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사위크=이영실 기자 영화 ‘하이파이브’는 장기이식으로 우연히 각기 다른 초능력을 얻게 된 다섯 명이 그들의 능력을 탐하는 자들과 만나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린 작품이다. 지난달 30일 개봉 후 호평 속에 역주행을 기록하는 등 흥행 순항을 이어가고 있다.
메가폰은 영화 ‘과속스캔들’(2008), ‘써니’(2011) 등으로 웃음과 감동을 선사하며 관객을 매료한 강형철 감독이 잡았다. ‘스윙키즈’(2018) 이후 7년 만에 선보이는 신작으로, 장기이식 후 초능력이 생겼다는 참신한 발상과 각기 다른 능력을 가진 매력적인 캐릭터, 이들이 펼치는 유쾌한 팀플레이와 짜릿한 액션 등을 앞세워 관객을 매료하고 있다.
최근 시사위크와 만난 강형철 감독은 ‘하이파이브’의 출발부터 촬영 과정, 연출에 중점을 둔 부분 등 작품에 관한 다양한 이야기를 들려줬다. 특히 힘든 극장 상황을 언급하며 “영화관의 존재 이유를 느낄 수 있는 작품이 되길 바란다”는 바람을 전하며 관람을 독려했다. (*영화에 대한 스포일러가 포함돼 있습니다.)
-관객과 만난 소감은.
“기쁘다. 맨날 작업실에서 보다가 드디어 스크린에서 관객들과 보니까. 극장에서 보려고 만든 영화를 극장에서 보니 이제 드디어 제자리를 찾았다는 생각이 제일 먼저 들었다.”
-2021년 11월 크랭크업했지만 주연배우 유아인(기동 역)의 마약 투약 혐의가 불거지면서 표류하다 4년 만에 세상의 빛을 보게 됐다. 당시 심정은 어땠나. 편집에는 어떤 영향을 줬나.
“난감했다. 아주 많은 스태프와 자본이 투여돼 어렵게 만드는 작업이잖나. 많은 이들이 인생의 한때를, 재능을 바쳐서 하는 작업인데 영화 외적인 이유로 관객을 만나지 못할 위기가 될 수 있으니 큰일이다 싶었다. 영화를 만드는 사람으로서 할 수 있는 것은 후반작업을 적극적으로 하는 거였다. 영화를 열심히 다듬고 어떻게든 세상에 내보내야 한다는 마음뿐이었다. 이 영화는 한 사람의 영화가 아니고 한 배우만 필요한 영화가 아니었다. 많은 배우들의 앙상블이었다. 영화 외적인 이유만으로 영화를 건드린다면 다른 배우가 필연적으로 다칠 수밖에 없었고 관객에 대한 실례라고도 생각했다. 그래서 (유아인의 분량을) 많이 들어내진 못했다. 배우의 앙상블이 다친다. 다만 너무 큰 잘못을 했기 때문에 조금이라도 불편한 부분을 덜어드리기 위해 미세하게, 정말 장인이 다듬듯이 세공 작업을 했다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유아인에게 따로 연락이 오기도 했나.
“그렇다. 그 정도만 말씀드리겠다.”

-기발한 상상력이 돋보이는 작품이었다. 어떻게 구상하게 됐나.
“재밌는 상상이었지. 망상과 상상 그 중간 어딘가. ‘과속스캔들’부터 같이 일한 제작실장과 평소 아이디어 회의를 자주 하는데 장기 기증을 받아서 초능력이 생긴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고 되게 재밌겠다 싶었다. 그때는 나중에 다시 이야기해보자하고 그냥 넘어갔는데 ‘스윙키즈’가 끝나고 다시 그 이야기가 나오면서 한번 써보자 해서 본격적으로 초고를 쓰고 만들게 됐다.”
-이 이야기의 출발이 된 캐릭터가 있나.
“완서(이재인 분)다. PD에게 어떤 그림이 먼저 생각나냐고 했더니 어떤 소녀가 언덕길을 빠른 속도로 뛰어가는 그림이 생각난다고 하더라. 그걸 내가 받았다. 소녀가 자유롭게 언덕길을 엄청난 스피드로 뛴다, 그럼 그 친구가 아마도 이야기를 끌고 가는 주인공이 되겠구나 생각했다. 나도 엉뚱하고 독특한 이야기, 개성 있는 것을 좋아하기 때문에 그렇게 이야기를 시작하게 됐다.”
-각 캐릭터의 구상 과정도 궁금하다.
