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준규의 ESG 인사이트 54] 지역화폐 정책의 지속가능한 발전을 위한 제언

마이데일리

[ESG 경영컨설턴트 심준규] 경기침체로 골목상권이 얼어붙은 현실에서 정부가 지역화폐 확대를 추진하며 이번 추가경정예산(추경)을 통해 할인액 지원금으로 총 1조원 국비를 투입하고 있다.

소상공인 숨통을 틔우고 지역경제에 활력을 불어넣겠다는 정책 취지는 충분히 환영할 만하다. 하지만 세금으로 지원하는 만큼 단순한 소비 진작을 넘어 진정한 마중물 역할을 고민해야 한다.

또한 새정부는 추경에서 지역화폐 발행 규모를 기존 12조원에서 29조원으로 대폭 확대했다. 이는 코로나19 이후 침체된 지역경제에 활력을 불어넣기 위한 강력한 정책 의지를 보여준다. 정부는 지역별 여건에 따라 최대 15%까지 차등 인센티브를 적용해 정책 효과를 극대화하려 하고 있다.

지역화폐가 어떻게 작동하는지 살펴보면 그 취지와 한계가 명확해진다. 정부와 지자체가 지역경제 활성화를 위해 지역화폐 사용 시 인센티브를 제공하는 구조다. 이 지역화폐는 대형마트나 온라인 쇼핑몰에서 사용할 수 없고, 오직 지역 내 등록된 소상공인 가맹점에서만 사용 가능하다.

바로 여기서 지역화폐의 핵심 가치가 드러난다. 평소 대형마트에서 생필품을 구매하던 소비자가 동네 슈퍼를 이용하게 되고, 온라인 쇼핑몰 대신 지역 내 소매점을 찾게 된다. 소비 물길을 바꿔 지역 내 자금 순환을 유도한다.

지역화폐 핵심 가치는 국가 전체 GDP 성장이 아닌 지역 내 자금 순환에 있다. 대형마트나 온라인 쇼핑으로 빠져나가던 소비를 지역 내 골목상권에 머물게 하는 매출 이전 효과가 본질이다. 단순히 전체 소비량을 늘리는 게 아니라 소비의 방향을 바꾸는 데 의미가 있다.

실제로 부여군과 세종시 사례를 보면 지역화폐의 성과가 상당하다는 점을 확인할 수 있다. 부여군 ‘굿뜨래페이’는 소상공인의 매출을 20~30% 증가시키는 효과를 거뒀고, 세종시 역시 코로나19 시기 ‘여민전’으로 역내 소비액이 전년 대비 52% 증가하는 성과를 보였다.

지역화폐가 활성화된 지역에서는 전통시장과 골목상권에 새로운 활기가 돌고 있다. 코로나19로 어려웠던 외식업계에서는 지역화폐가 매출 회복의 중요한 동력이 되었다. 소비자도 인센티브 혜택을 받으면서 동네 상권을 재발견하는 기회를 가졌다.

하지만 현실적 한계도 뚜렷하다. 많은 지역에서 지역화폐가 단순히 카드 인센티브의 지역화폐 버전에 머물고 있다. 기존에 현금이나 카드로 결제하던 소비를 지역화폐로 바꿔 결제하는 ‘소비 대체’ 현상이 주를 이루고 있다.

예를 들어 매월 동네 카페에 5만원을 지출하던 소비자가 지역화폐로 결제 방식만 바꾸는 경우다. 이때는 새로운 소비가 창출되는 게 아니라 단순히 결제수단이 변화한 것에 불과하다. 진정한 경제 활성화 효과를 보려면 기존 소비 패턴을 넘어선 추가적인 소비를 유도해야 한다.

지역상권 살리기라는 본래 목표와 정반대로 흘러가는 사례 또한 늘어나고 있다. 일부 지역에서는 지역화폐 사용액 상당 부분이 학원가나 주유소 등으로 집중되고 있다. 특히 주유소의 경우 연료비 지출이라는 필수 소비를 지역화폐로 대체하는 경우가 많아 지역상권 활성화와는 거리가 멀다.

진정한 선순환 구조를 위해서는 상권 내 재방문과 재구매를 유도하는 생태계 구축이 필요하다. 소상공인 간 연계 프로모션, 적립이나 쿠폰 순환 시스템 등으로 고객이 특정 상권에 머물며 충성도를 갖게 만들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지자체 내 지역화폐 담당 부서와 소상공인 지원 부서가 협업해 전체적인 큰 그림에서 함께 기획해야 한다.

전통시장에서 지역화폐로 장을 본 고객에게 근처 카페 할인쿠폰을 제공하거나, 식당 이용 고객에게 다음 방문 시 추가 혜택을 제공해야겠다. 처음 지역화폐로 경험한 고객이 만족하면 다음에도 그 상점을 찾게 되고, 결국 단골로 정착하는 선순환을 만들어야 한다. 단순히 개별 가게에서 끝나는 소비가 아니라 상권 전체를 순환하며 재방문을 유도하는 소비 패턴이 중요하다.

그런가 하면 중앙정부 가이드라인에 따른 획일적 운영도 지역화폐 정책의 문제로 지적되고 있다. 관광지가 많은 지역과 제조업 중심 지역, 농촌과 도심의 상황은 완전히 다른데 현재는 모든 지역이 동일한 틀 안에서 운영되고 있어서다. 중앙정부 주도의 획일적 운영 방식으로는 지역별 특성을 반영하기 어렵다.

각 지자체는 중앙정부 가이드라인을 기초로 하되 지역 특성에 맞는 가맹점 선정과 활성화 방안을 찾아야 한다. 관광지가 많은 지역은 숙박업소와 음식점 연계를, 농촌지역은 직거래 장터와 연결하는 식으로 차별화된 접근이 필요하다. 획일적 인센티브율보다는 지역 특화산업과 연계한 맞춤형 혜택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

지속가능성을 고려하면 현재 지역화폐 운영 방식으로는 장기적 효과를 담보하기 어렵다. 정부 보조금에 의존하는 인센티브 구조는 예산이 중단되면 언제든 무너질 수 있는 모래성과 같다. 진정한 지역경제 생태계를 만들려면 정부 지원 없이도 자생할 수 있는 구조를 고민해야 한다.

무엇보다 소비자와 상인, 지자체가 함께 참여하는 상향식 정책 설계가 시급하다. 정기적 간담회를 통해 현장 목소리를 수렴하고 지역별 맞춤형 운영 방안을 도출해야 한다. 소상공인들이 실제로 원하는 지원 방식과 소비자들의 이용 패턴을 면밀히 분석한 정책 설계가 전제되어야 한다.

결국 지역화폐 정책의 성공은 얼마나 많은 인센티브 혜택을 주느냐가 아니라 지역 내 소비 순환 고리를 얼마나 탄탄하게 만드느냐에 달려 있다. 단순한 인센티브 수단이 아닌 지역공동체를 살리는 마중물로 거듭나려면 현장과 함께하는 정책 혁신이 답이다. 세금으로 지원하는 정책인 만큼 진정한 지역경제 자생력 강화라는 본질을 되찾아야 할 때다.

|심준규. 더솔루션컴퍼니비 대표. <그린북>, <실천으로 완성하는 ESG 전략> 저자. 기업의 ESG 역량 강화 프로그램 개발과 ESG경영컨설팅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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