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하면 수급 탈락, 안 하면 생계난”… 기초생활보장제도의 딜레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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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의 생존권을 실현하는 복지제도인 기초생활보장제도가 올해로 25주년을 맞은 가운데, 가난의 문제를 개인의 책임이 아닌 사회의 책임으로 바라보고 빈곤층의 든든한 안전망이 되겠다는 기초생활보장제도의 취지가 실현되지 못하고 있다는 평이 이어지고 있다. 사진은 무더위를 보내는 서울 영등포구 쪽방촌 골목의 모습. / 뉴시스
국민의 생존권을 실현하는 복지제도인 기초생활보장제도가 올해로 25주년을 맞은 가운데, 가난의 문제를 개인의 책임이 아닌 사회의 책임으로 바라보고 빈곤층의 든든한 안전망이 되겠다는 기초생활보장제도의 취지가 실현되지 못하고 있다는 평이 이어지고 있다. 사진은 무더위를 보내는 서울 영등포구 쪽방촌 골목의 모습. / 뉴시스

시사위크=이민지 기자  대한민국 헌법이 보장한 국민의 생존권을 실현하는 대표적인 복지제도인 기초생활보장제도. 올해로 25주년을 맞이한 기초생활보장제도는 IMF 외환위기에 발생한 대규모 실업‧빈곤에 국가가 가난의 문제를 개인의 책임이 아닌 사회의 책임으로 바라보고, 빈곤층의 든든한 안전망이 되겠다는 취지로 탄생했다. 

하지만 기초생활보장제도가 빈곤층의 안전망으로서의 역할을 제대로 하고 있는지는 꾸준히 의문으로 제기돼 왔다. 2014년 송파 세 모녀 사건, 2023년 순천 세 모자 사건을 비롯 지난 5월 첫째 딸의 취업으로 수급 자격이 박탈돼 생활고를 겪다 끝내 생을 마감한 익산 모녀 사망사건까지. 사회에 충격을 주는 빈곤으로 인한 사망사건이 끝없이 발생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같은 사망사건을 들여다보면, 크게 수급자 자격 박탈과 부양의무자 기준이 문제로 제시된다. 특히 기초생활보장제도의 딜레마는 일을 하면 수급자격을 박탈당하고, 일을 안 하면 물가를 따라가지 못하는 낮은 수급비로 생계난을 겪게 되는 악순환을 초래해 시급한 해결이 요구된다. 

◇ 건강식은 사치, 주식은 라면과 과자… “지출 부담이 관계 단절 만들어”

지난 3일 국회의원회관 제7간담회의실에서는 한국도시연구소 김준희 책임연구원이 진행한 ‘2025년 기초생활 수급가구 가계부 조사’ 결과 발표와 전문가들과 함께한 제도개선 토론회가 개최됐다. 

이날 김준희 책임연구원이 공개한 조사 결과에 따르면, 1인 수급자 가구의 △평균 수입은 108만3,947원 △평균 지출은 107만1,072원으로 나타났다. 전체 지출 가운데 식비와 주거비가 차지하는 비율이 51.7%로 가장 많았다. 

국토교통부가 고시한 올해 주거급여 선정기준은 1인 가구 기준 114만8,166원으로, 서울 거구 1인 가구는 최대 35만2,000원의 주거급여를 받을 수 있다. / 그래픽= 이주희 디자이너
국토교통부가 고시한 올해 주거급여 선정기준은 1인 가구 기준 114만8,166원으로, 서울 거구 1인 가구는 최대 35만2,000원의 주거급여를 받을 수 있다. / 그래픽= 이주희 디자이너

서울 거주 1인 가구 기준 최대 35만2,000원의 주거급여를 받을 수 있는데, 임대료‧관리비‧ 수도광열비를 포함한 주거비를 감당하려면 최소 2,250원에서 최대 32만6,400원의 자부담이 발생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1인 가구 수급자의 월평균 식비는 32만 5,085만원으로, 2022년 월평균 식비 25만8,556만원에 비해 6만6,529원 증가했다. 이 가운데 △월평균 식료품비는 20만4,817원 △외식비는 12만268원으로 집계됐다. 

이와 관련해 빈곤사회연대 정성철 활동가는 “가계부 조사 참가자들은 식비를 줄이기 위해 보통 큰 마트보다 재래시장에서 장을 보고, 유통기한이 임박한 세일하는 제품을 사곤 한다”며 “라면과 같은 간편 대체식을 먹는 경우도 많다. 한 참가자의 경우, 가계부를 작성한 57일 동안 46번을 라면으로 밥을 대체했다. 이는 하루를 세끼로 계산했을 때, 171끼니 중 26%로 높은 비율”이라고 말했다.

낮은 수급비는 단순 생활의 어려움을 넘어 사회적 관계의 단절로 이어지고 있다. 높은 외식 물가로 인해 지출에 대한 부담이 크기 때문이다. 가계부조사에 참여한 이들의 월평균 외식비는 관계를 위한 만남보다 대체로 혼자 먹는 식사에 사용됐다. 이 마저도 지자체에서 지급하는 식권을 이용한 식사이거나 보건소나 구내식당과 같이 저렴한 식사가 가능한 곳에서의 외식이었다. 

