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좀비물 넘어선 감정 대서사"…'28년 후' 두개골 탑 위에 남은 단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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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28년 후' 속 한 장면 / 소니 픽쳐스 제공

[마이데일리 = 이나혜 인턴기자] "죽을 것임을 기억하라"의 라틴어, '메멘토 모리(Memento mori)'.
"사랑해야 된다는 것을 기억하라"는 새로운 문장, '메멘토 아모리스(Memento amoris)'.

19일 개봉한 영화 '28년 후'는 바로 이 두 문장을 가슴에 품고 출발한다. 분노 바이러스가 세상을 덮친 지 28년 후. 영화는 좀비로 가득한 폐허가 아닌, 인간이 사라지자 더 푸르러진 대자연을 먼저 보여준다. 초록이 무성한 숲, 노란 들꽃이 흐드러지게 핀 들판, 그리고 그 안에서 고요히 이야기가 시작된다. 대니 보일 감독은 좀비의 광기를 좇는 대신, "죽음을 기억하되, 사랑을 잊지 마라"고 말한다.

영화 '28년 후' 속 한 장면 / 소니 픽쳐스 제공

'28일 후'와 '28주 후'로 좀비 장르의 새로운 지평을 연 대니 보일 감독이 22년 만에 돌아왔다. 대니 보일 감독이 메가폰을 잡고, 각본가 알렉스 가랜드, 그리고 전작의 주역 킬리언 머피가 총괄 프로듀서로 참여한 작품이다. '28일 후'의 정신적 계승자이자 새로운 시리즈의 서막이다. 영화는 바이러스 창궐 이후 28년이 지난 영국을 배경으로 한다. 격리된 섬 '홀리 아일랜드'에서 태어난 12살 소년 스파이크가 처음 본토로 나서는 여정을 그린다. 전작들이 '분노 바이러스'의 창궐과 생존을 다뤘다면, 이번 작품은 '생존 이후'에 남겨진 인간과 자연, 그리고 인간성의 본질을 묻는다.

영화 '28년 후' 속 한 장면 / 소니 픽쳐스 제공

전작 '28일 후'에서 달리는 좀비라는 혁신을 선보였던 보일 감독은 이번에도 '혁신'이라는 본질을 이어간다. 이번엔 액션이 아닌 '철학'에서다. 그는 "우리는 왜 살아남았는가. 그리고 그 생존에 인간성은 남아 있는가"를 질문한다. 이 작품은 좀비물 특유의 숨 가쁜 액션보다, 감정의 심연을 택한다. 전작들보다 느긋하지만, 감정의 깊이는 훨씬 짙다. 액션보다 정서, 공포보다 상실, 탈출보다 마주함에 초점을 맞춘다.

영화 '28년 후' 속 한 장면 / 소니 픽쳐스 제공

좀비를 죽이며 생존하는 이야기가 아니라, 무너진 세상에서 생존하며 인간다움을 붙들고 싶은 사람들의 이야기다. 그 인간성의 본질은 예고편에 등장하는 압도적인 '두개골 탑'에 응축돼 있다. 모두가 결국 한 줌의 재가 되고 하얀 두개골로 남지만, 그 안에는 여전히 '인류애'가 쌓여있음을 보여준다.

영화 '28년 후' 속 한 장면 / 소니 픽쳐스 제공

대니 보일 감독은 이 모든 질문을 탁월한 시각적 연출로 엮어낸다. 카메라는 감염자보다 먼저 풍경을 비춘다. 고요하고 아름다운 대자연은 무서운 감염자들이 숨어 있다는 사실조차 잊게 만든다. 그리고 그곳에서 무너진 인간의 문명은 역설적이게도 가장 평화롭고 아름답게 표현된다.

감독은 "'28년 후'는 '네이처 필름'이다"라고 말했다. 그 말은 과장이 아니다. 인간이 사라진 세계에서 자연은 28년 만에 스스로를 복원했다. 감염자와 폭력, 분노 속에서도 살아남은 자연은 인간 사회가 누렸던 평화보다 더 순수한 평화를 뿜어낸다. 그렇다면 진짜 재앙은 과연 바이러스였을지, 인간 자신이었을지 질문을 던진다.

영화 '28년 후' / 소니 픽쳐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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