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마이데일리 = 강다윤 기자] "호러퀸이요? 아니, 아니아니요. 저는 그냥 열심히 했어요. 공포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진심을 다했거든요."
이선빈은 최근 서울 종로구 팔판동의 한 카페에서 마이데일리와 인터뷰를 진행했다. 영화 '노이즈'(감독 김수진) 개봉을 앞두고 만나 다양한 이야기를 나눴다.
'노이즈'는 층간소음으로 매일 시끄러운 아파트 단지에서 실종된 여동생을 찾아 나선 주영(이선빈)이 미스터리한 사건과 마주하게 되는 현실 공포 스릴러. 편 데뷔작 '선'으로 칸영화제 시네파운데이션 부문에 초청된 김수진 감독이 연출을 맡았다.

이선빈은 극 중 실종된 동생의 행방과 아파트의 비밀을 밝혀내려는 주영 역을 맡았다. 주영은 원인을 알 수 없는 수상한 사건들에 휘말리며 점차 층간소음에 예민해지고, 이전에는 들리지 않던 이상한 소리까지 듣게 된다.
이날 이선빈은 "오랜만에 개봉하는 공포영화라 관객분들, 특히 공포를 좋아하시는 분에게 어떻게 다가갈지 설레면서도 걱정되는 엄청 복잡한 마음이다. 워낙 공포 장르를 좋아하다 보니 더 그렇다"고 개봉을 앞둔 소감을 밝혔다.
'노이즈'는 이선빈의 첫 공포 스릴러 도전작이다. 자타공인 공포물 마니아지만, 왜 좋아하는지 생각해 본 적은 없었다. 이번 작품을 통해 많은 질문을 받으면서 비로소 그 이유를 돌아보게 됐다.
현실에서는 경험할 수 없는 상황을 접할 수 있어 신기했고, 히어로물이나 판타지물보다는 인간이 겪을 법한 이야기라 상상하기 쉬웠다. 동시에 쉽게 볼 수 없고, 직접 경험하지 못하는 것들을 체험할 수 있었다. 그래서 공포물이 좋았다, 그런 점들이 중독적이었다.

공포물 마니아이기에 이번 VIP 시사회 초청도 특별했다. 가장 초대하고 싶으면서도 두려웠던 인물, 구독자 84만 명을 보유한 공포 유튜버 윤시원을 초대했다. '찐'으로 하는 사람이기에 '저건 좀 아닌데'라는 반응을 보일까 우려도 있었다.
하지만 뒤풀이에서 '고증이 잘 된 영화'라는 피드백을 들을 수 있었다. 이선빈은 그 이야기를 꺼내며 뿌듯함을 감추지 못했다. 어떤 부분이었는지 묻자 잔뜩 신이 난 표정으로 설명을 이어갔다.
공포물을 누구보다 좋아하지만, 정작 첫 공포 스릴러 출연은 설렘만큼이나 신중함이 따랐다. 이선빈은 "너무 설렜다. 하지만 설렘은 30%였고 나머지 70%는 신중함이었다. 나는 좋아하는 분야일수록 더 신중하게 다가가게 되는 성향"이라며 털어놨다.
이어 "정말 좋아하는 웹툰이 실사화가 되면서 캐스팅이 들어온 적 있었다. 그런데 너무 중요한 역할이다 보니 오히려 냉정해졌다. 이 작품의 팬이기 때문에 이미지가 맞지 않는 것 같다고 거절했다. 내가 나한테는 되게 박한 편"이라고 덧붙였다.
그런 성향은 '노이즈'에서도 그대로였다. 이선빈은 "내용이 너무 매력적이고 꼭 도전해보고 싶었는데 끝까지 고민했다. 내 비주얼이나 호흡, 목소리 톤이 공포물과 어울릴까 의심을 많이 했다"며 말했다.
그러면서 "좋아하는 공포영화나 드라마, 웹툰을 봤을 때 나는 한없이 부족해 보였다. 극대화된 표정이나 피지컬 적인 부분을 따라갈 수 있을까 고민이 컸다. 화면 안에서 날카로움이나 예민함이 있는 얼굴은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고 전했다.