“각 문신의 모양이 각 장기의 기능을 직관적으로 표현한다. 지성(안재홍 분)은 바람이니까 바람개비 모양, 기동은 전자파니까 와이파이 등 유머를 반영하기도 했다. 선녀(라미란 분)는 신장이라는 장기가 순환해 주는 기능이 있으니 각자의 초능력을 이어주고 한 쪽 기능이 떨어졌을 때 다른 쪽 기능을 끌어다 이어준다는 것을 인간 관계로 치환시켰다. 서로의 관계를 이어주고 연결해 준다는 느낌을 표현하고자 했다. 췌장(영춘)은 고민을 많이 했는데 무협지에서 많이 따왔다. 무협지 속 악당들이 주로 남의 것을 빨아들이는 능력을 갖고 있거든. 췌장과 직접적인 관련이라기보다 영화적 허용 범위로 가자는 의미에서 무협지의 힘을 빌려 특수한 능력으로 방향을 틀어봤다. 균형도 중요했는데 다 강하면 이상하지 않을까 해서 완서에게 강한 공격성을 줬다. 지성도 나름 강하다고 생각한다. 리코더도 잘 불고.(웃음) 전체적인 균형도 중요하고 유머의 호흡도 중요했다. 힘으로 다하는 영화를 만들고 싶지 않았다. 소녀가 가장 큰 힘을 가졌다는 언밸런스를 두고 배분했다.”

-다른 슈퍼히어로와 달리 ‘하이파이브’ 속 인물들은 자신의 능력을 크게 활용하지 않는다. 의도는 무엇이었나.
“모든 캐릭터가 작가로부터 나오는데 내가 특별히 뭘 할 줄도 모르고 뭘 할 생각이 없어서 그런 것 같다. 나의 욕망이 딱 그 정도인 듯하다.(웃음) 하고 싶은 게 그런 거였다. 동네 사람들이 초능력이 생겼을 때 뭘 할 것인가. 지구를 구하진 못하고 동네 사람들을 도와주는 정도다. 고작 해봐야 폐지 줍는 할머니를 바람으로 밀어드리고 눈이 보이지 않는 어르신을 위해 신호등을 연장해 주는 그 정도다. 그렇지만 소위 그 세계관 안에서의 거대 악에 대해서는 열심히 맞서 싸우고 이제는 친구들이 된 서로를 지켜주는, 우리 주변과 크게 떨어지지 않은 사람들을 묘사하려다 보니 이런 이야기가 나오게 된 거다.”
-주요 등장인물이 많은 데다 캐릭터마다 개성과 서사가 있었는데 균형을 맞추기 위해 어떤 고민과 선택을 했는지 궁금하다.
“설명을 많이 하는 것, 서사가 많은 것에 대한 지루함을 못참는 편이다. 그것을 대체할 수 있는 수단은 얼마든지 많다고 생각한다. 대사를 많이 준다든지 그 신을 할애해서 플래시백으로 푼다든지. 예를 들어 이마의 상처 하나가 되게 많은 걸 설명할 수 있고 의상이나 말투만으로도 저 사람은 저렇게 살았겠구나 우리는 다 알잖나. 그런 걸로 표현하는 방식을 좋아한다. 흔히 인생에서 사는 것을 스크린으로 가져가면 되지 않을까, 이들이 서로가 말하고 행동하고 살다 보면 되는 것 아닌가 생각했다. 전작에서도 여러 명이 나오는 걸 많이 해봐서 다행히 습관이 돼 있었다. 나름 괜찮지 않았나?(웃음)”
-액션 연출은 어땠나.
“해보니 힘들었다. 영화를 하는 사람들이 영화 찍고 나면 ‘다시는 하지 말아야지’ 하면서도 조금 시간이 지나면 ‘다음에는 뭐 하지’를 무한 반복하고 있는데 나도 그중 한 명이다. 많이 배웠다. 이번에 부족했던 것을 꼼꼼히 메모해서 기회가 된다면 더 업그레이드해서 잘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진짜 많이 배웠다. 스태프들이 정말 먼지를 뒤집어쓰면서 건강의 일부를 반납하면서 고생해 줬다. 이재인에게도 정말 큰 박수를 쳐주고 싶다. 아직까지도 마음속으로 크게 박수를 치고 있다.”
-이재인의 어떤 가능성을 발견해서 캐스팅했나.
