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누가 국민의힘을 책임질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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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위크=손지연 기자  국민의힘이 대선 패배 이후 지지율 급락을 막지 못하고 있다. 2020년 9월 미래통합당에서 국민의힘으로 당명을 변경한 이후 가장 낮은 ‘17%’라는 뼈아픈 성적표를 받아들었지만, 당의 위기를 진심으로 걱정하며 이를 책임지겠다고 나서는 이는 아무도 없는 상황이다. 

대선 이후 당 혁신 목소리는 번번이 주류인 친윤(친윤석열)계에 의해 막혔다. 탄핵의 원인이 ‘비상계엄’에 있음을 부정할 수 없는데도 불구하고 ‘윤석열’이라는 이름은 친윤계와 함께 아직도 당에 살아있다. 

이제 국민의힘에 ‘친윤계’는 없다며 이같이 불리는 것을 불편해하고 있지만, 이들을 달리 표현할 명칭을 찾지 못한 이유는 비상계엄 이후 탄핵 정국에서 국민의힘 주류가 보인 모습 때문이다. 난데없는 비상계엄이 ‘위헌‧위법하다’는 것을 알고 있음에도 당장 눈앞에 닥친 정권 교체만은 막아보려는 땜질식 행보는 결국 ‘극우’ 세력이 당을 흔들어 놓기 좋은 구조를 만들어줬다. 

권성동 의원은 지난해 12월 12일 국민의힘 신임 원내대표 선출을 위한 의원총회가 진행되는 가운데 예고 없이 시작된 윤 전 대통령의 대국민 담화를 의총장 밖에서 휴대전화로 시청했다. 당시 권 의원은 윤 전 대통령의 담화를 보더니 “뭐 하는 거야, 이게 지금”이라는 격앙된 반응을 보였고, 이는 SBS 유튜브를 통해 퍼져나갔다. 

한 국민의힘 당직자는 비상계엄 직후 민주당에서 탄핵소추안을 올리자 “가만히 있으면 이재명 (당시)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감옥에 갔을 텐데 왜 비상계엄을 선포해서 당을 망가트려 놓냐”며 “사실 윤 전 대통령 부부야 불거진 의혹들로 궁지에 몰려 있었지만 당은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이후 점점 나아지고 있었다. 그런데 비상계엄으로 민주당만 좋은 일 만들어 줬다”고 평가하기도 했다. 

탄핵 정국 당시 국민의힘을 취재하던 기자들 사이에서는 쌍권(권영세‧권성동) 지도부가 당의 위기를 만든 윤 전 대통령을 ‘싫어한다’는 얘기가 돌았다. 지도부가 적극적으로 헌법재판소의 탄핵 심판에 대해 절차적 문제를 제기하고 있지만, 사실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 뿐 아니라 그 이후 행보들을 ‘전혀 이해할 수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탄핵 정국을 취재하는 기자로 아침 회의 발언을 받아치고 있노라면, 명치 부근이 욱신거렸다. 윤 전 대통령의 강성 지지층이 단결해 당 지지율을 견인하자는 등 윤 전 대통령 변호인단의 논리를 그대로 가져와 설파했다. 

‘두 번째 탄핵만은 안 된다’는 게 이유였다. 앞에서는 비상계엄과 윤 전 대통령을 옹호하는 공식 발언들을 쏟아냈지만, 뒤로는 윤 전 대통령을 비판한 셈이다. ‘우리도 윤 전 대통령을 이해할 수 없으나 당이 살아야 하니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이다. 

예상보다 헌재의 판결이 늦어지자, 이제는 당에 ‘윤비어천가’가 울려 퍼지기까지 했다. 처음에는 ‘윤 전 대통령이 이해 안 된다’던 이들도 극우 집회의 열기에 휩쓸려 ‘계엄은 계몽령’, ‘STOP THE STEAL’이라는 구호를 함께 외쳤다. 윤 전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선포했음에도 탄핵은 기각될 것이라는 논리를 펼치는 진풍경도 펼쳐졌다. 

그런 모습들이 모여 ‘친윤계’의 이미지가 형성됐다. 비상계엄 선포 전 당내 ‘친윤계’라고 불리던 이들이 있었으나 계엄 이후 그 이미지는 더욱 선명해졌다. 가히 ‘윤석열 대통령 구하기’라 불릴만한 거대한 정치 투쟁이었다. 