그럼에도 '노이즈'에 흔쾌히 용기를 낼 수 있었던 건 '층간소음'이라는 주제의 힘이었다. 누구나 공감하기 쉬운 매력적인 소재였다. 종이 한 장 차이로 '나'는 누군가의 피해자가 될 수도, 반대로 가해자가 될 수도 있다. 그런 이야기가 영화 속에도 잘 녹아 있었다.
그렇다면 극대화된 표현이나 시너지에서 다소 부족하더라도 공감을 이끌어낼 수 있다는 자신감이 있었다. 공포에 특화된 배우가 아니어도, 평범한 사람 이진경으로서도 연기할 수 있겠다는 용기가 생겼다. 모두 층간소음이라는 주제 덕분이었다.
그렇게 마음을 다잡고 현장에 들어섰지만, 러닝타임 93분 대부분을 책임져야 했던 만큼 이선빈이 짊어진 무게는 결코 가볍지 않았다. 그는 "분량에 대한 힘듦은 정말 없었다"면서도 "성격이 소심한 편이라 내가 너무 많이 나오면 지루하지 않을까 걱정됐다. 여러 캐릭터들이 줄 수 있는 재미가 많다. 나조차도 캐릭터가 살아있는 걸 좋아한다"고 털어놨다.
이어 "내가 잘하는지 확신도 없는 상태에서 연기를 하다 보니, 모든 신에 최선을 다했지만 보는 분들이 지루하지는 않을까 걱정됐다"며 "다행히 '노이즈'의 동료, 선배 배우들이 정말 임팩트 있게 나를 많이 살려주셨다. '노이즈'를 보고 오히려 그 걱정이 사라졌다"고 함께한 배우들에게 감사함을 전했다.

촬영 현장에서 가장 어려웠던 건 단 하나였다. 편집된 영화에서는 CG와 사운드가 더해지지만, 실제 현장에선 눈앞에 아무것도 없는 상태에서 연기해야 했다. 그런 상황에서 원테이크로 촬영하는 일도 있었다. 누구보다 많은 것을 알고 계산해야 했지만, 카메라 앞에서는 누구보다 모르고 있어야했다.
그러면서도 몇 초 뒤 어떤 장면이 구현될지를 미리 계산해야하는 섬세하고 디테일한 작업이었다. 이선빈은 "1초의 타이밍, 눈동자를 언제 왔다갔다 하는지도 차이가 크게 드러났다. 여태 했던 작품들을 뛰어넘는 작업이라 생각했다"며 "되게 모순적이지 않나. 뭔가를 가장 몰라야 하는 캐릭터인데, 연기하는 나는 모든 걸 알고 철저히 계산해서 연기해야했다"고 감탄했다.
또 다른 고충과 노력도 있었다. 주영은 층간소음을 겪는 청각장애인이다. 이를 표현하기 위해 이선빈은 주영의 청력 정도부터 깊이 고민했다. 어느 소리는 들리고, 어떤 순간은 들리지 않는지, 보청기를 착용하면 얼마나 좋아지는지 대비되는 구간도 꼼꼼히 감독과 조율했다. 친절하게 개연성을 잡아준 대본도 큰 도움이 됐다.
아울러 그는 "소품이 아닌 실제 보청기도 착용했다. 멀리서 하는 말소리가 들리기도 했다. 덕분에 그런 감각을 잘 느끼고 알 수 있었다"며 "처음엔 귀도 아프고 불편했지만 나중에는 한 몸이 됐다. 끼고 있는 줄도 모르고 퇴근할 정도였다. 그럴 정도로 동화가 됐다"고 설명했다.

그간 대중에게 이선빈은 '술꾼도시여자들', '소년시대' 등에서 보여준 유쾌한 이미지로 각인돼 있다. 하지만 데뷔 초에는 오히려 정극이나 톤이 낮은 작품들을 주로 해왔다. 한때는 코미디가 자신과 맞지 않는 장르라고 생각한 적도 있었다. 신기하게도 그 뒤 코믹한 생활연기를 선보였고 이제는 '코미디를 잘한다'는 평을 듣게 됐다.
"제가 연기해 온 인생에서, 많은 분들이 기억하지 못하실 수도 있지만 저는 진지한 연기와 코미디 연기를 모두 해봤어요. 저한테는 '노이즈'가 배우 커리어에 연기적으로 도움이 되는 작품이 될 거라 생각해요. 톤다운 된 모습들을 다시금 '이런 것도 사실 할 수 있는 사람이에요'라고 보여드릴 수 있는 계기가 되지 않을까 싶어요."
끝으로 이선빈은 '노이즈'를 극장에서 봐야 하는 이유를 덧붙였다. 그는 "공포를 좋아하시는 분들은 청력이 주는 공포가 제일 크다는 것을 잘 아신다. 그런 포인트만 살린 영화를 즐기실 수 있을 것"이라며 "한 사람이 어떻게 심리적 압박을 받고, 미스터리한 사건에 휘말리면서 어떻게 피폐해지는지 보시는 재미도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Copyright ⓒ 마이데일리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comment--
첫 번째 댓글을 작성해 보세요.
댓글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