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사위크=이영실 기자 올해 칸영화제 ‘라 시네프(La Cinef)’ 부문에서 한국 영화 최초로 1등상을 수상한 허가영 감독의 단편영화 ‘첫여름’이 오는 8월 메가박스 단독 개봉을 통해 국내 관객과 만난다. 허가영 감독은 설레는 마음을 드러내며 많은 관객에게 닿길 희망했다.
‘첫여름’은 손녀의 결혼식 대신 남자친구 학수의 사십구재(四十九齋)에 가고 싶은 영순(허진 분)의 이야기를 그린 단편 영화다. 한국영화아카데미(KAFA) 41기 허가영 감독이 연출한 작품으로, 제78회 칸영화제의 ‘라 시네프’ 부문에 공식 초청된 데 이어 한국 영화 최초로 1등상 트로피까지 거머쥐며 주목받았다.
이후 제5회 로레알 파리의 ‘라이트 온 우먼스 워스 어워드’를 수상하고 제29회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에도 초청받으며 작품성을 인정받았다. 영순의 개인적 내면과 사회적 기대 사이의 갈등 속에서 자신을 찾는 여정을 섬세하게 풀어낸 서사와 영순 역을 맡은 배우 허진의 깊이 있는 연기 등이 호평 이유로 꼽힌다.
허가영 감독은 30일 메가박스를 통해 개봉 소감부터 영화의 출발, 연출에 중점을 둔 부분 등 ‘첫여름’에 관한 다양한 이야기를 전했다. “인간에 대한 나만의 시선과 이해가 담긴 영화를 만들고 싶다”는 각오를 밝히기도 했다.
-칸영화제 라 시네프 부문 1등상 수상 후 관객과 만남을 앞둔 소감은.
“기쁘고 설렌다. 단편 영화의 극장 상영은 굉장히 드문데 영화제를 너머 극장에서 많은 관객에게 이야기가 닿을 수 있어 운이 좋다고 생각한다. ‘첫여름’이 관객들을 만나 어떤 화학작용을 일으키고 어떤 새로운 의미를 얻을지 궁금하다. 이 영화가 그저 하나의 이야기로, 누군가의 삶으로, 그 자체로 사랑받길 희망한다. 더불어 다른 단편 영화들도 관객을 더 많이 만날 수 있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
-‘손녀의 결혼식과 애인의 사십구재 사이를 고민하는 노년의 여성’이라는 설정이 인상적이다. 어떻게 떠올리게 됐나.
“‘첫여름’은 나의 외할머니로부터 시작됐다. 물론 대부분 픽션화 됐지만 영순이라는 캐릭터가 탄생한 뿌리는 외할머니다. 대학생 시절 할머니가 남자친구 이야기를 들려주신 적이 있다. 다섯 시간이 넘도록 이어진 대화는 마치 친구와 나누는 연애담 같기도 했고 트라우마 속에서 살아남은 여성의 영웅담 같기도 했다. 자신을 혐오하고 연민하면서도 다시 살아가고자 하는 그 움직임 그리고 춤을 출 때 얼마나 자신다워지는지 꿈꾸듯 말씀하시던 할머니의 상기된 얼굴이 제 마음을 떠나지 않았다. 노인이라는 이름 아래 뭉뚱그려진 개인의 얼굴과 이야기를 또렷하게 바라보고 싶었다. 이후 할머니의 사십구재에서 스님들의 불경 소리가 순간 콜라텍 음악으로 들리기 시작했다. 드넓은 대웅전에서 누구보다 자유롭고 사랑스럽게 춤을 추는 할머니의 모습이 그려졌고 아주 오랜 기간 그 장면에 사로잡혀 머릿속에서 끊임없이 재생되곤 했다. 첫여름은 이 장면으로부터 시작됐고 이 장면을 향해 질주하는 영화다.”
-제목을 ‘첫여름’으로 정한 이유는.