“배우의 절대적인 기준은 적역이다. 이 역할과 어울리느냐. 그래야만 배우를 모셔서 작업할 수 있다. 그렇지 않으면 어떻게 디렉션을 줘야 할지 아예 안 돼서 못한다. 아무리 스타더라도 아무리 유명하더라도 적역이어야만 한다. 이재인을 처음 본 것은 ‘사바하’ 때였다. 시상식에서 신인상을 받는 걸 객석에 앉아서 봤다. 무대에 올라가 긴장하면서 소상 소감을 하는데 너무 매력적이었다. ‘하이파이브’ 초고를 끄적거리고 있을 때였는데 확 오는 거다. 그때부터 SNS를 팔로우하고 그의 성장을 지켜봤고 기회가 닿으면 작업해 보고 싶다고 생각했다. 이후 오디션에서 만났고 오디션에서 다른 좋은 친구들도 만났지만 역시 이재인이었다. 운명처럼 결국 만나게 됐다.”

-카트체이싱 장면도 반응이 뜨거웠다. 어떻게 구상했나.
“주변에 있는 인물로 캐릭터를 구상하다 보니 이들의 소품을 이용해야 했다. 억지스럽지 않은 무언가로 이 영화 안을 다 메워야 한다고 생각이 기본적으로 있었고 그렇다면 그들에게 무엇이 있을까 하다 보니 프레시 매니저에게는 배트맨에게 배트카가 있듯 프레시 카트가 있었다. 5명이 프레시 카트를 타면 되게 웃기겠다고 생각했고 속도가 느린 게 문제였는데 우리에겐 엔진 완서가 있었다. 완서가 밀어주고 기동이 내비게이션 역할을 하고. 하등 쓸모없는 지성은 뭐할까 하다가 007 시리즈를 보면 차에서 총을 쏘고 그러잖나. 그걸 지성이 해야겠다. 모양새는 빠지지만 야쿠르트로.(웃음) 동네 골목길에서 그렇게 하면 참 재밌겠다 싶었다.”
-액션 못지않게 코미디도 중요했는데 웃음 타율이 꽤 높더라. 만족하나.
“나도 그냥 관객으로서 재밌는 거 하고 싶어서 했던 건데 운 좋게 관객들과 소통이 잘 된 것 같다. 극장에서 보니까 재밌더라. 정말 콘서트 같은 영화로 관객에게 다가갔으면 했다. 층간 소음 걱정하지 말고 극장에서 소리 지르면서 발도 동동 구르면서 앞자리는 차지 말고 그랬으면 참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다행히 많이 웃으면서 보니까 기분이 너무너무 좋더라.”
-안재홍이 코미디에 있어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해줬다.
“안재홍은 거의 대본대로 하는데 어느 순간 대본인지 애드리브인지 나도 까먹을 정도다. 너무 잘해서. 코미디 때문에 안재홍이 필요한 건 아니었다. 이 역할을 쓰다 보니 안재홍 아니면 안된다는 느낌이 든 거다. 쓰다 보니 나도 모르게 안재홍으로 가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안재홍은 단순히 코미디 배우가 아니었다. 유머가 출중한 명연기를 하는 배우라고 생각한다. 내가 표현하고자 하는 아름다운 연기와 가장 부합하는 연기를 한 배우라고 생각한다.”
-신구의 등장도 인상적이었다. 함께한 소감은.
“신구 선생님과 영화를 찍을 수 있는 영광을 놓칠 수 없다는 게 첫 번째 이유였다. 너무 모시고 싶었다. 무슨 역할을 드리고 모셔도 어마어마한 연기를 해주실 거다. 지금 말하면서도 약간 흥분된다. 선생님은 평소 그냥 식사 자리에서 말씀하셔도 빠져든다. 명배우의 연기를 눈앞에서 보는 듯한 느낌이다. 식당 메뉴를 말하는데도, 음식의 맛을 말하는데도 명배우의 연기를 보는 듯한 느낌이 든다. 선생님에게 드리기 하찮은 대사인데도 해주셔서 영광이었고 그저 감탄할 뿐이었다.”

-신구와 박진영을 2인 1역으로 조합한 것도 신선했다. 영춘 역에 어떻게 박진영을 떠올렸나.