실제 이날 토론회에 참석한 수급자 B씨는 “외식은 안 하는 것이 아니라 못 하는 것”이라며 “외출할 때 텀플러는 필수다. 커피 한 잔 사먹으려면 최소 2,000원이다. 특히 여름에 텀블러 안 갖고 밖에 나가서 음료나 커피 사 먹으면 이 돈으로 생활 못 한다”고 말했다.

◇ 탈수급을 위한 노동이 불가능한 이유

쪽방촌에 계시는 수급자들은 얼마라도 벌었으면 좋겠다고 이야기한다.

사실 수급을 받는다는 것은 사회와 단절되는 거다. 수급자가 되는 순간 일을 할 수가 없다.

일용직이나 식당일을 해 단 얼마라도 벌어서 부족한 부분을 충당하고 싶지만, 수급 조건에 영향이 갈까봐 일을 못하는 현실이다. 일을 하면 수급비를 깎는 게 아니라, 살아갈 수 있게 최소한을 마련해 주고 그것이 정착이 되면 탈수급도 할 수 있는 것이다.

기초생활보장제도가 ‘주저앉게 하는 정책’이 아닌 ‘살아갈 수 있게 하는

정책’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된다.

서울에 손꼽히는 쪽방촌 밀집지역인 용산구 동자동에 위치한 ‘동자동 사랑방’에서 활동하고 있는 박승민 씨가 한 말이다. 낮은 수급비는 균형 잡힌 식생활을 어렵게 만들며, 이로 인한 건강 악화와 일상의 긴장 및 스트레스를 반복하게 만든다. 이러한 생활에서 벗어나고자 노동을 하고 싶어도 혹여나 수급비가 깎이지는 않을까, 수급 대상자 자격을 박탈당하지 않을까 하는 불안감에 낮은 급여의 자활근로 외에는 일자리를 가질 수 없다.   

지난 3일 국회의원회관 제7간담회의실에서 진행된 2025년 기초생활 수급가구 가계부조사 결과와 제도개선 방안 발표 토론회 현장 모습. / 사진=이민지 기자
지난 3일 국회의원회관 제7간담회의실에서 진행된 2025년 기초생활 수급가구 가계부조사 결과와 제도개선 방안 발표 토론회 현장 모습. / 사진=이민지 기자

정성철 활동가는 “관련 관료와 전문가들은 수급자들이 일을 안 하고 제도 안에 머무르려는 경향이 있다고 이야기하지만 이것이 수급 당사자들의 현실을 전혀 알지 못하는 편견이자 혐오”라며 “조사에 참여한 수급자들은 일에 대한 욕구가 높았지만 낮은 소득 공제율, 소득이 탈빈곤 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님에도 수급에서 탈락해 더 큰 위기에 내몰릴 수 있기에 하지 못하는 모습을 보였다”고 말했다.

◇ 핵심 개선책, 부양의무자 완전 폐지

빈곤층의 죽음이 발생할 때마다 정부는 다양한 개선책을 발표하곤 한다. 이 중 가장 큰 변화 중 하나로 꼽을 수 있는 것이 바로 부양의무자 폐지다. 2021년 10월 생계급여에 대한 부양의무자 기준이 폐지됐고, 생계급여‧주거급여‧교육급여 등은 부양의무자 기준이 폐지됐거나 완화됐다. 하지만 현재 의료급여는 중중 장애인 가구를 제외하고는 아직 부양 의무자 기준이 시행되고 있다.

정성철 활동가는 “2017년 부양의무자 기준 폐지가 약속되었음에도 8년 동안 이행되지 않고 있다. 이는 재정이 없어서가 아닌 재정의 우선순위에 빈곤층이 없기 때문”이라며 “여전히 부양의무자 기준이 남아 있는 생계급여와 의료급여에서 부양의무자 기준을 완전 폐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계속해서 “빈곤층이 신청하지 않아서, 사회복지 노동자가 찾아내지 못해서가 아닌 필요한 제도가 개선되지 않아 이용할 수 있는 복지제도가 없는 것이 문제”라며 “2023년 기준 138만여명이 위기가구로 발굴됐음에도 절반만이 복지서비스로 연계됐고, 발굴된 인원 중 공공부조로 연계된 비율은 1.6%에 불과하다”고 덧붙였다.

빈곤은 삶을 유지할 수 있는가와 직결된 문제다. 하지만 기초생활보장제도의 개선은 매우 더디게 이뤄지고 있다. 토론회를 마치며 김준희 연구원은 “최저 생활을 보장한다는 국민기초생활보장법의 목적에 맞지 않게 운영되는 부분이 있는 것 같다”며 “기초생활보장제도 수급자 가계부 조사를 세 번째 진행하는데, 제도의 진전이 없다보니 매번 같은 이야기를 반복하게 되는 것 같다. 실질적인 변화가 이뤄져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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