“내게 영순은 잃어버린 무언가를 찾기 위해 끝없이 발버둥치는 여자였다. 영순의 찬란한 시절과 충만하고 쨍한 여름을 영화를 통해서라도 되찾아주고 싶었다. 그렇게 첫 시놉시스를 쓰자마자 ‘첫여름’이라는 제목을 지었다.”

-노인에 대한 감독의 달라진 시선과 영순을 통해 관객과 우리 사회에게 전하고 싶은 메시지는 무엇인가.
“삶과 사랑은 특정한 누군가의 전유물이 아니다. 그럼에도 노인들의 욕망은 납작하게 그려지곤 한다. 노년기라는 생애주기의 특수성은 분명 있지만, 노인 역시 청년과 같이 누군가를 사랑하고, 사랑받고 싶어 한다. 이 영화를 본 누군가가 ‘할머니’ 영순이 아닌 한 여자로서 영순과 동행했다는 감각을 느낄 수 있도록 하고 싶었다. 더 나아가 각자의 세계 속에 있는 노인에 대한 개념을 깨부수고 뒤집어보고 질문을 남기고 싶었다.”
-영순 역에 허진을 캐스팅한 이유는.
“‘영순은 무조건 70대 배우를 캐스팅한다’가 타협할 수 없는 조건이었다. 우연히 젊은 시절 허진 선생님의 영상을 봤고 특유의 분위기에 매료됐다. 영화의 첫 장면에 영순이 입은 얇은 티셔츠는 선생님께서 첫 미팅 때 입으셨던 의상이다. 단박에 영순처럼 보였고 첫 리딩 후 확신의 환호를 했다. 영순은 허진 선생님을 만나면서 많은 부분 바뀌었다. 대사 하나하나를 선생님의 언어로 바꾸기도 하고 그 과정에서 많이 다투기도 했다. 그래서 허진 선생님과의 작업을 연애와 같았다고 표현하곤 한다. 허진 선생님은 손녀뻘인 어린 감독의 말을 지나치거나 무시하지 않으셨다. 서로 존중하며 함께 영순을 만들어 갔기에 ‘첫여름’이 탄생할 수 있었다.”
-장편이 아닌 단편 영화로 탄생했다. 단편 영화 형식이 어떤 힘을 더했다고 생각하나.
“단편 영화는 강력한 임팩트가 힘이라고 생각한다. 짧은 시간 동안 재치 있는 캐릭터나 장면으로 관객의 마음에 강력한 인상을 남기는 것이다. 장편 영화가 큰 도화지에 여러 색을 입힌 세밀화라고 한다면, 단편 영화는 거칠지만 그 자체로 스타일과 힘이 있는 목탄 크로키 같은 느낌이 든다. ‘첫여름’은 단편 영화이기에 마지막 장면에 힘을 더 실을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제작 과정에서 가장 신경 쓴 부분이나 어려웠던 점은 무엇인가.
“이 이야기는 나의 외할머니로부터 시작됐기에 각별했다. 대부분 픽션화 돼 달라졌지만, 할머니의 이야기를 담보로 삼았다는 이유로 결코 손가락질할 수 없는 영화를 만들고 싶었다. ‘20대 여성으로서 여성 노인을 대상화하고 납작하게 그리지 않는다’는 다짐을 거듭했다. 청년인 내가 전혀 다른 생애주기를 산 노인을 온전히 이해할 순 없었다. 시나리오를 쓰면서 부딪혔던 벽과 마주한 빈칸들은 배우들과 답사를 하며 만났던 노인분들께서 넘고 채워 주셨다고 생각한다.”
-봉준호 감독을 비롯한 여러 감독이 기발한 단편 영화로 시작해 세계적인 거장이 됐다. 앞으로 어떤 감독이 되고 싶나.
“인간에 대한 나만의 시선과 이해가 담긴 영화를 만들고 싶다. 인간의 삶과 가깝기에 솔직하면서도, 당연한 것들을 흔들며 질문을 남기는 이야기를 하고 싶다. 그리고 다작하는 감독이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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