“꼭 그 대사를 하고 싶었다. 젊어진 영춘에게 ‘오빠’라고 하는 완서에게 지성이 ‘왜 저 사람은 오빠고 나는 왜 아저씨지?’라고 하는. 완서가 ‘잘생겼잖아요’라고 답하잖나. 그래서 꼭 잘생긴 배우가 했으면 했고 박진영과 미팅을 했는데 놓치고 싶지 않더라. 신구 선생님의 말투도 해보고 했는데 너무 같이 하고 싶었다. 보면 알겠지만 정말 성공적이었다. 완전한 신구 선생님도 아니고 어설프게 따라 하는 것도 아닌 그 중간 어딘가 ‘박진영화’해서 거북하지 않은 영춘을 완성했다. 정말 노력하고 연습을 많이 한 거다. 내가 운이 참 좋았다. 영화에서 영춘이 완서가 액션을 하다가 높은 곳에서 떨어져서 착지하는 장면이 있는데 내가 그걸 보면서 ‘하늘에서 진영이가 떨어졌다, 이게 웬 떡이냐’고 했다. 정말 복이 떨어졌다.”
-확장될 가능성이 많은 세계관이었다. 장기 기증자에 대한 정체라든가 풀어낼 이야기가 많이 남아있는데 시리즈로 발전시킬 계획도 있나.
“꿈은 크게 가져도 되잖나. 처음 기획할 때 기증자는 무엇이고 우리끼리 무궁무진하게 생각해 둔 게 많다. 그런 이야기들을 풀려면 지금 이 영화가 이 정도로 미스터리하면서도 코믹하게 시작하는 게 맞다는 판단이 들었다. 일단 이 정도에서 시작을 해서 관객을 만나고 미래의 일은 미래에 맡겨 보자는 마음이다. 모두 함께 지켜보면 재밌을 것 같다.”
-7년 만에 돌아왔는데 그동안 한국 영화계가 너무 많은 변화를 겪었고 상황도 좋지 않다. 체감하나. 어떤 고민이 있나.
“극장을 진짜 사랑하는 사람이다. 극장에 대한 추억이 많다. 어려서부터 극장이 놀이터였고 돈만 생기면 극장에 갔다. 인생의 많은 시간을 보낸 곳이 극장이다. 극장에 걸기 위해 영화를 만들고 그게 꿈과 같은 일인데 극장이 없어지면 안 된다. 그러기 위해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할 거다. 영화를 만드는 사람이니까 관객이 극장에 올 수 있는 영화를 만드는 일이어야겠지. 극장이 재밌는 곳이라고, 여럿이 같이 웃고 공감하면서 그래, 이런 맛이지라고 느낄 수 있는, 이래서 극장이 존재한다는 것을 알려줄 수 있는 작품을 만들고 싶고 지금 이 영화가 그 작은 마중물이 되길 기원한다.”
-흥행에 대한 부담은 없나.
“흥행은 모르겠다. 거짓말이라고 생각할 수 있는데 첫 영화부터 지금까지 흥행을 해본 적은 있는데 흥행해야지 하며 찍은 적은 없거든. 작품을 쓸 때마다 관객으로서 내가 재밌나가 첫 번째였다. 찍는 사람도 재밌어야 하잖나. 나도 몇 년의 시간을 공들여서, 인생의 한때를 바쳐서 작업을 하는 것이기 때문에 그게 제일 중요하다. 재밌나 안 재밌나, 내가 시간을 들일 가치가 있는 것인가 그것이 제일 중요하다. 운 좋게 감독이 되고 운 좋게 영화를 몇 편 찍게 됐는데 또 기회가 주어졌을 때 이번에는 정말 만화 같은 오락영화를 찍고 싶었다. 어렸을 때 학교 끝나고 비디오 가게에 가서 재밌는 영화 빌려서 집에 가는 길이 그렇게 행복했다. 행복했던 기억을 꼽으라면 아직도 그 순간이다. 나라는 사람도 비디오 가게 같은 감독이 되고 싶었고 그런 오락영화를 만들고 싶었다. ‘하이파이브’가 충분히 바칠 가치가 있다고 판단을 했고 그 모든 것들이 부합했기 때문에 작업에 들어간 거였다. 흥행은 그다음인 것 같다. 정말 운명인 것 같다.”
-비디오 가게 같은 감독이 되고 싶다고 했는데 그 비디오 가게를 어떻게 완성하고 싶은지도 궁금하다.
“장르의 다양성을 가진 비디오 가게가 되고 싶고 다 재밌는 영화였으면 좋겠다. 모든 관객을 만족시킬 수는 없지만 이게 취향이 맞지 않으면 이거 보면 되지 싶은. 다만 이 비디오 가게에는 무조건 재밌는 영화만 있다. 후진 영화는 없다. 단순히 돈을 벌기 위해 만든 영화, 잿밥에 관심 있는 그런 영화는 없다. 진정성 없는, 부끄러운 영화는 없는 그런 비디오 가게가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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