조기 대선이 본격화되자 국민의힘은 그간 윤 전 대통령을 옹호하던 입장에서 물러나 선 긋기에 나섰다. 탄핵 정국에서 지지율을 견인해 줘서 고맙지만 이제 ‘위헌‧위법하다’는 판결을 받은 마당에 서둘러 ‘윤석열’의 그림자를 떨치고 ‘이재명 총통 독재’를 막겠다는 것이다. 

국민의힘은 ‘검사 윤석열’을 데려와 ‘대통령 윤석열’을 만들고 그가 하고 싶은 대로 하도록 두었지만, 결코 그의 편이 되어주진 않았다. 정권 창출을 위해, 당의 이익을 위해 ‘윤심’을 들어주긴 하겠지만 ‘정치인 윤석열’을 진심으로 따르고자 한 사람은 없었다. 비상계엄 선포를 알지 못하고, 막지 못하고, 탄핵 정국에는 윤 전 대통령 측 논리를 재생산하며 지지율 상승을 누리다가 결국 당에 ‘극우 세력’을 들이고 본래 국민의힘 지지층에게도 ‘극우 논리’를 이식했다. 

계엄 해제 직후부터 예상된 ‘두 번째 탄핵’을 잡기 위해 국민의힘이라는 초가삼간을 다 태운 꼴이다. 탄핵 정국에서의 ‘윤어게인’ 세력이 대선 패배에도 국민의힘에 들어와 당을 헤집는 것은 당시 친윤계의 행보에서 기인한다. 

대선 이후 쇄신을 하겠다며 만든 윤희숙 혁신위는 ‘인적쇄신’을 주장하다 친윤 지도부에 막혀 동력을 잃은 지 오래다. 당 쇄신 방안에 대한 의견은 분분하지만 대선 패배 이후 당의 위기에 책임지는 인사는 없다. 

인적 쇄신의 대상으로 지목된 쌍권(권영세‧권성동) 지도부는 ‘그 당시에는 최선이었다’는 식으로 책임론을 회피하고 있다. 아직 총선까지 2년 8개월이 남은 만큼 출당이나 불출마 조치에는 반발할 수 있다고 본다. 하지만 ‘극우’ 세력을 당으로 이끈 책임은 누가 질 것인가? 

아직도 ‘탄핵 반대’와 ‘탄핵 찬성’의 지지부진한 싸움을 지속하며 혁신만 얘기하면 내홍으로 빠져드는 이유는 당의 위기에 책임지겠다는 사람이 아무도 없기 때문이다. 국민의힘 모두가 ‘내 책임은 아니다’라고 일관하고 있어서다. 책임론을 떠넘기는 게, 마치 ‘폭탄 돌리기’와 같다. 

김문수 전 대선 후보도 패장이지만 대선 후보였던 인지도를 내세워 가장 유력한 후보로 전당대회에 자리매김했다. 정치에 명분과 논리가 사라지며 계파 간 비판을 위한 비판만 존재하는 국민의힘에 더 이상 ‘책임 있는 정치’를 논하는 사람이 사라지고 있다. 

국민의힘 내에서는 이번 전당대회에 대한 기대감조차 없다. 혁신도 쇄신도 말 뿐인 헛구호였고, 중진들도 입을 다문 채 헛기침뿐 책임 있는 발언을 내놓기를 꺼린다. 위기감이 없다면 지지율은 10%대가 아니라 한 자리수로 추락할 수도 있다. 하지만 경각심은 없어 보인다. 당장의 자리는 보전되며 총선은 2028년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대로라면 107석이 아니라 100석 미만의 개헌선도 지키지 못하는 초라한 정당으로 쪼그라들 수밖에 없을 것이다. 

(국민의힘 지지율 17% 조사는 지난 24일 엠브레인퍼블릭·케이스탯리서치·코리아리서치·한국리서치가 지난 21∼23일 만 18세 이상 남녀 1001명을 대상으로 조사해 발표한 전국지표조사(NBS)임. 해당 조사는 휴대전화 가상번호(100%)를 이용한 전화면접조사 방식으로 진행됐으며, 표본오차는 95% 신뢰 수준에 ±3.1%p. 기사에 언급된 여론조사 관련 자세한 사항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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