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도보다 국익’… ‘신중함’ 앞세운 정부의 대미 협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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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미 일정을 마치고 귀국한 위성락 국가안보실장이 지난 9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에서 관세협상 및 방위비 관련 브리핑을 하고 있다. / 뉴시스
방미 일정을 마치고 귀국한 위성락 국가안보실장이 지난 9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에서 관세협상 및 방위비 관련 브리핑을 하고 있다. / 뉴시스

시사위크=권신구 기자  “저는 담판이라는 말을 믿지 않는 사람이다”. 지난 6일부터 2박 4일간 일정으로 미국을 방문한 뒤 귀국한 위성락 국가안보실장은 용산 대통령실 브리핑에서 이같이 말했다. 위 실장은 “(협상은) 긴 과정이고 저는 그 과정에 한 임무를 수행했다”며 “그 정점은 정상회담에 가서 이루어지는 것”이라고도 덧붙였다. 당장 오는 8월 1일로 예정된 미국의 관세 부과를 비롯해 방위비 분담금, 더 나아가 한미 정상회담 등 협상에서 조급함을 갖지 않겠다는 의미로 보인다.

미국의 거듭되는 통상 압박 속에 대통령실은 ‘속도’보다 ‘국익’을 중심에 두고 협상에 나서겠다는 의지를 드러내 왔다. 앞서 김용범 대통령실 정책실장도 지난 8일 대미 통상 현안 관계부처 대책회의에서 미국의 관세 부과와 관련해 “조속한 협의도 중요하지만 국익을 관철하는 것이 더욱 중요한 가치”라고 밝힌 바 있다. 이러한 기조 속에 위 실장은 이번 미국 방문에서 ‘우리의 판단’을 전달하는 데 집중했다.

위 실장은 지난 9일 용산 대통령실에서 이번 방미 관련 브리핑을 열고 미국과의 협의 내용을 공개했다. 지난 6일 미국으로 출국한 위 실장은 7일 백악관에서 마르코 루비오 국가안보보좌관 겸 국무장관과 한미 안보실장 협의를 갖고 양국 간 현안 및 동맹 관계 강화 방안에 대해 협의했다. 위 실장은 새 정부 출범 후 한 달간 정부가 협의에 많은 노력을 기울여 왔음을 설명했다고 말했다. 각종 현안에 대해선 동맹 관계 발전과 신뢰 강화라는 큰 틀에서 타결을 위해 함께 노력하자는 점을 강조했다고 한다. 아울러 앨리슨 후커 국무부 정무차관과 실무진과 접견해 한미 관계 그리고 한반도 역내 또는 글로벌 현안 이슈에 대해 의견을 교환했다.

당초 지난 8일(현지시간) 종료될 예정이었던 미국의 관세 유예 시한은 오는 8월 1일로 연기됐다. 한국으로선 협상을 위한 3주의 시간을 벌게 되면서 한숨을 돌리게 됐다. 정부는 이 기간을 적극적으로 이용해 합의를 이뤄내겠다는 의지를 내비쳐 왔다. 관건은 정부가 어떠한 전략으로 미국을 설득할 것인지였다. 정부는 그간 여러 외교 채널을 통해 다양한 분야에서 미국과 협의를 진행해 온 가운데, 위 실장은 통상·투자·구매·안보 관련 현안을 망라한 ‘패키지딜’을 미국에 제안했다. 이에 미국 측도 공감을 표했다고 위 실장은 전했다.

캐롤라인 레빗 백악관 대변인이 7일(현지시간) 백악관에서 브리핑하면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이재명 대통령에게 보내는 서한을 들어 보이고 있다. 트럼프는 이 대통령에게 보내는 서한에서 "2025년 8월 1일부터 한국에서 수입하는 모든 제품에 대해 기존의 부문별 관세와는 별도로 25%의 관세를 부과할 예정"이라고 밝혔다./워싱턴=AP/뉴시스
캐롤라인 레빗 백악관 대변인이 7일(현지시간) 백악관에서 브리핑하면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이재명 대통령에게 보내는 서한을 들어 보이고 있다. 트럼프는 이 대통령에게 보내는 서한에서 "2025년 8월 1일부터 한국에서 수입하는 모든 제품에 대해 기존의 부문별 관세와는 별도로 25%의 관세를 부과할 예정"이라고 밝혔다./워싱턴=AP/뉴시스

◇ 통상·투자·안보 망라한 ‘패키지딜’ 제안

이러한 제안은 현재 ‘관세 문제’에 집중하고 있는 미국의 시선을 분산시키겠다는 의도로 풀이된다. 위 실장은 “서한을 보면 시종 관세·비관세 장벽에 관한 이야기”라며 “그거는 한 영역이고 그 외에 우리가 논의하고 있는 다양한 영역이 있는데, 통상 전반에 관한 것도 있고 투자에 관한 것도 있고 우리가 미국 상품을 구매하는 것, 에너지를 포함하여 구매도 있고 안보도 있다”고 했다. 이어 “안보는 국방 협력도 다 포함되는 것”이라며 “그것들을 포괄적으로 보면 우리가 다르게 협상할 수 있다고 생각해서 그 방향을 이야기하려고 하는 것”이라고 했다.

‘동맹국’으로서의 중요성을 강조한 것도 이러한 맥락이다. 위 실장은 “서한은 관세·비관세에 집중해 있는 것으로 보이고 그거를 주도하는 분들의 관점에서는 동맹이다, 아니다라는 건 관심에서 벗어나 있을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우리는) 결국 맨 마지막 모양은 한미 동맹이 어떻게 되느냐 하는 게 아닌가”라며 “그런 매크로 퍼스펙티브(Macro Perspective·거시적 관점)를 잃지 말자는 그런 이야기를 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같은 관점에서 이재명 대통령의 대선 공약이었던 전시작전권 환수 문제 등이 협상 테이블에 오를 가능성도 제기된다.

위 실장은 이번 방문에서 미국 측과 조속한 시일 내에 한미 정상회담을 하자는데 공감대를 이뤘다고 밝혔다. 하지만 구체적 시한은 정하지 못했다. 다만 위 실장은 “정상회담이 있느냐 없느냐가 모든 것에 다 관건은 아니다”라며 “협상은 협상대로 진행하고 그 성과를 낼 수 있기에 여러 채널의 협의를 잘 마무리 지어서 정상회담으로 가져간다는 것”이라고 했다. 일각에선 조속한 한미 정상회담 추진이 오히려 미국의 전략에 휘말릴 수 있다는 우려도 존재하는 만큼, 여러 상황을 고려하겠다는 의미로 풀이된다. 

한편 이 대통령은 이날 취임 후 첫 국가안전보장회의(NSC)를 주재하고 하반기 안보 분야 관련 업무보고를 받을 예정이다. 구체적 내용은 공개되지 않았으나, 위 실장의 미국 방문 후 열린다는 점 등을 고려해 이번 방미 결과 등과 관련해 향후 미국과 협상 방향성이 논의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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