
지금 대한민국은 좌파세력의 정치 아래 있다. 미국의 쿠데타를 보면서 국민은 나라의 장래를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한국은 안전한가?
■2016년 12월.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당선인에 대한 쿠데타를 고위 참모들에게 직접 지시했다. 그의 지휘 아래 국가 정보기관·공권력을 포함한 좌파세력은 트럼프를 대통령 자리에서 쫓아내고 감옥에 집어넣기 위한 공작을 9년이나 계속했다.
대통령을 떠났어도 오바마는 자신의 부통령 조 바이든 대통령을 상대로 쿠데타를 했다. 바이든은 워싱턴 정계를 40년 넘게 구른 노정객: “오바마만큼 깨끗하고, 총명하며, 말 잘하는 흑인은 없었다.” 그러나 오바마는 막후 조종으로 그의 대선 후보 자격을 빼앗았다. 식물 대통령으로 만들었다. 피도 눈물도 없는 잔인한 정치.
미국을 자유민주주의 성지처럼 여기는 사람들에게는 믿기 어려운 정변일 것. 그러나 미국 역시 정치 전쟁터일 뿐이다. 오바마가 입증했다. 쿠데타가 한창 진행 중일 때, 그 세력인 민주당 하원의장 낸시 펠로시가 그런 정치풍토를 이해하는 작은 실마리를 주었다:
“거짓말 등으로 누군가를 중상모략한 뒤 그걸 상품처럼 유통한다. 매체가 그것을 보도하면 사람들은 ‘봐라. 이거, 이거, 이것을 보도했잖아’라고 말한다. 그렇게 보도를 통해 중상모략이 정당성을 얻는다. ‘매체 포장형 중상모략’이다. 이제 우리가 만들어낸 중상모략이 담긴 기사를 다시 상품화하려 한다. 그것이 전술이다.”
그녀는 오바마와 아주 가까운 강경 좌파. 미국에는 펠로시처럼 생각하는 좌파 정치인들이 넘쳐난다. 거짓을 진실처럼 포장하는 좌파 매체가 전체 95% 넘는다. 그들은 공모하여 어떤 일도 저지른다. 그것이 그들의 정치 방식이라고 펠로시는 당당하게 설명했다.
그런 미국 매체를 많은 한국인이 무조건 믿고 베끼며 받아들인다. 한국 사회가 국제 정세에 어두워 심각한 혼란을 겪을 수밖에 없는 가장 큰 이유다. (펠로시가 몇 년 전 한국을 방문했을 때 한국 매체는 그녀를 자유민주주의 투사라고 칭송했다.)
■백악관 경호원: “바이든은 수시로 자신의 옷장에 갇혀 나오지도 못했다.” 인지 능력이 무너져 가고 있었으나 민주당이나 좌파 매체는 전혀 문제 삼지 않았다. 놀랄 만한 단결이었다.
그래도 바이든은 24년 3월 민주당 후보 경선에서 압승했다. 그러나 6월 27일 도널드 트럼프 후보와의 첫 토론에서 ‘참사’랄 만큼 실패했다. 질문조차 이해하지 못했다.
오바마는 기다렸다는 듯 바이든에 ‘정치적 죽음’을 선고했다. 소셜미디어에 “형편없는 토론”이라 비난했다. 측근들에게 “바이든은 결코 이길 수 없다”고 했다. 그의 오랜 심복인 전 백악관 수석 고문이 나섰다: “바이든이 한 번 더 대통령직을 수행할 능력이 있는지 국민은 크게 걱정한다. 실제 훨씬 더 심각한 상태다.” 오바마의 ‘바이든 축출 작전’ 시작을 알리는 신호탄.
뉴욕타임스가 가장 먼저 후보에서 물러나라고 요구했다. 정신 혼란 등 그의 여러 문제를 철저하게 방어해 주던 타임스부터 배신한 것. 각종 매체가 잇따랐다. 오바마 절친 조지 클루니 등 연예인들도 사퇴를 다그쳤다. 감독 마이클 무어는 토론을 “노인 학대”에 비유하며 출마 포기를 요구했다.
백악관 참모와 상·하원 의원 등도 바이든을 강하게 압박했다. 그들은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 바이든을 교체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민주주의를 위한 쿠데타라니. 미국에서.
■바이든은 가족과 1주일 동안 ‘캠프 데이비드’에 머물며 저항했다. 오바마 충성파인 백악관 정치고문, 비서실장 등을 잘랐다. 오바마에 대한 작은 복수. 바이든은 “전에 트럼프를 꺾었다. 또 이길 것”이란 성명까지 냈다. 눈물겨운 투쟁이었다.
‘월스트리트저널’ 사설이 쐐기를 박았다: “대통령님, 전능자가 전화를 걸어왔습니다. ABC 회견에서 당신이 언급한 그 신이 아닙니다. 그 ‘큰 분’은 이번 대선에서 빠지신 듯합니다. 우리가 말하는 것은 미국 정치의 전능자에 가장 가까운 존재인 민주당·매체 기득권 세력입니다. 그들은 당신이 물러나길 원합니다. 남은 질문은 당신이 ‘언제 그것을 인정·순응할 것인가?’입니다.”
중공 문화대혁명 때 홍위병들의 대자보와 무엇이 다른가? 세계 경제를 주무른다는 신문이 대통령을 한껏 조롱하며 협박했다. ‘언론’이 아니라 쿠데타 세력의 정치 무기에 지나지 않았다.
바이든은 7월 21일 사퇴했다. 오래전부터 “여자 오바마”로 불렸던 부통령 카말라 해리스가 8월 5일 전당대회에서 후보로 추대됐다. 거침없었다. 아프리카나 남미에서도 쉽게 벌어질 만한 일이 아니었다. 하물며 미국에서 일어날 줄 누군들 상상이나 했겠는가?
CNN 토론 수용이 바이든의 실수였다. 오바마 세력이 판 함정에 빠졌다는 것. 바이든의 정신 상태를 꿰뚫어 보고 있던 그들은 토론 실패를 내다봤다. 사퇴 여론몰이에 좋은 구실로 그것을 이용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 계산은 맞아떨어졌다.
바이든은 후보 사퇴 후 인간으로서도 대통령으로서도 ‘식물’이 되었다. 퇴임 직전, 새 정부 수사 대상으로 꼽힌 의원·아들·동생 등을 무더기 사면했다. 참모들이 ‘자동 서명기’로 그의 명령을 위조했다. 지금 조사 중이다.
한 오라기도 엉키지 않은 오바마 세력의 집단 공작은 현직 대통령을 완전 무력화했다. “오바마 쿠데타”라 불린다.
■오바마의 쿠데타 목적은 네 번째 대통령이 되는 것. 두 번 대통령을 하고도 모자라 바이든의 막후에서 세 번째 대통령 노릇을 하던 그는 다시 그 자리를 노렸다.
미국 보수우파들은 바이든이 대통령에 취임한 이후 3년 반 동안 끊임없이 “누가 대통령인가?”라는 의문을 던졌다. 좌파들은 으레 “음모론”이라 반박했다. 의문은 오바마 쿠데타가 성공하면서 풀렸다.
오바마는 백악관은 떠나도 워싱턴은 떠나지 않았다. 역대 대통령 가운데 1백 년 만의 일. 그는 백악관 인근에 살면서 잠시도 바이든 지배의 끈을 놓지 않았다. 그림자 정부를 통해 바이든 정부를 운영했다. 최소 주 1회 이상 바이든과 통화. 각종 정치단체를 주도하며 정치 개입을 계속했다. 바이든의 상황제였다.
“오바마 동창회”라 불린 인맥이 백악관·국무부·CIA·FBI 등의 핵심부를 장악했다. 오바마도 뉴욕타임스 회견에서 인정했다: “바이든 정부 90%는 나의 정부에 있던 사람들이다.” “오바이든(오바마+바이든)” “(바이든은) 오바마의 아바타”라는 말들은 허투루 만들어진 것이 아니었다.
■오바마가 다시 사실상 대통령이 되려 했던 이유는 정치 목표가 아직 이뤄지지 않기 때문. 그는 마르크스주의 체제로의 “미국 변형”을 노렸다.
1990년대 중반. 오바마는 일리노이주 상원의원을 목표로 정치에 뛰어들었다. 그 길을 안내하고 모금에 나서 준 빌 에어스 부부. 그들은 1969년 미국을 공산국가로 바꾸기 위한 테러 조직을 창설했다. ‘모택동주의’에 빠져 홍위병을 본뜬 ‘웨더 언더그라운드’를 이끌며 의회 폭파 등 20여 차례 테러를 했다. 오바마는 이 부부와 여러 좌파 단체에서 함께 활동했다. 그는 평생 많은 마르크스주의자와 깊은 관계를 맺고 영향을 받아왔다. 마르크스주의는 오바마의 인생이었다.
오바마가 바이든을 쿠데타로 몰아낸 것은 트럼프란 정적을 무너트리기 위해서였다. 트럼프는 미국 사회주의화에 가장 두렵고 완강한 걸림돌. 오바마는 16년 자신이 대통령일 때 이미 트럼프를 상대로 쿠데타를 시작했으나 실패했었다. 24년 대선에서 바이든이 진다면 자신의 정치 목표는 영원히 이룰 수 없다고 판단했을 것이다.
그래서 무리한 정변을 일으켰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두 번째 쿠데타의 대가는 트럼프 재선이었다.
[손태규 시장경제연구원 이사] Copyright ⓒ 뉴스밸런스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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